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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르타고 - 타가스테 - 로마 - 밀라노에서의 어거스틴의 영적 여정
    신앙/어거스틴 2023. 12. 2. 09:10

    카르타고의 한 청년 - 한 여인에 대한 사랑

    카르타고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활기찬 문화 태피스트리로 풍요로운 도시 중심지였다.

     

    어거스틴의 여인에 대한 사랑은 '불경한 사랑의 가마솥'으로 묘사다. 어거스틴은 '나는 사랑하기 위해 사랑했다'라고 고백했는데, 고백록 3장에서 어거스틴은 '나에게 자제력을 주소서. 하지만 나중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Conf. 3.)

     

    아무튼 17세의 어린 나이에 어거스틴은 첩을 가지고 있었다. 어거스틴의 첩은 익명으로 남아 있고, 종교 공동체 안에 있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오래된 상처를 찢어 연다 (tearing open).


    당시 첩과의 결혼은 법적으로는 인정되지만 일반적인 결혼보다 낮은 지위(‘노예 상태’의 여자라 아내의 지위를 얻을 수 없었고 첩만 가능했다)로서 ‘동거 계약’과 유사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결코 문란한 제도가 아니었다. 첨과의 결혼 제도는 정절이 특징인 관계였으며 약 15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결합으로 아데오다토스(b. 371/372)가 탄생했다.
        - ['Vita Brevis'와 Jostein Gaarder의 작품 'Floria's Letter' 참조.]"

     

    카르타고의 한 청년 - 지혜에 대한 사랑

    373년, 19세: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만나다.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는 유감스럽게도 현재 분실된 작품으로, 어거스틴을 통해 보존된 단편으로만 남아 있다.

    <호르텐시우스>는 플라톤의 작품들처럼 대화형으로 적혀 있다. 예방적이고 권고적인 글이다. <호르텐시우스>는 진리를 바탕으로 행복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의 시작을 알리며 육체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강조한다.
    <호르텐시우스>에는 어거스틴에게 몇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 그 당시 : 어거스틴에게는 독신에 대한 키케로의 입장은 어려운 문제였다.
           - 이후 : 진리의 달성 가능성에 대해 키케로는 회의주의였던 반면, 기독교 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진리를 찾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신앙(성경 읽기)에 대해 문제를 느끼게 된다.
    문학적으로 성경은 키케로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다. 당시 어거스틴이 읽었던 라틴어 성경은 Vetus Latina로 불완전한 라틴어 번역이었고, 나중에 Jerome의 Vulgate로 대체된다.
    내용에 있어서 어거스틴은 구약성서의 겉으로는 가혹해 보이는 하나님의 묘사와 율법 본문의 불가사의한 성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참조. 고백록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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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웅변에 관한 책을 공부했는데, 그 책에서는 저주스럽고 부풀려진 목적, 심지어 인간의 허영심에 대한 기쁨에서도 탁월해지고 싶었습니다. 일반적인 학습 과정에서 나는 키케로의 어떤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책의 언어는 그의 마음은 아니지만 거의 모두가 존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 책은 철학에 대한 권고를 담고 있으며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라고 불린다. 진실로 이 책은 나의 애정을 변화시켰고, 오 주님, 나의 기도를 당신께로 돌리게 하였으며, 나에게 다른 희망과 소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나에게 모든 헛된 희망은 쓸모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한 마음으로 불멸의 지혜를 갈망하였고, 당신께 돌아갈 수 있도록 지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언어를 향상시키기 위해(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의 돈으로 구입한 것처럼 보임) 내 언어를 향상시키기 위해 그 책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스타일로 나를 설득한 것이 아니라 문제였습니다.

     

    참조 고백록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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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하나님, 그때 나는 세상의 것에서 당신께로 날아가는 데 얼마나 열심이었습니까! 나는 당신이 나를 어떻게 대하실지 몰랐습니다. 당신께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로 지혜에 대한 사랑을 “철학”이라고 하는데, 그 책은 나에게 불을 지폈습니다. 철학을 통해 위대하고 매혹적이며 명예로운 이름 아래 자신의 오류를 색칠하고 꾸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와 이전 시대에 그랬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책에서 비난받고 지적되었습니다. 또한 당신의 착하고 경건한 종을 통해 당신의 영이 주시는 가장 유익한 훈계도 계시되어 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는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그리고 (내 마음의 빛이신 당신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그 당시에는 사도의 말씀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 권고를 듣고 기뻐했습니다. 이 종파나 저 종파가 아니라 지혜 그 자체를 사랑하고, 찾고, 얻고, 붙잡고, 포용하십시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나는 그 안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당신 자비에 따라 이 이름, 내 구원자 당신 아들의 이 이름이 나의 부드러운 마음을 경건하게 취하게 하였고, 내 어머니의 젖과 함께 깊이 간직하게 하였나이다. 그리고 그 이름이 없는 것은 무엇이든 결코 그렇게 박식하고 세련되고 진실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완전히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카르타고의 한 청년: 키케로에서 마니교도로

    373년부터 시작, 이때 어거스틴의 나이 약 19살이었다.

     

    마니(3세기): 마니교에서 마니는 '그리스도의 사도', '보혜사'로 본다.

     

    마니교는 이질적이고 다양했다.
    영지주의 : 원시 신화를 통한 올바른 지식의 계시를 통한 해방.

     

    마니교는 삼중 그리스도를 믿었다.

    - 영광스러운 예수: 초월적이고 우주적이며 정복자 빛.
    - Iesus patibilis: 빛의 십자가에 못 박히다 = 그분이 영혼이신 온 세상이 자연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

    - 역사적 예수: 가현설: 예수에게는 참된 육체도 없었고 십자가에서의 고통도 없었다.

     

    마니교에는 두 수준의 사람이 있었다.

    The Electi(선택된 사람): 금욕주의자, 채식주의자, 땅을 경작하지 않는 사람.
    듣는 자(청문자: 어거스틴): 결혼은 허용되었고, 고기는 먹을 수 있었지만 포도주는 마실 수 없었으며, 성교는 허용되었으나 출산은 피해야 했다.

     

    어거스틴이 매력을 느꼈던 마니교의 세 가지

    1. 악의 문제(어떻게 선하신 하나님이 세상의 악과 화해하실 수 있는가):
    이원론: 우주 이전 빛과 어둠 사이의 갈등. (선한 하나님 vs 악신)
    신성한 빛의 입자들은 물리적 창조물에 갇혀 있다.
    물질은 악하므로 영혼은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변명하고, 나와 함께 있었지만 내가 아닌 어떤 알 수 없는 힘을 비난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고백록 5, 18).

    (내가 죄를 저지르면, 내가 죄를 지은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악한 영이 나를 죄 짓게 만든 것이라 믿었다는 소리다. 즉, 내가 죄를 저질러도 내가 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악한 영이 죄를 저지르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해서는 끝없이 변명할 수 있었다.)

     

    2. 성경의 문제(참조, 위):
    구약의 거부: 창조/물질의 신.
    신약의 정화: 그리스도의 육체적 본성에 관한 모든 것(어린 시절의 이야기, 십자가에 못 박히심 등)은 잘못된 것으로 간주했다.

     

    3. 독단적인 기독교 신앙 없이 순수하고 합리적인 지식을 약속합니다.

     

    참조, <행복한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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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 살 때부터 수사학 학교에서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라는 책을 읽은 뒤 나는 철학에 대한 그토록 큰 사랑에 불타올라 즉시 이 책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진로를 혼란스럽게 하는 안개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별들에만 눈을 고정한 채 꽤 오랫동안 길을 잃었음을 고백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미신이 나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을 방해했고, 내가 더욱 용기를 가지자마자 어둠을 벗어버리고 순종을 명령하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을 더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분명히 가장 높고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타가스테의 한 청년: 교사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1년간 타가스테로 돌아온다.

    - 문법교사로 생활을 유지했다.
    - 모니카와의 재회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사생아, 그의 첩의 문제, 마니교 문제)
    - 친구의 죽음으로 우울하였다. (옛 학교 친구였으며 마니교였다. 하지만 임종할 때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타가스테에 있는 걸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참조, 고백록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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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내가 고향에서 처음으로 수사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우리 연구에서 동갑내기의 매우 소중한 친구를 얻었고, 나처럼 이제 막 젊음의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 자랐고, 우리는 동급생이자 놀이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 사람이 내 친구가 아니었고, 나중에도 진정한 우정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인해 우리 마음에 부어진 사랑으로 당신이 서로 묶어 주고 결합하는 것 외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학문의 열정으로 익어가는 것은 너무 달콤했습니다. 나는 참된 믿음(그가 어려서 온전하고 철저하게 익히지 못한 믿음)에서 내 어머니가 내 안에서 슬퍼하신 미신적이고 해로운 이야기들에 그를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이 사람의 마음은 이제 잘못되었으며, 내 영혼도 그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라, 당신은 당신의 도망자들 뒤에 가까이 계셨으니,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당신께로 돌이키시는 복수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의 샘이시니라. 당신은 그 사람이 내 인생의 모든 달콤함보다 나에게 달콤했던 나의 우정을 1년 내내 마치지 못했을 때 이생에서 제거했습니다.

     

    참조, 고백록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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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슬픔으로 인해 내 마음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내가 보는 것은 모두 죽음이었습니다. 내 조국은 나에게 고문이었고, 내 아버지의 집은 놀라운 불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와 함께 참여하고 그를 원했던 모든 것은 무서운 고문으로 변했습니다. 내 눈이 그분을 어디든 찾아보았으나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곳을 미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 곳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나에게 “보라. 그분이 오고 계십니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큰 수수께끼가 되었고, 그녀가 왜 그렇게 슬퍼하며, 왜 그렇게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하는지 내 영혼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하면 그녀는 내 말에 전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잃었던 그 가장 소중한 친구는 남자였기 때문에 그녀가 희망했던 그 환상보다 더 진실되고 더 나은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눈물 외에는 감미로운 것이 없었으며, 그 눈물은 내 친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안겨주었습니다.

     

    참조, 고백록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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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비참했고, 모든 영혼은 소멸하기 쉬운 것들과의 우정에 얽매인 채 비참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잃으면 산산조각이 나고, 그 후에는 그것들을 잃기 전에 겪었던 비참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당시 나는 그랬다. 나는 몹시 비통하게 울었고, 괴로움 속에서 안식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비참했고, 그 비참한 삶을 내 친구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나는 기꺼이 그것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 사람보다 그것을 잃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 나는 필라데스와 오레스테스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것처럼(만약 발명품이 아니라면) 그를 위해서라도 그것을 기꺼이 잃을 것인지, 그들이 기꺼이 서로를 위해 죽었을 것인지, 아니면 둘 다 함께 죽었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어떤 감정이 내 마음속에도 솟아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사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고, 죽는 것이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사랑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서 그를 빼앗아 간 죽음을 가장 잔인한 원수로서 두려워하십시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를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모든 사람을 전멸시킬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것이 나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내 마음을 보소서, 오 나의 하나님! 보고 나를 들여다보라. 나는 그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오, 나의 희망이여! 그분은 이런 애정의 더러움에서 나를 깨끗하게 하시고 내 눈을 당신께로 향하게 하시며 내 발을 그물에서 끌어내시느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제2의 자아였던 내가 그가 죽어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 대해 “너는 내 영혼의 반쪽이로다”라고 말한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영혼과 그의 영혼이 두 몸에 있는 한 영혼에 불과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내 삶은 나에게 공포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절반으로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나는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가 완전히 죽을까 봐 죽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오, 남자를 사랑해야 할 만큼 남자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광기여! 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토록 많은 사람의 운명을 너무나 조바심으로 견디고 있었던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초조해하고, 한숨을 쉬고, 울고, 나 자신을 괴롭혔으며, 쉬지도 조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카르타고로 다시 돌아간 어거스틴

    카르타고에서 다시 도시 수사학자이자 수사학 교사가 되었다.
    두 명의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 알리피우스: 변호사, 서커스에 대한 열정.

    - 네브리디우스: 부유한 가문 출신.

     

    그리고 이때 어거스틴은 점성술에 대한 유혹을 받았다.

    문제의 쌍둥이, 에서와 야곱. 아래의 참조, 고백록 7.10을 볼 것

     

    <De pulchro et apto (아름다움과 적절함에 관하여)> 어거스틴이 고백록을 썼을 때 이미 분실되었던 어거스틴의 작품이다. (To Hierius, rhetorician in 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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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거스틴의 첫 번째 논문인 De pulchro et apto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부수적으로만 다루었고 주로 사랑에 관심을 두었다. 따라서 고백서에서 이 작품에 대한 논의는 여담이 아니라 우정과 사랑에 관한 네 번째 책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아름다움: 그 자체로 적절하다.

    적절함: 다른 것에 적응되는 것이다.

     

    참조, 고백록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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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쌍둥이로 태어나 대부분의 경우 자궁에서 서로 너무 가까워서 작은 간격(사람들이 사물의 본질상 얼마나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지)이 불가능할 정도로 태어난 쌍둥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관찰에 의해 기록되거나 점성가가 검사해야 하는 수치로 표현되어 그가 진실로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실일 수 없습니다. 동일한 인물들을 살펴보면서 그는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음이 틀림없지만 그들에게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거짓으로 말해야 합니다. 또는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동일한 수치를 들여다보더라도 동일한 대답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는 예술이 아니라 우연히 진실되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카르타고의 어거스틴: 마니교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다

    당시 과학에 따르면 일식/월식에 대한 마니교도의 설명은 정확하지 않았다.
    마니교인들은 도덕적 수준이 높다고 자부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에게도 스캔들이 있었다.
    밀레비스의 파우스투스(Faustus of Milevis)는 어거스틴에게 그가 찾고 있던 답을 주지 않았다(참조, 파우스투스에 반대하여(Contra Faustum)).

     

     

    로마로 간 어거스틴

    383년(30세)

    어거스틴은 더 나은 가르치는 직업을 찾아 로마로 향했다.
    - 카르타고의 학생의 기물 파손 및 장난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 더 이상의 커리어를 쌓을 수 없었다.

    - 마니교도들의 인맥을 통해 기회를 얻엇다.
    - 하지만 로마의 학생들은 돈을 내야 하는 때가 오면 돈을 지불하지 않고 사라졌다.

     

    회의주의의 유혹

    스토아 학파: 현명한 사람은 사실이 아닌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카데미 학파: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에 동의하기를 거부한다.

     

    마니교 교의학에 관한 그의 의심에 대한 반론.

     

    나중에: 아카데미 학파에 반대하여(Contra Academicos) 2, 23 (386년 가을)에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과 나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에게는 진실을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나에게는 진실을 찾을 가능성이 보였다.

     

    마니교와의 실질적으로 단절하였다.

     

    밀라노의 어거스틴

    가을 384년

    어거스틴은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수가 되었다.

     

    여기에는 마니교도 로마 총독 심마코스의 도움이 있었다.
    황실 거주지: 발렌티니아누스 2세와 어머니 유스티나.

     

    밀라노에서의 삶은 매우 바빴다 : 가르치고, 수업을 준비하고, 높은 지위의 친구들(amicos maiores)을 방문해야 했다.

     

    어거스틴의 친구들
    - 알리피우스 : 국립 은행의 평가자:
    - 네브리디우스 : Nebridius: 밀라노의 문법학자인 Verecundus의 부유하고 겸손한 조수.
    - 어머니, 아내(첩), 그리고 아들

     

    암브로스를 알게 되다

    암브로스 주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373년 아리우스 주교 아욱센티우스가 사망한 후 속주 총독으로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암브로스는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그래서 암브로스는 성경보다 키케로를 더 잘 알았다.
    암브로스는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났으며, 주교로 선출될 때까지 세례를 받지 않았다. (당시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배우기 전에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동시에 한다.” (De officiis 1, 4)

    암브로스는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해 신학을 배워야 했다. 즉, 


    갑바도기아 교부들, 오리겐,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를 연구했다(알레고리 성경 해석).
    이교도 로마 원로원과 아리우스주의자들의 궁정에 맞서 성공적으로 싸웠다.

     

    어거스틴은 암브로스의 설교를 들으러 갔다. 처음에는 암브로스의 수사학을 들었고 곧이어 내용을 듣기 위해 가게 되었다.

     

    이때 어거스틴이 가지고 있었던 구약 문제가 알레고리 성경 해석으로 해결되었다. 암브로스는 철학적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구약을 영적으로 읽었다.

     

    암브로스의 386년 봄/여름 설교에는 신 플라톤주의의 요소들(신은 육체적이지 않음, 악의 근원(인간 의지), 신으로 가는 영혼의 상승, 하늘의 본향, 육신의 죽음을 통한 해방, 축복받은 자의 영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지식인이 되는 것은 같은 것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어거스틴의 첫 번째 문제에 대한 해결책: 성경 – 기독교 개종을 향한 첫 번째 디딤돌이 되었다.

     

    신 플라톤주의를 배우다

    신 플라톤주의와 기독교의 차이점

     

    신 플라톤주의

    - 환생

    - 세계의 운명론적 순환.

     

    기독교:
    - "인간의 육체 안에 영혼이 있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래 의도이다.
    - 고백록 7.13-27: 중재자에 대한 믿음 ('내가 거기에서 읽지 않았나요...', '플라토닉 책에서는 찾을 수 없군요...')

     

    어거스틴 '불타다 on fire'(행복한 삶에 대하여 1. 4. ; 아카데미학파의 반대하여 2. 5):

    - 신 플라톤주의는 그를 지적 성찰로 이끌었다. 참조. 고백록 7, 16.
    - 그를 '신비로운' 경험으로 이끌었다: 참조. 고백록 7, 23.

     

    밀라노의 신 플라톤주의: 악의 문제

    “그러면 내가 찾아낸 악은 실체가 아닙니다. 물질이라면 좋을 것입니다.” (고백록 7, 18).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이고, 그렇기에 좋은 것이었다.

    즉, 모든 존재는 좋은 것이고, 악, 곧 선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었다. (악은 선의 부재)

    즉, 악은 하나님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악 = 도덕적 악
    “그리고 나는 죄악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것이 물질이 아니라 의지의 왜곡임을 확인했습니다. 오 하나님, 최고의 물질이시여, 당신에게서 멀어져 이 하등한 것들을 향하여 그 창자를 밖으로 쏟아내고 밖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고백록. 7, 22).


    기독교에 대한 어거스틴의 두 번째 문제는 악이었고, 이에 대한 해결은 기독교 개종을 위한 두 번째 디딤돌이었다. 여기서 이미 어거스틴은 '지적 개종'을 하였다.

     

    참조, 고백록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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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거기서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라는 경고를 받고 나는 내 내면의 자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신은 나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나의 도우미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들어갔고, 내 영혼의 눈(예를 들어)으로 내 영혼의 눈 위, 내 마음 위의 불변의 빛을 보았습니다. 모든 육체가 볼 수 있는 이 평범한 빛도 아니고, 말하자면 같은 종류의 더 큰 빛도 아닙니다. 마치 이 빛이 훨씬 더 찬란하고 그 위대함으로 만물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빛은 아니었지만, 이 모든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우 달랐습니다. 기름이 물 위에 있는 것 같이, 하늘이 땅 위에 있는 것 같이 내 마음 위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것이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위에 있었고, 내가 그것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는 그 아래에 있었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그 빛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영원을 안다. 사랑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 영원한 진리, 참된 사랑, 그리고 영원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밤낮으로 당신께 탄식합니다. 내가 처음 당신을 알았을 때 당신은 나를 들어 올리시어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 것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빛의 광선을 가장 강력하게 쏟아 부어 내 시력의 병을 고쳐 주었고 나는 사랑과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위에서부터 당신의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들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강한 사람들의 음식입니다. 자라서 나를 먹게 될 것이다. 또한 너희는 너희 육체의 음식처럼 나를 너희로 바꾸지 못할 것이요, 너희는 나로 바뀔 것이니라.”

     

    참조, 고백록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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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나는 이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대신 어떤 환상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하나님을 누릴 자격이 없었고, 당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당신께로 옮겨졌고, 곧 내 무게로 인해 당신에게서 떼어져 비탄에 빠져 이 열등한 것들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 무게는 육신적인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기억했습니다. 또한 내가 붙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에게 붙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패한 몸은 영혼을 짓누르고, 땅에 사는 집은 많은 것을 생각하는 마음을 짓누릅니다. 그리고 나는 가장 확신했습니다. “창세로부터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주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이다.” 내가 천상이든 지상이든 몸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것이 어디서부터 물었고, 무엇이 변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묻고, "이것은 이러해야 하고 이것은 안된다"고 선언했습니다. 판단하고 판단한 결과, 나는 변할 수 있는 내 마음 위에 진리의 불변하고 참된 영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점차적으로 육체에서 육체의 감각을 사용하여 지각하는 영혼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신체 감각이 외부 사물을 대표하고 짐승의 능력에 도달하는 내부 기능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다시 추론 능력으로 넘어갔고, 이 능력은 신체의 감각에서 받아들인 모든 것을 판단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 능력 역시 내 안에서 가변적임을 깨닫고 자신의 지성까지 올라갔습니다. 습관으로부터 내 생각을 끌어내었고 모순된 환상의 군중으로부터 물러났다. 그래서 의심의 여지 없이 “불변한 것이 변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외쳤을 때, 그것이 뿌려진 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불변성을 알고 있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알지 못했다면 가변성보다 그것을 선호할 확실한 근거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떨리는 시선의 번쩍임과 함께 존재하는 것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깨닫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시선을 고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병이 낫자 나는 다시 습관적인 습관에 던져졌고, 그것에 대한 사랑스러운 기억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한 식욕은 말하자면 냄새를 맡았지만 아직은 할 수 없었습니다. 먹다.

     

    밀라노: 첩과의 이별

    첩과의 이별은 밀란에서 그의 경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해야 했던 일이었다.

     

    아들 없이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은 첩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결혼을 주선했다: (12세 소녀).

     

    전반적으로 어거스틴은 우울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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