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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신앙/신학 이야기 2026. 7. 22. 14:01

    Intro

    많은 기독교인들이 감명 깊게 읽었으면서 또한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말씀이 있다. 바로 아래의 내용이다.

    [마5:38-42]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1. 평화주의 해석이 아마 가장 이해하기 쉬운 듯하다. 때려도 그냥 맞으라는 거다. 2.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사적 제재를 하지 말라는 것이 대세를 차지해왔다. 3. 최근에는 비폭력 운동으로 설명한 경우가 설득력을 가져왔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상대에게 수치심을 일으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역사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보았는지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본문과 구약 ‘눈에는 눈’ 규정의 배경

    마태복음 5장 38절의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출 21:23-25, 레 24:19-20, 신 19:21 등에 나타나는 이른바 lex talionis(동형보복 법칙)의 인용이다.[15, 16] 교부와 개혁주의 모두 이 규정이 본래 ‘끝없는 복수의 악순환’을 막고, 형벌이 죄와 비례하도록 제한하기 위한 사법적 장치로 이해했다.[1, 2, 7]

    현대 개혁주의 해석(예: Ligonier)도 이 규정이 원래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일상적 인간관계에서 사소한 모욕에 대해 개인이 즉각 맞대응하라는 허락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7] 예수께서는 당시 바리새인들과 많은 유대인들이 이 규정을 개인적 앙갚음의 근거로 오용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그 오용을 바로잡고 ‘보복 없는 관용과 사랑’의 윤리로 재해석한다.[4, 7, 15]



    2. 교부 시대 해석: 급진적 관용과 마음의 준비

    2-1. 요한 크리소스톰

    크리소스톰은 마 5:38-42을 다루는 「마태복음 강해」 18편에서, 구약 보복 규정을 “당시 백성의 상태를 고려한 지혜로운 양보(하나님의 눈높이 맞춤)”로 보면서, 예수께서 그 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의’를 요구하신다고 해석한다.[2]


    그는 “눈에는 눈”이 원래 “손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한 억제 장치”였으나, 이제는 그조차 넘어서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더 참고 내어주는 극단적 자기부인”을 통해 덕을 훈련하라고 설교한다.[2]

    크리소스톰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쪽도 돌려 대며”라는 말씀을 문자적 한 장면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모욕과 손해를 대하는 일반 원리, 곧 “분노하지 않고 조용히 견디며, 심지어 상대가 수치심을 느끼도록 온유로 응답하는 태도”로 확장한다.[2] 그는 이러한 태도가 피해자에게는 “천사와 같이 열정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형성하고, 가해자에게는 양심의 찔림과 회개를 촉발하는 힘을 가진다고 강조한다.[2]

     

    2-2.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에서 이 본문을 길게 주석하며, 구약의 lex talionis“더 큰 악을 더 큰 복수로 갚던 상태에서, ‘받은 만큼만 갚게 하여’ 평화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라고 평가한다.[1]


    그에게서 구약 법은 “지나친 복수에서 일정한 한계를 설정한 자비로운 정의”이며, 예수는 그 법을 폐기하지 않고, “악에 대해 아무런 악도 돌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받을 준비까지 하라”고 요구함으로써 완성하신다고 본다.[1]

    특히 어거스틴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를 문자적 행위 규정보다 “마음의 준비(preparatio cordis)”로 읽는다.[1] 그는 실제로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하속에게 뺨을 맞았을 때 곧바로 다른 뺨을 내어주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전심으로 더 큰 고난(십자가 전체)을 받을 준비가 되어 계셨다”고 보며, 제자들도 외형적 제스처보다 “복수하지 않고 더 당해도 좋다는 마음의 준비”가 핵심이라고 해석한다.[1]

    또한 어거스틴은 “오른편 뺨”을 단순히 얼굴의 한쪽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모욕(특히 그 이름 때문에 받는 경멸)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언급하면서도 결국 쇠사슬과 모욕을 참은 사례를 연결하여 설명한다.[1]

    2-3. 기타 교부들: 원수 사랑과 비보복

    다른 교부들(힐러리, 제롬 등)은 이 본문을 원수 사랑(마 5:43-48)의 앞부분으로 묶어, “공적 폭력보다 개인적 모욕과 손해에 대한 비보복과 인내”의 윤리로 강조했다.[3, 17] 이들은 대체로 “제자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읽으면서, 동시에 순교와 박해 상황에서 “복수 없이 고난을 받아들이는 모범”으로 본문을 적용했다.[3, 17]


    3. 중세와 천주교 전통: 개인 윤리 vs 공적 정의

    중세 라틴 전통과 이후 천주교 주석들은 이 본문을 “그리스도인의 개인 생활에서의 비보복과 관용”으로 읽으면서, 동시에 “국가와 법정의 정의 실현”과 구분하는 경향을 보인다.[18] 성경 해설 자료들은 마 5:38-42가 예수의 ‘다섯 번째 대조(안티테시스)’로서, 율법의 사법적 보복 규정을 폐기하기보다는 “제자의 일상에서 그 규정을 개인적 복수에 사용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한다.[18]

    중세 신학(대표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스콜라 전통)은 이 본문을 “복수의 욕망을 완전히 버리고, 자발적으로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덕의 완성”으로 읽으면서도, 동시에 로마서 13장의 ‘국가 권력의 칼’과 정당방위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체계 안에서 위치시켰다.[18] 따라서 중세 전통의 주류는 이 본문을 “모든 폭력과 형벌의 제도적 사용을 절대 금지하는 평화주의 선언”으로 보기보다는, “개인의 사적 복수 금지와 관용·자비의 요구”로 이해했다.[18]


    4. 종교개혁과 개혁파 전통: 두 왕국과 개인 윤리

    4-1. 루터와 ‘두 왕국’ 구분

    루터는 산상수훈을 해석하면서, 마 5:38-42를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주어진 윤리 규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국가·정부의 직무”와 구분하는 전형적 ‘두 왕국’ 해석을 제시했습니다.[8] 현대 루터파·개혁주의 해설(예: W. Robert Godfrey의 설명)은, 예수의 말씀을 “개인이 자신의 뺨을 돌려대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웃의 뺨을 대신 돌려대는 권리는 없으며, 이웃을 사랑하는 의무가 때로는 이웃을 보호하기 위한 저항을 요구한다”고 요약한다.[8]

    Godfrey는 “나는 내 뺨은 돌려대도 되지만, 이웃의 뺨은 돌려대 줄 권리가 없다”는 루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 5:38-42가 개인적 복수 금지와 원수 사랑을 말할 뿐, 국가의 경찰권·군사력 사용이나 이웃 보호를 위한 정당방위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8]


    4-2. 개혁파 전통과 법·복음 구분

    현대 개혁주의 자료(예: Reformed Answers, Ligonier Devotional, TGC 등)는 마 5:38-42를 “복음적 왕국(교회)에서의 윤리”와 “세속 왕국(국가)의 사법적 정의”를 구분하는 문맥에서 설명한다.[4, 5, 7, 8] 이들은 예수의 말씀을 “보복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개인적 모욕을 관용으로 받으며, 자신의 권리를 집요하게 주장하지 않는 태도”로 이해하지만, 동시에 이 본문이 “법정에서의 모든 항변·소송이나 이웃을 보호하기 위한 공적 저항”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4, 5, 7, 8]

    예를 들어 Ligonier의 해설은 “눈에는 눈”이 법정에서의 합당한 배상 원리였음을 강조하며, 예수께서 비판하신 것은 그 원리를 ‘일상적 모욕에 대한 개인적 복수’에 적용하는 남용이라고 설명한다.[7] 또 다른 개혁주의 답변(Reformed Answers)은 “마 5:39은 악 자체를 예방하기 위한 모든 저항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revenge)를 금지하는 문맥”이라며, 성경 전체에서 악을 막기 위한 저항과 방어의 정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4]

    현대 개혁주의 논문(TGC의 “Bearing Sword in the State, Turning Cheek in the Church”)은 이 본문을 “교회 안에서는 칼이 아니라 뺨을 돌려대고, 국가에서는 칼을 통해 악을 억제하는 이중 구조”로 해석하는 고전적 개혁주의 ‘두 왕국’ 사고를 정리한다.[5]


    5. 재세례파(아나밥티스트)와 역사적 비저항 해석

    이에 비해, 재세례파 전통은 마 5:38-42를 보다 문자적으로, 그리고 급진적으로 적용하여 “그리스도인의 비저항(non-resistance)과 평화주의”를 강조해 왔다.[9] 역사적 아나밥티스트들의 비폭력 문헌은 이 본문과 마 5:43-48, 롬 12:17-21 등을 결합해, “참된 그리스도인은 악에 어떤 폭력으로도 맞서지 않고, 소송을 제기하거나 군복무를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9]

    이 전통에서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쪽도 돌려 대며”,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라는 구절은, 곧 “무기 내려놓기·소송 포기·국가 폭력 구조에 협조하지 않기”로 연결된다.[9] 따라서 마 5:38-42는 재세례파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비폭력 제자도”의 핵심 텍스트로 자리잡았고, 교부·개혁주의보다 훨씬 강한 평화주의적 실천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었다.[9]


    6. 근·현대 평화주의 및 비폭력 저항 해석

    6-1.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

    19–20세기에 이르러,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등에서 마 5:39을 “교회의 치명적 불순종의 본문”으로 규정하며, 모든 폭력·전쟁·형벌을 거부하는 철저한 평화주의를 주장한다.[10] 톨스토이의 해석은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마 5:39이 “어떤 형태의 폭력도 금지하는 절대 명령”이라고 강조하며, 이후 간디가 그의 저술에서 영감을 받아 비폭력 저항 운동을 전개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10]

    현대 평화활동가 John Dear는 마 5:39-43을 “복음서에서 가장 혁명적인 문장”이라 부르며, 예수의 ‘악한 자에게 폭력으로 맞서지 말라’는 명령이 “세계적 군축과 비폭력 혁명”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10] 그는 톨스토이·간디·마틴 루터 킹이 모두 이 구절을 국가·사회 차원의 비폭력 저항 운동의 근거로 삼았으며, 예수가 단지 개인적 윤리만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에게 비폭력 대안을 찾으라”고 요구한다고 해석한다.[10]

     

    6-2. Walter Wink의 ‘제3의 길’(Third Way) 해석

    Walter Wink는 대표적인 신약학자·평화주의자로서, 마 5:38-42을 “폭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폭력으로 맞서는 것도 아닌, 적극적·비폭력적 저항의 제3의 길”로 해석했다.[11, 12, 13]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른편 뺨을 치는” 것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주로 상전이 종을 ‘손등으로 치는(backhand slap)’ 모욕 행위를 가리키며, 이때 왼손은 불결하여 사회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른쪽 뺨’은 수치스러운 박대를 의미한다.[11, 12]

    피해자가 “다른 뺨을 돌려대는” 행위는 단순한 수동적 복종이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정면을 향한 뺨을 내밀어, 상전이 종이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도록 강요하는 상징적 행위”로 해석된다.[11, 12, 13] 마찬가지로, 겉옷까지 내어주는 행위는 로마 법상 벌거벗은 자를 바라보는 자가 수치를 느끼는 문화 맥락에서, “법을 악용하는 자를 법정에서 수치스럽게 만드는 풍자적 저항”,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로마 군인의 요구에 “십 리를 함께 감으로써 군인의 상관에게 문제가 생기게 만드는 전략적 저항”으로 읽힌다.[11, 12]

    따라서 Wink는 예수의 명령을 “악을 방치하라는 소극적 인내”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용기 있는 비폭력 저항 훈련”으로 이해하며, 산상수훈 전체를 ‘비폭력 훈련 매뉴얼’로 제시한다.[11, 12, 13]

     


    7. 현대 개혁주의·복음주의 해석: 개인 윤리, 원수 사랑, 비복수

    현대 개혁파·복음주의 해석자들은 위의 평화주의·제3의 길 해석에서 얻은 통찰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본문의 기본 문맥을 “개인의 인간관계와 교회 공동체 윤리”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4, 5, 7, 14, 18]

    예를 들어 Ligonier Devotional은 이 본문이 “사법적 정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려는 마음을 다루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리스도인이 “항상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 사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7] Reformed Answers 역시 “악 자체를 막기 위한 정당방위와 공적 질서 유지”는 성경적으로 허용되지만, 마 5:38-42은 “복수 동기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금지하는 것”이라며, 본문이 모든 형태의 저항이나 공적 형벌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4]

    현대 개혁주의 논문과 설교들(예: PCA 설교, TGC 글 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강조한다.[4, 5, 7, 8, 14]

    • 이 본문은 “개인의 모욕에 대한 반응”을 다루며, 정당방위·타인 보호·국가 직무에 대한 직접 규제가 아니다.[4, 7, 8]
    • 그리스도인은 “보복을 추구하지 않고, 자비와 관용을 기본 자세로 삼으며, 자신의 권리를 집요하게 주장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4, 7, 14]
    • 동시에, 이웃 사랑의 명령은 때로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악을 제지하고, 국가 제도가 약자를 보호하도록 참여하는 책임”을 포함할 수 있다.[4, 5, 8]

    8. 핵심 쟁점들: 문자적 적용, 개인·사회 구분, 두 왕국과 비폭력

    해석사 전반을 정리하면, 마 5:38-42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주요 논점들이 형성되어 왔다.

    1. 문자적·급진적 평화주의 vs 개인 윤리 중심 해석

    • 재세례파·톨스토이·간디·킹·Wink 등은 이 본문을 국가·사회 차원까지 포괄하는 절대적 비폭력·평화주의 명령으로 읽어 왔다.[9, 10, 11]
    • 반면 교부·중세·개혁파 전통은 이를 “개인의 복수 금지와 관용”으로 읽되, 국가·법정의 정의 실현과 정당방위의 가능성을 분명히 구분해 왔다.[1, 2, 4, 7, 18]

    2.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의 범위

    • 평화주의 해석은 이 구절을 “악을 어떤 폭력으로도 저지하지 말라”는 절대적 명령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9, 10, 11]
    • 개혁파·복음주의 해석은 문맥상 “복수(revenge)를 위한 폭력을 금지하는 것”으로 제한하며, 악을 예방하고 이웃을 보호하는 저항과는 구분한다.[4, 7, 8]

    3. 과장법과 마음의 준비

    • 어거스틴과 많은 주석가들은 예수의 표현이 “의도적 과장(hyperbole)”을 사용하여 마음의 상태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실제 행동 규정보다 “복수 의지의 완전한 포기와 권리 포기를 기꺼이 감내하는 준비된 마음”을 강조한다.[1, 18]
    • 이는 문자주의적 평화주의와 달리, 상황 분별과 지혜를 통해 이웃 사랑의 최선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해석을 이끈다.[4, 7, 18]

    4. 두 왕국·교회와 국가의 분리

    • 루터·개혁파 전통은 이 본문을 “교회·성도의 삶”에 우선 적용하고, 국가·정부의 법과 칼은 로마서 13장, 신명기 형벌 규정 등 다른 본문들에 근거하여 이해하는 ‘두 왕국’ 구분을 발전시켰다.[4, 5, 7, 8]
    • 이 구분을 통해 그들은 “개인은 뺨을 돌려대고, 교회는 박해를 참지만, 국가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칼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4, 5, 7, 8]

    5. 비폭력 저항과 창의적 사랑의 실천

    • Wink와 현대 비폭력 신학은 이 본문을 단지 ‘맞지 말고 참으라’는 소극적 인내가 아니라, “창의적 비폭력 저항을 통해 폭력 구조를 드러내고 변혁하는 실천”으로 읽는다.[11, 12, 13]
    • 이는 재세례파의 비저항과 개혁파의 두 왕국 사이에 놓인, “개인의 윤리이면서 동시에 사회 변혁을 겨냥한 적극적 비폭력”이라는 새로운 해석 축을 형성한다.[11, 12, 13]

    9. 정리: 해석사의 큰 흐름 속에서 본문의 위치

    정리하자면, 마 5:38-42는 해석사에서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 왔다.

    • 교부·중세·종교개혁·개혁파 주류: 구약 ‘눈에는 눈’ 규정을 사법적 정의의 제한 규정으로 보고, 예수께서 이를 완성하시면서 개인적 복수의 모든 욕망을 철저히 금지하고, 권리 포기와 관용·원수 사랑을 요구하시는 본문으로 해석.[1, 2, 7, 18] 그러나 국가·법정·정당방위의 영역은 별도의 성경 텍스트(롬 13 등)에 따라 인정하며, 본문을 절대 평화주의 선언으로 보지는 않음.[4, 5, 8]
    • 재세례파·평화주의·비폭력 운동: 이 본문을 “모든 폭력·전쟁·형벌·소송을 거부하는 급진적 비폭력 제자도”의 근거로 읽고, 국가·사회 차원까지 포괄하는 평화주의 실천을 전개.[9, 10, 11]
    • 현대 비폭력 신학(Wink 등): 본문을 “폭력에 굴복하지도 않고, 폭력으로 맞서지도 않는 제3의 길”, 곧 적극적·창의적 비폭력 저항 훈련으로 해석하며, 역사·사회적 맥락을 세밀하게 분석.[11, 12, 13]
    • 현대 개혁파·복음주의: 교부·종교개혁 전통을 이어, 이 본문을 주로 “교회·성도의 삶에서의 원수 사랑·비복수·권리 포기”로 이해하고, 동시에 악을 예방하고 이웃을 보호하는 책임, 국가의 사법적 기능과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해 옴.[4, 5, 7, 14, 18]


    이처럼 마 5:38-42는 단순한 도덕 규범을 넘어, 사랑·정의·폭력·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의 핵심 본문으로서, 각 시대·전통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고 적용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Bibliography)

    교부 및 중세 역사 문헌

    [1] 어거스틴(Augustine). On the Sermon on the Mount. Translated by William Findlay. NPNF1-06.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
    [2]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Homilies on the Gospel of Saint Matthew, Homily 18. New Advent.
    [3] In Communion. "Patristic reflections: Not an eye for an eye but love of enemies."
    [17] YouTube. "Matthew 5:39 - The Bible Explained by Orthodox Church Fathers."
    [18] NCEC (National Catholic Education Commission) & Clerus.org. "Concerning Retaliation - Matthew 5:38-42."


    종교개혁 및 개혁주의 문헌

    [4] Reformed Answers. "Non-Violent Resistance to Evil."
    [5] The Gospel Coalition (TGC). "Bearing Sword in the State, Turning Cheek in the Church: A Reformed Two-Kingdoms Perspective."
    [6] 존 칼빈(John Calvin). Commentary on a Harmony of the Evangelists Matthew, Mark, and Luke. CCEL.
    [7] Ligonier Ministries. "Retaliation and the Kingdom."
    [8] Godfrey, W. Robert. "Are Christians Called to Be Pacifists According to Matthew 5:38-42?" Ligonier Ministries.
    [14] Harvest PCA. "An Eye for an Eye - Matthew 5:38–42."

     

    평화주의 및 비폭력 저항 연구

    [9] "Biblical Non-Resistance From the Historic Anabaptist Perspective."
    [10] Dear, John. "'Offer no violent resistance to one who does evil' is most revolutionary sentence in the Gospels." National Catholic Reporter.
    [11] Wink, Walter. Jesus and Nonviolence: A Third Way.
    [12] Holy Trinity. "Turning the other cheek and radical nonviolence."
    [13] Lutheran Peace Fellowship. "Transcript of Walter Wink's Nonviolence for the Violent."

     

    현대 학술 연구 및 주석

    [15] Davis, James F. Lex Talionis in Early Judaism and the Exhortation of Jesus in Matthew 5.38–42.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16] Allison, David C. "The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Matthew: Lessons lear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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