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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도덕 교도권, Vincentian Canon, 그리고 교리 변화신앙/신학 이야기 2026. 6. 25. 12:34
가톨릭 도덕 교도권, Vincentian Canon, 그리고 교리 변화
노예제 승인 문헌, 종교 자유, Humanae Vitae, 개신교 정죄를 통한 역사적 의식과 교황무류성의 긴장
서론
이번 포스팅은 가톨릭 도덕 교도권의 역사적 변화와 교황무류성의 긴장을, 특히 노예제 승인 문헌과 그 후대의 정죄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교리가 변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가톨릭이 오랫동안 진리의 기준으로 제시해 온 전통의 규칙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고, 또 어떻게 흔들리게 되었는가에 있다.
이 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뱅상 드 레랭(Vincent of Lérins)의 이른바 Vincentian Canon이다. 그는 Commonitorium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Now in the Catholic Church itself we take the greatest care to hold that which has been believed everywhere, always and by all. That is truly and properly ‘Catholic,’ as is shown by the very force and meaning of the word, which comprehends everything almost universally. We shall hold to this rule if we follow universality, antiquity, and consent.”
한글 번역은 아래와 같다.
“이제 가톨릭 교회 안에서 우리는 어디서나, 언제나, 그리고 모든 이에 의해 믿어져 온 것을 고수하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리고 마땅히 ‘가톨릭(보편적)’인 것입니다. 이는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 단어 자체의 힘과 의미가 보여주는 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보편성, 고대성(전통), 그리고 합의를 따른다면 이 규칙을 지켜내게 될 것입니다.”
또 그는 “whatever he shall find to have been held, approved and taught, not by one or two only but by all equally and with one consent, openly, frequently, and persistently, let him take this as to be held by him without the slightest hesitation”라고 덧붙인다.
이것 또한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또 그는 “단지 한두 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가 동등하게 확고한 합의를 바탕으로 공개적으로, 빈번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승인하며 가르쳐 온 것으로 확인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이 지켜야 할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규칙은 가톨릭 전통 안에서 참된 교리의 식별 기준으로 오랫동안 기능해 왔다. 그러나 바로 이 규칙이 노예제 옹호 논리와 결합되었고, 나아가 교황 칙서들이 실제로 노예화를 승인하는 문구를 사용했다는 점은, 후대의 노예제 정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Vincentian Canon, 노예제 승인 문헌, 종교 자유, Humanae Vitae, 개신교 정죄, 그리고 교황무류성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가톨릭 도덕 교도권 내부에 형성된 역사적·신학적 긴장을 해명하고자 한다.
Vincentian Canon과 전통의 절대 기준
Vincent of Lérins가 제시한 규칙의 핵심은 단순히 “오래된 것은 참이다”라는 말이 아니다. 그의 규칙은 보편성(universality), 오래됨(antiquity), 합의(consent)를 동시에 요구한다. 다시 말해, 참된 가톨릭 신앙은 전 교회가 오래전부터 공통으로 고백해 온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후대에 가톨릭 정통성과 교리의 안정성을 옹호하는 데 매우 강력한 기능을 했다. 교리 변화는 쉽게 의심받았고, 연속성은 곧 진리의 증거로 여겨졌다. 실제로 17세기 보쉬에(Jacques Bossuet)는 “무엇이 어디서나, 항상, 모든 이가 믿어 온 것인가”를 가톨릭 진리의 절대 기준으로 이해했고, 교리의 변화는 거짓의 징표라고 보았다.
문제는 바로 이 규칙이 추상적 원리로만 남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은 실제로 특정 도덕 질서와 사회 제도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사용되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노예제이다.
노예제 승인 문헌과 Vincentian 논리의 결합1. 보쉬에의 노예제 옹호
근대 가톨릭 전통 안에서 노예제는 단순히 묵인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성경과 전통, 성령을 근거로 옹호되었다. 관련 정리에 따르면, Bossuet는 노예제를 정죄하는 것은 “성령을 정죄하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그 이유는 바울이 노예들에게 “그 상태에 머물라”고 명령했고, 주인들에게 해방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의 구조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단순히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성경과 전통의 연속성 자체를 근거로 노예제를 방어했다. 곧, “언제나·어디서나·모든 이가 믿어 온 것”이 참된 가톨릭 진리라면, 노예제 역시 그러한 전통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죄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논리는 후대에 단순한 오류 하나가 아니라, 전통 식별 방식 전체의 문제를 드러낸다. 만약 Vincentian Canon이 실제 역사에서는 노예제 같은 제도를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했다면, 그 규칙은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2. Dum Diversas의 직접 승인
교황 니콜라오 5세의 1452년 칙서 Dum Diversas는 노예제 승인 문제에서 가장 충격적인 문헌 가운데 하나다. 이 칙서는 포르투갈 왕 알폰수 5세에게 “to invade, search out, capture, vanquish, and subdue all Saracens and pagans whatsoever, and other enemies of Christ wheresoever placed(어디에 있든 모든 사라센인과 이교도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른 원수들을 침공하고, 수색하고, 사로잡고, 정복하며, 복속시킬)” 권한을 부여하고, 이어 그들의 인격에 대해 “to reduce their persons to perpetual slavery(그들을 영원한 노예 상태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명시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표현의 모호함이 아니다. “to reduce their persons to perpetual slavery”는 단순한 군사적 종속이나 일시적 예속이 아니라, 사람을 “영구한 노예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명시적 승인이다. 더욱이 이 칙서는 단지 적군의 재산 몰수 정도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영구적 노예 상태에 두는 것을 교황의 권위로 허가한다.
이 문헌이 심각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이것은 후대의 사적 관행이 아니라 교황 칙서라는 공식 문헌이다. 둘째, 그 대상은 단순한 전쟁 포로가 아니라 “Saracens and pagans whatsoever, and other enemies of Christ wheresoever placed(어디에 있든 그 어떤 사라센인과 이교도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른 원수들)”라는 매우 넓은 범주로 제시된다. 셋째, 그 최종 상태는 “perpetual slavery(영원한 노예 상태)”로 규정되며, 이는 인간을 지속적으로 소유 가능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발견의 교리
사실 이 교리가 그 유명하고도 악명 높은 ‘발견의 교리(Doctrine of Discovery)’의 핵심 근거가 되는 역사적 문서이다. 발견의 교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15세기 가톨릭 교회가 유럽의 기독교 탐험가들에게 "기독교 국가가 아닌 땅을 '발견'하면 그곳을 영토로 삼고, 원주민들을 지배해도 된다"고 정당성을 부여해 준 법적·신학적 개념이다.
- 약탈과 노예제의 정당화: 번역하신 문장 그대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라센인(무슬림)이나 이교도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영원한 노예 상태(perpetual slavery)’로 만드는 것을 교황이 공식적으로 허락한 것이다.
- 제국주의의 서막: 이 칙령들은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고 식민지화하며 원주민을 학살·착취하는 끔찍한 역사적 비극의 법적 무기가 되었다.
이 '발견의 교리'는 수백 년 동안 가톨릭 교회의 큰 오점으로 남아 있었다.
결국 수많은 원주민 단체와 인권 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 끝에, 비교적 최근인 2023년 3월, 바티칸(가톨릭 교황청)은 이 발견의 교리가 가톨릭 신앙에 부합하지 않으며 당시 교황들의 칙령이 정치적으로 조작된 문서였다고 공식 선언하며 이를 공식 폐기(철회)했다.
이게 어떻게 2023년까지도 폐기하지 않고 남을 수 있었는지 그게 참 이해가 가지 않지만, 사실상 이 발견의 교리가 지금까지도 서구의 법과 역사에 엄청난 작용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발견했지 않은가? 원주민들이 이미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고, 발견한 사람이 그 땅을 점유하면 그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원주민도 발견한 사람이 마음대로 노예로 삼아도 된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서구 열강 중 발견한 놈들이 마음대로 빼앗아도 된다는 논리가 교황 니콜라오 5세의 Dum Diversas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이 발견의 논리와 싸우고 있다. 자세한 건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자.
레오 14세 교황이 사과한 것, 사과하지 않은 것
Intro레오 14세가 노예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 핫하다. 그 중에서도 아래 링크의 기사가 인상적이다. 수 세대를 노예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가톨릭이 얼마나 쓰레기 같았으며, 2015년
christianprince.tistory.com
3. Romanus Pontifex의 재확인
1455년 칙서 Romanus Pontifex는 이 승인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이 문헌은 앞선 권한을 재확인하면서, 포르투갈 왕이 “to invade, search out, capture, vanquish, and subdue all Saracens and pagans whatsoever(그 어떤 사라센인과 이교도들이든 침공하고, 수색하고, 사로잡고, 정복하며, 복속시킬)” 수 있으며, 그 결과 그들의 인격을 “to reduce their persons to perpetual slavery(영원한 노예 상태로 전락시킬)” 수 있음을 다시 적시한다.
또한 이 칙서는 포르투갈이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노예를 “by force or by trade(무력이나 교역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단지 군사 정복의 부산물이 아니라, 노예 획득 자체가 제도적·경제적 질서로 승인되었음을 뜻한다.
결국 Dum Diversas와 Romanus Pontifex는 노예제를 단순히 묵인한 것이 아니라, 교황의 권위 아래 명시적으로 제도화하고 확장 가능한 식민 질서의 일부로 승인한 문서들이다.
왜 이것이 중대한 문제인가
이 문헌들이 중대한 문제인 이유는, 그것들이 단지 시대의 한계나 개인의 사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황적 권위와 전통의 논리, 성경적 정당화가 결합된 형태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예제는 단지 “당시 사회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제도”로 남지 않고, 교회 권위에 의해 적극적으로 승인되었다.
그런데 현대 가톨릭은 노예제를 정반대로 평가한다. 관련 정리에 따르면, 1965년 이후 교회는 노예제를 인간 존엄을 모욕하는 범죄로 전면 정죄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단순히 “과거에 잘못이 있었다”는 정도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때 전통·성경·성령·교황 권위를 동원해 승인했던 것이 후대에는 복음에 반하는 것으로 선언된다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Vincentian Canon은 심각한 해석학적 위기에 빠진다. 만약 “항상·어디서나·모든 이가 믿어 온 것”이라는 규칙이 실제로는 노예제 옹호에 사용될 수 있었고, 교황 문서들 역시 그 질서를 승인했다면, 이 규칙은 단순한 진리 식별의 안전장치가 아니라 역사적 오류를 동결하는 장치로도 기능할 수 있었던 셈이다.이제 와서 "그건 교황무류성이 아니었어"라고 하기에는, "노예제를 정죄하면 성령을 정죄하는 거"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가톨릭이 진지하게 고수해왔던 변개할 수 없는 진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수업을 들은 많은 신부들이 이 수업에 충격을 받았다. 이게 왜 충격적인지는 바로 아래의 내용에서 알 수 있다. 특히나 Humanae Vitae에서 다루어지게 된다.
Veritatis Splendor와 “변화가 있으나 변화는 없다”는 구조
현대 가톨릭 도덕신학은 이런 위기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Veritatis Splendor는 한편으로 doctrinal development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timeless absolute moral truths의 존재를 고수한다. 이 구조는 “교리가 발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교회는 언제나 같은 진리를 가르쳐 왔다”는 명제를 보존하려는 시도다.
(가톨릭이 이제 와서야 이전 전통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고심하고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은 개신교에서 벌써 500년 전에 정리한 것이기는 하다. 결론적으로, 교회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결국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가톨릭은 지금까지도 교회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조차도 교회가 정한다는 게 가톨릭 주장이 아닌가? 그만큼 모든 기준은 교회에 있기에, 교회에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실제로 오류가 있는 거다. 그래서 이것을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노예제 사례는 이 구조의 취약점을 드러낸다. 노예제는 단순한 적용의 조정이 아니라, 사실상 도덕 판단의 전환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여전히 “발전”이라고만 부른다면, 발전이라는 개념은 실제 변화를 흐리게 만드는 방어적 언어가 될 위험이 있다.그러니까 개신교가 "가톨릭 교회가 틀렸다"고 주장했는데, 가톨릭에서는 "교회가 틀릴 리가 없다"고 주장한 거다. 그런데 이제 와서 노예 제도는 잘못된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이걸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건데 양심 있는 가톨릭 신학자들이 받아들이기가 힘든 거다. 뭐, 이제 와서 교회는 틀릴 수 있지만 교황은 틀릴 수 없다는 식으로 후퇴하지만.. 애초에 노예 제도 자체가 교황 칙령으로 승인된 거다. 그러니 교황이 교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에 최종 단안을 내릴 때에만 무류한 결정이다 라고 더 후퇴를 하는데, 노예 제도를 정죄하면 성령을 정죄한다고까지 믿어진 교회의 믿음은 갑자기 어떻게 되냐는 거다.
종교 자유와 반전의 반복
이 긴장은 종교 자유 논의에서도 반복된다. 한때 비오 9세는 “오류에는 권리가 없다(error has no rights)”고 가르쳤지만, 후대 교회는 종교 자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여기에 대해서도 공식 설명은 “변화가 아니라 발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조는 노예제 문제와 유사하다. 과거에는 불변의 진리처럼 보였던 교도권 명제가 후대에는 더 깊은 인간 이해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수정된다. 따라서 노예제와 종교 자유는 함께 읽혀야 한다. 둘 다 가톨릭이 스스로의 과거 가르침을 더 이상 문자적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된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Humanae Vitae와 ordinary magisterium의 위기 의식
Humanae Vitae를 둘러싼 논쟁은 이 문제를 교도권의 자기의식 차원에서 드러낸다. 1966년 소수파 작업 문서는 “교회는 교회의 대답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대답은 진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만약 교회가 수세기 동안 그렇게 잘못 가르쳐 왔다면 ordinary magisterium 전체의 권위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문장은 노예제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실제로 교회가 노예제를 오랫동안 승인하거나 지지했다가 후대에 정죄했다면, 소수파가 두려워한 바로 그 일이 이미 일어난 셈이기 때문이다. 즉, 변화는 단순한 적용 수정이 아니라, ordinary magisterium의 신뢰 구조를 위협하는 사건으로 나타난다.
잘바의 질문, 곧 “그렇다면 Casti connubii의 규범에 따라 우리가 지옥으로 보냈다고 여겼던 수백만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절규는, 노예제와 종교 자유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만약 과거의 단죄와 승인들이 오류를 포함했다면, 그것에 따라 형성된 사목 판단과 양심의 확신 역시 재평가되어야 한다.사실 나는 이 부분이 같이 수업을 듣던 신분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부분 중 하나였다. 가톨릭이 "너 지옥"이라고 이야기하며 지옥에 보냈는데, 애초에 그게 잘못된 것이었다면, 지금 나도 똑같은 문제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거다. 그래서 수업 내용을 아래에 옮겨보겠다.
한글 번역 (영어 원문은 아래에)
사례 3: 후마네 비테(Humanae Vitae, 교황 바오로 6세의 산아 제한에 관한 회칙, 1968년)로 나아가는 과정:
a) 바오로 6세, 훈화(Allocution), 1964년 6월 23일:
- 일치(획일성)에 대한 촉구
- 규범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 수 있음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함
b) 결혼과 가정 문제에 관한 교황청 위원회:
- 소수파 보고서 (1966년 5월 23일):
- “교회는 그 답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답이 참되기 때문이다. ...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가톨릭교회가 역사 속 그 모든 세기 동안 그토록 잘못되게 오류를 범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이 답은 참된 것이다. ... 만약 교회가 그러한 방식으로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면, 도덕적 사안에 대한 통상 교도권(ordinary magisterium)의 권위가 의문에 부쳐질 것이다. 신자들은 교도권이 제시하는 도덕 가르침, 특히 성적 사안에 대한 가르침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 논거들:
- 도덕적 타락(미끄러짐)의 위험
- 변화 =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자 교회를 인도하는 성령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 클래그(Clague)가 인용한 풍자적인 대화:
- 잘바(Zalba) 신부가 감정적으로 주장했다: “만약 그 규범들이 유효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카스티 코누비(Casti connubii)의 규범에 따라 우리가 지옥으로 떨어뜨린 수백만 명의 영혼들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 사랑스러운 크롤리 부인(Mrs. Crowley)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하느님께서 신부님의 모든 명령을 정말로 다 수행하셨다고 믿으시나요?” (Clague, 73에서 인용)
영문 원문
Example 3: The process towards Humanae Vitae (Pope Paul VI, Encyclical on the Regulation of Birth, 1968):
a) Paul VI, Allocution, 23 June 1964:
- call to uniformity
- implies the possibility of change as norms may become 'out of date'
b) Pontifical Commission on the Problems of Marriage and Family:
- Minority Working Paper (23 May 1966):
- "The Church cannot change its answer because this answer is true ... It is true because the Catholic Church, instituted by Christ to show men a secure way to eternal life, could not have so wrongly erred during all those centuries of its history ... If the Church could err in such a way, the authority of the ordinary magisterium in moral matters would be thrown into question. The faithful could not put their trust in the magisterium’s presentation of moral teaching, especially in sexual matters."[22]
- Arguments:
- risk of moral slippage
- change = admitting errors and questioning the role of Holy Spirit in guiding the Church
- Clague quotes sarcastic dialogue:
- Zalba argued emotionally: ‘What then about the millions of souls which according to the norms of Casti connubii we have damned to hell, if those norms were not valid?’
- The lovable Mrs. Crowley answered casually: ‘Do you really believe that God has carried out all your orders?’ (Quoted in Clague, 73)
카스티 코누비(Casti Connubii)란?
'카스티 코누비'(라틴어: Casti connubii, '순결한 혼인에 관하여')는 1930년 12월 31일 교황 비오 11세가 반포한 가톨릭교회의 공식 회칙(Encyclical)이다. 가톨릭교회의 현대적 결혼관과 성(性) 윤리의 전통적 뼈대를 이룬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핵심 내용과 역사적 맥락
- 반포 배경: 1930년 성공회(Anglican Communion)가 램버스 회의를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제한된 상황에서의 인공 피임'을 허용했다. 이에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인 기독교 결혼관을 고수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 회칙을 발표했다.
- 인공 피임 및 낙태의 엄격한 금지: 회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모든 형태의 인공 피임과 낙태를 신의 법에 반하는 중대한 죄악(대죄)으로 규정하고 전면 금지한 것이다. 혼인의 일차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있다고 명시했다.
- 우생학 반대: 당대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우생학적 관점(장애인이나 부적격자로 판단된 이들에게 강제로 불임 시술을 행하는 등)에 강력히 반대하며, 인간의 신체와 가정은 국가 권력보다 선성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앞선 대화(소수파 보고서)와의 연결고리
위의 내용, 1966년 교황청 위원회 문건에서 잘바(Zalba) 신부가 왜 이 회칙을 언급하며 감정적으로 격앙되었는지 그 맥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그 규범들이 유효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카스티 코누비(Casti connubii)의 규범에 따라 우리가 지옥으로 떨어뜨린 수백만 명의 영혼들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1930년 카스티 코누비가 반포된 이후, 가톨릭교회는 "피임은 지옥에 갈 수 있는 무거운 죄"라고 신자들에게 아주 엄격하게 가르쳐왔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 경구피임약이 개발되고 사회가 변하면서 교황청 내부에서도 "피임을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격렬한 논쟁이 일었다. 이때 잘바 신부를 비롯한 보수파(소수파) 세력은 "만약 이제 와서 피임을 허용한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카스티 코누비의 가르침을 따르느라 고통받았던 신자들이나 피임을 해서 지옥에 갔다고 정죄당한 영혼들은 뭐가 되느냐? 이는 교회가 과거에 틀렸음을 인정하는 꼴이다"라며 강력히 반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교황무류성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교회는 교회의 대답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변화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제 와서 그게 진리가 아니라고 한다면..? 심각한 상황에 빠져 버리는 거다.
가톨릭에서는 후퇴하고 후퇴해서 교황 무류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도 논쟁이 심한 거다. 이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자유주의 성향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교황무류성을 결정하기 이전의 순수한 모습의 가톨릭교회를 고수해야 한다며 복고 가톨릭교회가 창립된다.
개신교 정죄와 에큐메니즘의 문제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신교 정죄 역시 같은 구조를 갖는다. 공의회는 개신교의 핵심 교리, 특히 칭의론을 강하게 정죄했다. 그러나 후대의 가톨릭은 Unitatis Redintegratio를 통해 개신교를 “분리된 형제”로 부르며, 그 안에도 “성화와 진리의 요소”가 있다고 인정한다.
공식적으로 트리엔트의 교리 정의는 철회되지 않았지만, 사람과 공동체를 대하는 실제 어조와 관계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이 점 역시 노예제와 종교 자유 문제와 평행을 이룬다. 교도권의 정죄는 후대에 문자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보다 포괄적이고 역사적인 언어로 재해석된다.
이렇게 되면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만약 노예제 승인과 개신교 정죄가 후대에 약화되거나 재구성될 수 있다면, 교도권의 최종성은 어디에 있는가.물론, "그건 발전된 거야"라면서 지금과 이전의 가톨릭은 같은 가톨릭이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학자들은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가 없다. 그 당시 "노예 제도를 정죄하면 성령을 정죄하는 거다"라고 말한 사람들이 정말 자기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생각을 했냐는 거다. 노예 제도를 정죄했기에, 아마도 지금의 가톨릭교회를 이전의 가톨릭교회가 보았다면 정죄되어 마땅하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교황무류성과 실제 신뢰 구조가톨릭 공식 교리에 따르면, 교황무오성은 매우 좁은 조건 아래 작동한다. Pastor Aeternus는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전 교회가 반드시 믿어야 할 것으로 최종 정의할 때 오류로부터 보호받는다고 가르친다. 교리서 역시 이를 반복하며, 무오성은 모든 교황 발언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신자들의 신뢰 구조는 그렇게 좁지 않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노예제, 종교 자유, 개신교 정죄, 성윤리, 사형 등에 관한 가르침을 교회의 권위 있는 도덕 판단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과거 교황 칙서가 “그들을 영원한 노예 상태로 전락시킬 것”을 승인했다는 사실은, 단지 특수한 역사 문서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실제 권위 체계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 된다.
이 점에서 노예제 문제는 교황무류성의 법적 범위를 넘어서, ordinary magisterium의 실질적 신뢰 문제를 제기한다. 공식적으로 무류성은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훨씬 넓은 교도권 전체가 사실상 무류적으로 기능해 왔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와 전통의 재해석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연설에서 사형 문제를 다루며, 과거에는 그것이 정의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복음에 본질적으로 반하는 것(per se contrary to the Gospel)”이라고 선언한다. 동시에 그는 과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그 판단은 더 그리스도교적이라기보다 더 법주의적이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The word of God cannot be moth-balled like some old blanket(하느님의 말씀은 낡은 담요처럼 장롱 속에 넣어 묻어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말씀은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현실로서 발전하고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Doctrine cannot be preserved without allowing it to develop(교리는 발전하도록 허용하지 않으면 보존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교리를 경직되고 불변적인 해석에 묶어 둘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진술은 Vincentian Canon을 정태적 기준으로 사용하는 방식과 긴장을 이룬다. 프란치스코도 성 빈첸트를 인용하지만, 그 인용은 더 이상 과거의 동일성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라는 뜻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전통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해석된다.
결론
Vincentian Canon은 오랫동안 가톨릭 진리의 식별 기준으로 존중되어 왔다. 그러나 노예제 문제는 이 규칙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떤 위험을 안고 있었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보쉬에는 이 규칙과 성경, 성령의 권위를 결합해 노예제를 옹호했고, 교황 칙서 Dum Diversas와 Romanus Pontifex는 사람들을 “그들을 영원한 노예 상태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승인했다.
후대 교회가 노예제를 정죄하게 되었을 때, 바뀐 것은 단순한 사회 정책이 아니었다. 바뀐 것은 전통을 식별하는 방식, 교도권의 신뢰 구조, 그리고 성경과 성령을 호소하는 방식 자체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예제 문제는 종교 자유, Humanae Vitae, 개신교 정죄, 교황무오성 문제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결국 이 문제는 가톨릭이 자기 전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전통은 “항상·어디서나·모든 이가 믿어 온 것”이라는 정태적 저장고인가, 아니면 역사 속에서 과거 실패를 인정하고 더 깊은 복음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살아 있는 현실인가. 노예제 승인 문헌의 직접 인용은, 이 질문이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실제 문서와 실제 권위의 역사에 뿌리박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마지막 덧.솔직히 개신교도의 입장에서 교회가 지금 틀릴 수도 있고, 역사 속에서도 틀릴 수도 있는 문제인데 뭘 이렇게 쓸데없는 것에 열심인가 싶었다. 심지어 가톨릭 교회는 무수히 오류를 저지르지 않았는가?
루터가 분노하게 만든 면벌부 사건도 그렇다. 돈을 넣으면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지옥에서 구출될 수 있다는 해괴하고 이단적인 가톨릭의 논리에 분노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된 거 아닌가?
헨리 8세가 영국 국교회를 세우게 된 것만 해도, 교황이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승인해왔던 걸 갑자기 정치적인 이유로 승인해주지 않은 것에 있었다. 그 외에도 가톨릭으로 돌아가볼까 생각하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충격을 준 사건을 가톨릭이 일으키고 교황이 잘했다고 칭찬까지 했었고.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며 일반 성도들의 성경 공부를 계속 막아왔고, 예배 시간에 자국어로 된 성경을 읽지도 못하게 했던 가톨릭이다. 종교개혁 때에는 성경 번역했다고 또는 번역된 성경을 읽었다고 모조리 죽여버리기도 했었다. 그거 때문에 개혁주의 교회에서 처음으로 모국어로 된 예배를 드리고 울었다는 편지까지 남아 있을 정도 아니겠는가?
그런데 1960년대에 갑자기 예배 시간에 모국어도 쓰게 해주고, 성경 공부도 좀더 열어주기도 해오면서 "니네가 루터란과 무슨 차이냐"면서 성 비오 10세회가 창단되기도 했다.
내 말은, 지금 가톨릭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교회란 원래 실수도 하고 오류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특히나 교회의 결정은 오류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C. S. 루이스나 프란시스 쉐퍼 같은 사람이 "시대 정신"을 말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그 시대의 정신에 영향을 받을 수 없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의 결정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도 그러했고 (그 때문에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거 아닌가? 가톨릭이 안 받아주고 축출하는 바람에 새로운 교회가 된 거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교회의 잘못된 결정과 오류를 날마다 개혁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교회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가톨릭은 이게 엄청 큰 문제인 듯하다. 성경조차도 교회가 결정한다는 믿음이 있는데, 그 결정이 틀릴 수 있다면..? 이거 심각해지는 거다.
오죽하면 변화란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자 교회를 인도하는 성령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가톨릭 내에서 나왔겠는가?
참고문헌
- Vincent of Lérins, Commonitorium.
- Nicholas V, Dum Diversas (1452).
- Nicholas V, Romanus Pontifex (1455).
- Second Vatican Council, Gaudium et Spes 27.
- Pope Francis, “The dynamic word of God cannot be moth-balled,” Vatican Radio, 11 October 2017.출처
[1] [PDF] St. Vincent of Lerins - EarlyChurch.org.uk https://earlychurch.org.uk/pdf/e-books/bindley_t-h/commonitory-of-st-vincent-of-lerins_bindley.pdf
[2] The "Vincentian Canon" - Internet History Sourcebooks Project https://sourcebooks.web.fordham.edu/ancient/434lerins-canon.asp
[3] St. Vincent of Lerins: Quod Ubique, Semper, et Ab Omnibus https://catholicism.org/st-vincent-of-lerins-quod-ab-ubique-semper-et-ab-omnibus.html
[4] Dum Diversas - Doctrine of Discovery Project https://doctrineofdiscovery.org/dum-diversas/
[5] The Popes and Slavery: Setting the Record Straight | EWTN https://www.ewtn.com/catholicism/library/popes-and-slavery-setting-the-record-straight-1119&rut=aaaeb133ddec3f5fb4c826e8177329312f5fc8b225e1643c73f4ddcb34ab3b9d
[6] Slavery, The Gospel of Life and the Magisterium https://www.faith.org.uk/article/july-august-2006-slavery-the-gospel-of-life-and-the-magisterium
[7] Romanus Pontifex - Papal Encyclicals https://www.papalencyclicals.net/nichol05/romanus-pontifex.htm
[8] Pope Leo XIV makes historic apology for Vatican’s role in legitimizing slavery - The Boston Globe https://www.bostonglobe.com/2026/05/25/world/pope-apologizes-vatican-slavery-role/
[9] http://empireandamericanreligion.net https://sites.miamioh.edu/empire/files/2022/08/1455-Romanus-pontifex.pdf
[10] Gaudium et spes - The Holy See https://www.vatican.va/archive/hist_councils/ii_vatican_council/documents/vat-ii_const_19651207_gaudium-et-spes_en.html
[11] St. Josef - Gaudium et spes https://www.stjosef.at/index.php?id=konzil__suche&doc=GS27&ui=eng&la=lat&lb=eng
[12] Pope Leo XIV makes historic apology for Vatican's role ... - Boston.com https://www.boston.com/news/world-news/2026/05/25/pope-leo-xiv-makes-historic-apology-for-vaticans-role-in-legitimizing-slavery/
[13] [PDF] Gaudium Et Spes (On the Church in the Modern World) Summary https://diolc.org/wp-content/uploads/2020/01/Dcn-Training-Church-Doc-Summaries-2020.pdf
[14] Pope Francis: Christians need to be nourished with the Word of God - Vatican News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23-09/pope-greets-italian-biblical-association-for-national-bible-week.html
[15] The Commonitorium of Vincentius of Lerins - Internet Archive https://archive.org/details/commonitoriumofv00vinc
[16] Gaudium et spes - Constitutio pastoralis de ecclesia in mundo huius ... https://www.vatican.va/archive/hist_councils/ii_vatican_council/documents/vat-ii_cons_19651207_gaudium-et-spes_lt.html
[17] Pope Francis: Don't preach the Gospel like it's a 'recommendation' https://www.catholicnewsagency.com/news/35439/pope-francis-dont-preach-the-gospel-like-its-a-recommendation
[18] Pope Francis' General Audience: English summary - Vatican News <a href="https://www.vaticannew'신앙 > 신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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