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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 10:40–42(마르다와 마리아) 해석사와 현대 연구 동향
    신앙/신학 이야기 2026. 6. 17. 13:25

    눅 10:40–42(마르다와 마리아) 해석사와 현대 연구 동향

    [눅10:38-42]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 서론

    눅 10:38–42, 특히 40–42절의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는 교회사 전반에 걸쳐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 봉사와 말씀, 여성의 역할과 제자직의 문제를 논의하는 핵심 본문으로 독해되어 왔다. 본 논문은 초대교부에서 중세, 종교개혁기, 근대·현대에 이르는 해석사를 간략히 정리하고, 최근의 내러티브, 여성주의, 실천신학적 연구 동향을 개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문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눅 10:25–37) 직후에 등장하며, 사랑의 실천과 말씀 수납이라는 두 축을 긴장 속에 병치하는 누가의 신학적 의도를 드러낸다. 이 문맥적 배치는 행위 중심의 영생 이해에 대한 보완으로서 “한 가지 필요한 것”(10:42)의 의미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해석사 전반에서도 반복적으로 참조되어 왔다.

     




    2. 본문 구조와 주요 어휘

    2.1 내러티브 구조

    눅 10:38–42의 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38절: 마르다가 예수를 집으로 영접한다(환대의 주체).
    - 39절: 마리아는 주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듣는다(제자적 자세).
    - 40절: 마르다는 “많은 일로 분주”하여 예수께 불평한다(서비스의 과부하).
    - 41–42절: 예수는 마르다를 부드럽게 책망하면서, “한 가지 필요한 것”과 “좋은 편”을 강조하고 마리아를 지지한다.

    이 내러티브는 마르다의 환대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 환대가 과도한 준비와 염려로 인해 말씀 수납을 가리는 상태로 전락한 점을 문제 삼는 방향으로 읽혀 왔다. 바로 이전 본문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적극적 행위가 칭찬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본문은 행위 일반을 문제 삼기보다 행위가 말씀과 제자도를 가리는 방식으로 수행될 때의 위험을 드러낸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2.2 핵심 어휘와 해석 쟁점

    40절의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표현은 “많은 섬김”(περὶ πολλὴν διακονίαν)과 “염려하고 근심한다”(μεριμνᾷς καὶ θορυβάζῃ)라는 동사로 표현된다. 디아코니아(diakonia)는 누가–행전에서 대체로 긍정적 의미(봉사, 직무)를 가지지만, 이 본문에서는 “많은”이라는 수식어와 염려·소란의 동사와 결합될 때, 목적을 상실한 과도한 준비, 즉 불균형한 봉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41–42절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ἑνὸς δὲ ἐστιν χρεία)와 “좋은 편”(τὴν ἀγαθὴν μερίδα)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알레고리와 교리 논의의 기초가 되어 왔다. “한 가지 필요한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단순한 식사의 최소 준비, 관조적 삶, 말씀 자체, 혹은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해석은 교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논쟁의 핵심 축이 되었다.

     


    3. 교부 시대 해석: 상징적 읽기와 관조의 우위

    3.1 오리겐: 행동에서 관조로

    오리겐은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행동적 삶과 관조적 삶의 상징으로 읽으면서, 두 삶이 궁극적으로는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 마르다는 봉사를 통해 육체적 차원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초보적 단계의 그리스도인, 마리아는 말씀을 듣는 관조를 통해 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간 그리스도인으로 이해된다. 이때 “좋은 편”은 관조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더 깊은 일치를 지향하는 삶으로 해석되며, 관조를 향한 성장의 방향성이 강조된다.

    3.2 크리소스톰과 키릴루스: 균형과 알레고리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 본문이 “일은 하지 않고 내적 경건만 추구하는 삶”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용되는 것을 경계하며, 예수의 말씀은 노동 자체를 경멸하라는 것이 아니라, “들을 때와 일할 때를 분별하라”는 교훈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마르다의 환대가 본질적으로 옳지만, 과도한 준비와 자매에 대한 원망이 문제라고 보며, 본문의 핵심을 관심의 질서와 내적 태도의 문제로 돌린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는 보다 알레고리적 해석을 전개하여, 마르다를 율법과 제의에 묶인 유대인, 마리아를 복음을 수납하는 교회로 해석한다. 그리스도께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복음의 수납이라는 점에서, 이 본문은 율법과 복음의 대조를 드러내는 본문으로도 읽혔다.

     

    3.3 어거스틴: 교회의 두 차원

    어거스틴은 마르다를 “현재의 교회”(고난과 봉사 가운데 있는 순례 교회), 마리아를 “장차 올 영광 속의 교회”(안식과 관조 가운데 있는 영광의 교회)로 이해하였다. 마르다의 봉사는 현세에서 필수적이지만, 종말에 이르면 끝나는 반면, 마리아의 관조와 임재 안에 머무는 기쁨은 영원히 지속되므로 후자가 “더 나은 몫”이라는 논리가 제시된다. 이 해석은 이후 관조적 삶을 우월한 삶의 양식으로 정당화하는 전통에 중요한 신학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4. 중세 수도원 전통: 관조적 삶의 우위와 수도원 옹호

    4.1 관조와 활동의 위계

    중세 수도원 전통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본문은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을 활동적 삶(vita activa)보다 우월한 삶으로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증거 본문으로 활용되었다. 마리아는 세상과 분리된 기도와 묵상의 삶을 상징하는 반면, 마르다는 가정과 사회 속에서의 노동과 책임을 상징하는 인물로 규정되었다. “마리아의 좋은 몫”은 곧 수도생활, 특히 클라우스트라 안에서의 관상 생활로 동일시되었으며, 이로써 수도원이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더 높은 상태를 차지한다는 의식이 강화되었다.

    그레고리우스 대제는 관조적 삶이 본질적으로 더 큰 공로를 지니지만, 실제로는 두 삶의 통합이 이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활동과 관조라는 두 삶의 양식으로 보되, 관조에서 기원한 사랑이 다시 활동으로 흘러가는 역동을 강조하며, 이 두 삶이 순환적 관계에 있음을 설명한다.

     

    4.2 토마스 아퀴나스: 체계적 정리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의 비교”를 논하면서, 마르다와 마리아 본문을 핵심 텍스트로 인용한다. 그는 관조적 삶이 본질적으로 더 고상하며, 그 자체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우월하다고 보지만, 현재의 삶에서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 요구되기 때문에 활동적 삶이 때로 우선될 수 있다고 정리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하였다”는 말씀은 관조적 삶의 우월성에 대한 예수의 선언으로 해석되며, 수도원 생활을 “보다 완전한 상태”로 정당화하는 신학적 근거로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중세 후기에 이르면, 누가 10:40–42는 관조와 활동의 위계를 설정하는 규범 텍스트로 거의 고정된다.


    4.3 예외적 전통: 에크하르트의 역전 해석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전통적 “마리아 우위” 해석을 급진적으로 전복한 인물로, 누가복음 10장 본문에서 오히려 마르다를 더 성숙한 관조자의 모델로 제시한다. 그는 마리아가 아직 특정 경건 행위(발 앞에 앉아 듣기)에 집착하는 반면, 마르다는 모든 일 한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임재에 완전히 열려 있는 “무집착”(Gelassenheit)의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에크하르트에 따르면 진정한 관조는 수도원의 폐쇄된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 한가운데서 행해지는 사랑의 실천 자체로 나타날 수 있으며, 마르다는 바로 이러한 통합된 삶의 전형이다. 이 해석은 관조를 특정 종교적 행위와 동일시하는 전통에 도전하면서, 이후 현대 영성신학에서 활동과 관조의 통합을 논의할 때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5. 종교개혁기: 수도원적 알레고리 비판과 소명론적 재해석

    5.1 루터: 직업론과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

    중세 후반에 이르러 마르다와 마리아 본문이 수도원 생활을 우월한 “마리아의 몫”으로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자, 루터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수도원의 “진짜 종교생활”과 세속 직업(가정, 일터)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거부하며, 모든 직업과 가정의 일이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소명(vocatio)임을 강조하였다.

    루터에게 마르다의 봉사는 본질적으로 죄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이 명하신 창조 질서 안의 책임이다.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공로 의식과 결합될 때, 그리고 말씀을 듣는 일을 방해할 정도로 과도해질 때 발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루터는 본문을 통해 “공로적 수도생활”보다 말씀과 믿음의 우선성과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해석을 재정향한다.

     

    5.2 칼빈: 관조/활동의 우열 논쟁을 벗어난 해석

    칼빈은 누가복음 10:38–42 주석에서, 이 본문이 소위 “관조적 생활”을 찬양하는 근거로 남용된 것을 “오래된 오류”라고 비판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여기서 관조와 활동의 우열을 논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어떻게,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집에 영접하기를 원하시는지”를 가르치신다.

    칼빈은 마르다의 환대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1. 마르다는 예수께서 원하시는 소박함을 넘어 과도한 준비에 몰두하였다.
    2. 그 결과 스스로 말씀을 들을 기회를 잃어버렸다.
    3. 결국 자신의 봉사를 근거로 자매를 멸시하고 예수께 불평하는 교만에 이르렀다.

    칼빈에게 “한 가지만 필요하다”는 말씀은 단지 음식을 한 가지로 줄이라는 말이 아니라, 모든 일과 섬김이 한 목표,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일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좋은 편”은 수도원의 특정 상태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은혜의 때에 말씀을 듣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선택을 가리킨다.

    개혁파 전통에서 이 본문은 행위의 공로보다 말씀과 믿음의 우선성, 그리고 모든 직업·가정·교회 사역 속에서의 소명 수행이라는 신학을 뒷받침하는 본문으로 자리 잡게 된다.

     


    6. 근대·현대 역사비평과 내러티브 해석

    6.1 문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의 관계

    근대 이후 역사비평과 내러티브 연구는 이 본문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10:25–37) 직후에 위치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율법교사의 “무엇을 행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는 질문(10:25)에 대한 대답으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는 비유가 제시되고, 이어서 마르다/마리아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구조는, 누가가 “행하는 사랑”과 “듣는 믿음”을 긴장 속에 배열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많은 주석가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행함을 강조한다면, 마르다/마리아 이야기는 영생을 얻는 길에서 “한 가지 필요한 것”, 곧 주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는 일을 강조한다고 본다. 누가는 이 두 본문을 통해 행위와 믿음, 환대와 제자도를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긴장된 두 축으로 제시한다.

    6.2 환대와 디아코니아의 재조명

    현대 주석은 마르다의 디아코니아를 누가-행전 전체에서 반복되는 “환대와 봉사”라는 주제 안에 위치시켜 재평가한다. 마르다는 예수를 집에 영접함으로써 환대의 주체가 되고, 이는 누가 복음에서 긍정적으로 강조되는 행위이다. 문제는 그 환대가 과도한 준비와 염려로 변질되어, 말씀을 듣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자매를 비난하는 자리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예수의 답변은 환대 자체를 폐기하기보다, 환대의 본질이 “준비 자체”가 아니라 손님(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임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부 내러티브 해석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교회의 두 직무, 즉 디아코니아의 사역과 말씀의 사역의 상징으로 읽으며, 예수의 말씀을 통해 말씀 사역이 디아코니아에 의해 가려지지 않도록 우선순위가 재조정된다고 본다.

    6.3 여성 제자도의 내러티브적 의미

    내러티브 비평은 “주의 발아래 앉아 듣는” 마리아의 자세를 당시 남성 제자들이 차지하던 제자직의 전형적 위치로 읽어, 누가가 여성도 말씀의 제자로 공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마리아의 위치는 단순한 개인 경건의 표현이 아니라, 여성의 제자도와 신학 교육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이 관점에서 예수의 발언은 “여성은 집안일, 남성은 말씀”이라는 이분법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에게도 말씀 학습과 제자직을 허용하는 급진적 행위로 읽힌다. 이때 마르다의 문제는 “집안일을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염려와 원망이 말씀 수납을 가로막는 내적 상태라는 점이 부각된다.


    7. 여성주의·젠더 관점의 해석

    7.1 초기 여성주의 해석: 마리아의 해방적 상징

    1970년대 이후 여성주의 해석은 이 본문이 여성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거나 제한해 왔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하였다. 엘리자베스 쇠슬러 피오렌차 등은 누가–행전의 여성 제자상 전체를 검토하면서, 이 본문이 한편으로는 마리아를 통해 여성에게 신학 교육과 제자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해방적” 텍스트라고 평가한다.

    초기 여성주의 해석은 종종 이 본문을 “여성의 신학 교육 권리 선언”으로 읽으며,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 말씀 공부에 헌신하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읽기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만 부과되었던 가사 책임을 상대화하고, 교회가 여성의 학문적·신학적 소명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7.2 마르다의 재평가와 이중적 위험

    그러나 이후 여성주의 해석은 마리아만을 이상화하는 읽기 역시 문제적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마르다를 단순히 “분주하고 신경질적인 여성”의 전형으로 그리는 해석은, 가사 노동과 돌봄을 담당하는 다수 여성들의 현실을 폄하하고 죄책감을 부과할 위험이 있다.

    이에 따라 최근의 여성주의 연구는 마르다의 디아코니아를 교회의 공적 봉사와 리더십의 상징으로 재평가하고, 예수의 말씀을 마르다의 역할 자체가 아니라 “염려와 분주함”이라는 상태에 대한 부드러운 교정으로 읽는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상호 배타적 전형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 제자도와 리더십 양상을 보여주는 상호 보완적 인물로 이해되며, 두 인물 모두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균형 잡힌 해석이 추구된다.

    7.3 문화·교단별 적용 논의

    현대 여성주의 해석은 또한 교단과 문화에 따라 본문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후기 20세기와 21세기 초 미국 복음주의와 후기 성도(LDS) 전통 내부에서 마르다·마리아 본문이 여성의 희생과 가사 책임을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희생과 봉사의 미화가 여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메커니즘을 지적한다. 동시에 마르다의 리더십과 마리아의 학문적·영적 추구를 함께 인정하는 방향으로 설교와 교육을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제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8. 현대 실천신학·영성에서의 통합적 읽기

    8.1 “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균형

    현대 설교와 실천신학에서는 이 본문이 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doing/being), “가서 행하라”와 “앉아 들으라” 사이의 균형을 요청하는 텍스트로 자주 다루어진다. 많은 해석은 마르다의 봉사를 정죄하기보다, “분주함과 염려”가 봉사의 방향을 왜곡할 때 말씀과 임재 중심성으로 돌아오라는 목회적 권고로 본문을 읽는다.

    이때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과 임재를 중심에 두는 것”으로 해석되며, 교회의 디아코니아와 프로그램 중심주의가 말씀과 기도의 중심성을 잠식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경고로 사용된다. 동시에 마르다의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필수적 기능으로 존중되며, “마르다 없이는 마리아도 없다”는 고대 전통의 통찰이 다시 소환된다.


    8.2 환대와 선교의 신학

    누가–행전 전체에서 환대와 선교는 밀접하게 연결된다. 현대 해석은 마르다의 환대를 선교적 환대(missional hospitality)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하면서, 교회가 그리스도와 타자를 환대하는 방식이 프로그램과 활동의 과잉이 아니라, 상대에게 집중된 경청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본문은, “준비 자체”가 아닌 “손님에 대한 집중”으로서의 환대를 요청하는 텍스트로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명령과 긴장 속에서 “먼저 주님의 발아래 앉으라”는 초대를 병치하는 역할을 한다.

    8.3 활동과 관조의 통합 영성

    에크하르트적 전통과 현대 영성신학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기도와 실천의 두 발로 걷는 영성”의 상징으로 읽는다. 관조는 더 이상 특정 수도원적 행위만을 가리키지 않고, 세상 한가운데서 행해지는 사랑의 실천 속에서도 구현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며, 마르다는 이러한 통합적 관조의 모델로 재수용된다.

    개신교, 특히 개혁파 전통에서는 이는 소명론과 쉽게 접목된다. 모든 직업적·가정적 활동이 “그리스도 앞에서의 봉사”이자 “말씀에 근거한 순종”으로 재해석되며, 마르다의 활동은 말씀 중심성 안에서 정렬될 때 “좋은 편”을 잃지 않는 디아코니아로 이해된다.



    9. 최근 연구 동향 요약

    최근 마르다와 마리아 본문 연구의 주요 흐름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알레고리·관조 우위 해석의 역사적 재평가: 교부와 중세 전통의 관조 우위론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관조의 가치와 함께 세속 직업과 여성 노동의 폄하라는 부정적 유산을 동시에 조명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2. 내러티브·맥락적 읽기의 정착: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의 연결 속에서 행위와 믿음, 사랑의 실천과 말씀 수납의 긴장과 상호 보완성을 강조하는 읽기가 주류로 정착되었다.
    3. 젠더·여성주의 관점의 심화: 마르다와 마리아를 상호 배타적 전형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 제자도와 리더십의 양상으로 읽으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마르다의 디아코니아를 공적 사역과 리더십의 상징으로 재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4. 실천신학·영성에서의 통합적 해석: 교회와 목회 현장에서는 “분주한 봉사에 말씀의 우선성을 회복하라”는 고전적 메시지를 유지하면서도, 활동과 관조, 말씀과 디아코니아, 환대와 선교를 통합하는 영성 모델을 제시하려는 설교와 영성 연구들이 다수 출판되고 있다.
    5. 개신교, 특히 개혁파 전통의 재조명: 칼빈과 이후 개혁파 주석이 이 본문을 어떻게 수도원적 알레고리에서 해방시키고, 말씀·은혜·소명론의 틀 안에서 재해석했는지를 분석하는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10. 결론

    눅 10:40–42의 마르다와 마리아 본문은 관조와 활동, 말씀과 디아코니아, 여성의 가사 노동과 공적 제자도, 수도원적 이상과 세속 직업 소명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논의하는 장으로 기능해 왔다. 교부와 중세는 주로 관조적 삶의 우월성에 초점을 두었으나, 에크하르트와 종교개혁기 해석은 이를 비판하거나 전복하면서, 말씀의 우선성과 모든 소명의 동등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근대·현대의 내러티브, 여성주의, 실천신학적 해석은 본문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의 문맥 속에서 재위치시키고, 여성 제자도의 해방적 잠재력과 마르다의 디아코니아를 재평가하면서, 활동과 관조의 통합적 영성을 모색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라는 선언은 특정 삶의 상태를 절대화하는 문장이 아니라, 언제나 “한 가지 필요한 것”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중심에 두라는 지속적인 초대로 이해될 수 있다.

     

     


    References

    1. [The gospel of Luke 10:38-42](http://www.lectionarystudies.com/studyg/studyn/sunday16cgn.html) - Exegetical notes on the New Testament Greek text of Luke 10:38-42.

    2. [Question 182. The active life in comparison with the contemplative life](https://www.newadvent.org/summa/3182.htm) - Which of them is of greater import or excellence? Which of them has the greater merit? Is the contem...

    3. [Jesus at the home of Martha and Mary - Wikipedia](https://en.wikipedia.org/wiki/Jesus_at_the_home_of_Martha_and_Mary)

    4. [Luke 10.38-42 Proper 11 - Year C](http://www.crossmarks.com/brian/luke10x38.htm)

    5. [Luke 10:38-42 - A Plain Account](https://www.aplainaccount.org/post/2016/07/11/luke-103842) - Jesus responds to Martha by telling her that she has become distracted with many things, while only ...

    6. [Commentary on Luke 10:38-42](https://www.workingpreacher.org/commentaries/revised-common-lectionary/ordinary-16-3/commentary-on-luke-1038-42-2) - The design and structure of Luke’s story about Jesus’ visit in the home of Mary and Martha (Luke 10:...

    7. [Commentary on Luke 10:38-42 - Working Preacher](https://www.workingpreacher.org/commentaries/revised-common-lectionary/ordinary-16-3/commentary-on-luke-1038-42-5) - The ministry of diakonia should not absorb our energy and time and drive us to neglect God's word

    8. [Commentary on Luke 10:38-42](https://www.workingpreacher.org/commentaries/revised-common-lectionary/ordinary-16-3/commentary-on-luke-1038-42-3) - Hospitality is exceedingly important in the biblical world in general and in Luke’s Gospel in partic...

    9. [“Distracted by Many Things” A Sermon on Luke 10:38-42](https://richardlfloyd.com/2019/07/22/distracted-by-many-things-a-sermon-on-luke-1038-42/) - We have to choose a balance that makes us whole, free from distraction and worries, focused in faith...

    10. [Contemplative Exegesis](https://www.vincentpizzuto.org/post/contemplative-exegesis) - Meister Eckhart’s interpretation of Luke 10:38-42Martha as the Embodiment of the Contemplative Disci...

    11. [John Calvin: Commentary on Matthew, Mark, Luke - Volume 2](https://ccel.org/ccel/calvin/calcom32/calcom32.ii.xxiv.html) - Luke 10:38-42. 38. And it happened, while they were traveling, that he entered into a certain villag...

    12. [How does Luke 10:38 challenge traditional views of hospitality and service?](https://biblehub.com/q/Luke_10_38_Rethink_hospitality_norms.htm)

    13. [The M S T~ournai](https://faculty.fordham.edu/ruffing/Martha%20and%20Mary.pdf)

    14. [[PDF] There Was an Old Woman Who Lived in a Shoe: Was it Martha?](https://digitalcommons.lmu.edu/cgi/viewcontent.cgi?article=1020&context=saysomethingtheological) - “A Feminist Critical Interpretation for Liberation: Martha and. Mary: Lk. 10-38-42.” Religion and In...

    15. [Mary, Martha, and the “Good Part”: A Feminist Evaluation of the Glorification of Sacrifice in Latter-day Saint Culture](https://scholarsarchive.byu.edu/cgi/viewcontent.cgi?article=1246&context=awe)

    16. [Sit and listen; go and do: Mary and Martha as examples of faith and action](https://www.ncronline.org/spirituality/sit-and-listen-go-and-do-mary-and-martha-examples-faith-and-action) - The story of Mary and Martha reminds us that we must sit and listen at the feet of Jesus before we g...

    17. [Why the Church needs to be Martha and Mary](https://www.churchtimes.co.uk/articles/2023/2-june/features/features/why-the-church-needs-to-be-martha-and-mary) - Mary showed how the contemplative life and active life of faith work together, says Christopher C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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