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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이 사과한 것, 사과하지 않은 것신앙/신학 이야기 2026. 6. 4. 13:19
Intro
레오 14세가 노예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 핫하다. 그 중에서도 아래 링크의 기사가 인상적이다. 수 세대를 노예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가톨릭이 얼마나 쓰레기 같았으며, 2015년 후니페로 세라를 성인으로 삼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를 잘 표현해준 글이다. 무엇보다도 레오 14세가 지금까지의 교황과 다른 점과, 그럼에도 아직 모자르다는 글은 한 번도 노예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것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아래 링크의 글을 한글로 번역해 보았다.
https://threesonorans.substack.com/p/pope-apologizes-for-slavery-573-years
특별히 여기서 교황의 칙서 세 개, 후니페로 세라, 그리고 발견의 교리에 대해 다룬다. 발견의 교리의 경우에는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에 불을 지핀 것으로, 가톨릭의 노예제도를 옹호하거나, 노예제도를 승인했던 가톨릭의 교도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제 치하를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발견의 교리>를 인정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긴 하다.
아무튼, 위의 세 가지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 교황, 노예제에 사과하다: 573년 만에 교회가 “우리가 승인했다”고 인정하다
바티칸의 역사적 사과가 노예제와 식민지배를 직면하고 있지만, 그 교리에서 비롯된 법적·정치적 시스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있다.
- 2026년 5월 27일, Three Sonorans
교황이 바티칸이 승인한 573년간의 노예제와 정복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같은 주에, 애리조나에서 국경장벽 건설 업자들이 1,000년 된 오담(O’odham) 부족의 성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레오 14세의 회칙 《Magnifica Humanitas》는 어떤 교황도 식민주의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는 가장 정직한 선언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완전하다. 모든 것을 시작한 세 개의 교황 칙서(Bulls)는 아직 철회되지 않았고, 후니페로 세라(Junípero Serra)는 여전히 성인이며, 발견의 교리(Docrine of Discovery)는 여전히 미국 법으로 남아 있다.
이 글은 바티칸의 말과 그 말이 쓰여진 소노란 사막의 현실을 연결한다 — 산타크루즈 강부터 키토바키토 샘(Quitobaquito Springs)까지, 그리고 여전히 Johnson v. McIntosh 판례를 인용하는 법정까지. 교황의 사과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기 전에 꼭 읽어보기 바란다.
🕊️ 늦었지만 결국 하셨군요, 성하 — 하지만 칙서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573년 만에 처음으로 한 교황이 자신의 기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승인했다.” 소노란 사막은 그 한 문장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by Three Sonorans
우리는 정복을 승인한 교황 칙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그 칙서를 미국 법으로 만든 대법원 판결.
자신이 파괴한 원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캘리포니아 선교사.
그리고 2026년 현재, 콜럼버스가 항해하기도 전에 교황이 처음 기록한 바로 그 식민 논리로 오담 부족의 성지를 파괴하는 국경장벽.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이전 어떤 교황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하지 못했던 일을 한 새로운 교황이 있다. 그는 바티칸의 장부를 열어 수세기 동안 이어진 노예제에 대한 교회의 조직적 공모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라자,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을 겪었다. La memoria es larga aquí. 여기 소노란 사막에서는 기억이 길다.
산타크루즈 강은 한때 오담 마을을 따라 투손까지 맑게 흘렀다. 강은 말라버렸지만, 기억은 말라버리지 않았다.
교황이 사과하다. 사막은 기억한다.2026년 5월 25일, 레오 14세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로서 첫 회칙 《Magnifica Humanitas》를 발표했다.
이 문서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시대의 인간 존엄성을 주제로 다루었다. 그렇다, ChatGPT가 일자리를 빼앗을까 우려하는 그 회칙이, 이전 교황들이 대륙 전체를 빼앗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도 고백해야 했다.
그러나 로봇 윤리에 대한 이 묵상 속에, 지금까지 어떤 교황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성좌(Holy See) 자신이 노예제를 승인한 역할에 대한 직접적이고 조직적인 사과였다.
“주님께서 무한히 사랑하시는 존재로서의 그들의 측량할 수 없는 존엄성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수많은 이들이 겪은 막대한 고통과 굴욕을 생각할 때 깊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레오 14세는 썼다(The Grio 보도).
“이에 교회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스도교가 노예제와 완전히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인정되기까지 18세기가 걸렸다”고 인정하면서, 만약 교회가 오늘날의 착취를 명확히 규탄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다시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말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지 않기를.
이 사과가 이전 바티칸의 모든 성명과 다른 점은, 과거 교황들은 개별 기독교인들의 행위에 대해 사과했지만, 레오 14세는(Reuters 보도) 성좌 자체가 정복을 정당화하는 데 개입했으며, 중세 교회 기관들이 직접 노예를 소유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기관 자체를.
단지 그 구성원이 아니라.
그것은 훨씬 더 깊고 다른 고백이다.
세 개의 칙서, 현대 세계를 만든 문서
이 사과가 왜 중요한지 — 그리고 왜 여전히 불완전한지 — 이해하려면 세 개의 문서를 알아야 한다.
레오 14세(본명 Robert Prevost)는 루이지애나 크리올 혈통으로, 노예였던 조상과 노예 소유주였던 조상을 모두 가지고 있다(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의 가계 연구로 확인됨).
그는 노예제를 비판했던 19세기 후반 교황 레오 13세를 기리기 위해 교황명을 선택했다. 그는 이 역사를 깊이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세 장의 종이에서 시작된다:
- 1452년: Dum Diversas — 교황 니콜라스 5세. 포르투갈 왕실에게 비기독교인을 “침략하고, 싸우고, 복속시키며” 영구 노예로 만들 권한을 부여. 이후 모든 것의 원형이 됨.
- 1455년: Romanus Pontifex — 같은 교황. 포르투갈에게 아프리카 무역 독점권을 주고 아프리카인 노예화를 명시적으로 승인.
- 1493년: Inter Caetera —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신세계”를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십자가 아래 나누어주며, 정복을 기독교의 자비로 축복.
이것들은 제안이 아니었다. 교회의 최고 권위가 담긴 공식 문서였으며, 왕들에게 봉인되어 보내졌다.
이 칙서들은 유럽 식민주의에 신학적 면죄부를 주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행동 네트워크(Franciscan Action Network)는 레오의 회칙에 대해 “오래 지연되었지만, 늦은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렇다. 늦었지만 결국 했다. 다만 “늦었다”는 것이 5세기와 수억 명의 목숨을 의미한다는 점이 문제다.
발견의 교리: 고대 역사가 아니다
그 세 개의 칙서는 바티칸 서고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현대 세계의 법적 골격이 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1823년, 존 마셜 대법원장은 Inter Caetera의 신학적 논리를 Johnson v. McIntosh 판결을 통해 미국 법으로 전환시켰다.
그의 판결: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에 대해 소유권이 아닌 단지 “점유권”만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유럽의 “발견”이 이미 그들의 소유권을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발견”이 법적 소유권을 창출한다고 결정했다. 수백만 명이 이미 살고 있는 곳을 “발견”하다니 참 재미있는 논리다. 마치 이웃집 뒤뜰을 발견한 뒤, 이제 법적으로 내 것이라는 서류를 건네는 것과 같다.
이후 두 번의 판결(Cherokee Nation v. Georgia, 1831 / Worcester v. Georgia, 1832)로 “마셜 3부작”이 완성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연방 인디언법의 틀을 만들었다. 이 3부작은 원주민 국가들을 “국내 종속 국가”로 규정했다 — 완전한 주권도, 완전한 종속도 아닌, 영구적인 법적 불확정 상태. 그들의 땅을 쉽게 이용 가능하게 하고, 그들의 통치를 언제든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편리한 상태였다.
국내 종속. 권리가 있는 화분 같은 존재. 다만 권리는 없다.
2005년 City of Sherrill v. Oneida Indian Nation 사건에서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발견의 교리를 인용해 원이다 부족이 합법적으로 다시 사들인 땅에 대한 주권을 회복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교리는 역사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법정에 살아있다.
오담은 여기 있었다. 야키는 저항했다. 교회는 그래도 왔다.
17세기 후반 예수회 선교사들이 남부 애리조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텅 빈 사막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산타크루즈 강을 따라 투마카코리부터 투박, 산 사비에르, 투손까지 이어진 오담 공동체를 발견했다. 이 땅에 대한 연속적인 인간 존재는 이 대륙의 어떤 식민 국가보다 오래되었다.
산 사비에르 델 박(San Xavier del Bac), 사막의 하얀 비둘기(la Paloma Blanca del Desierto)는 단순한 기도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reducción의 도구였다. 원주민들을 통제 가능한 선교 마을로 집중시켜 땅, 계절 이동, 통치, 의식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식민 정책이었다.
선교소는 아직도 서 있다.
오담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예배한다.
그것은 모순이 아니다.
그것이 생존의 모습이다.
우리는 원주민 노예를 먼저 죽였기 때문에 아프리카 노예가 필요했다
직설적으로 들린다. 실제로 그렇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기록된 사실이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관》은 식민 경제가 처음에는 원주민들을 광산과 농장에서 노예로 부리다가 수백만 명을 죽인 후, 원주민 인구가 급감하자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노동력을 보충했다고 상세히 기록한다.
연속된 범죄.
같은 장부.
같은 승인.
아프리카인 노예화와 원주민 학살은 평행한 비극이 아니라, 같은 식민 프로젝트의 연속된 단계였다. 둘 다 같은 교황 문서에 의해 승인되었고, 같은 착취 경제를 먹여 살렸다.
후니페로 세라: 뺨을 때리는 성인 시성
바티칸과 원주민에 관한 기사에서 이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땅인 워싱턴 D.C.를 방문해 18세기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후니페로 세라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선교 시스템을 구축한 인물이다.
진심으로?
멀고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도 아니고, 2015년이었다. Kendrick Lamar가 《To Pimp a Butterfly》를 발표한 바로 그 해에, 강제 노동 수용소 운영자를 성인으로 만든 것이다.
세라의 선교소는 학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강제 노동 수용소였다. 오로네, 미욱, 추마시 등 수많은 원주민 부족이 언어를 쓴다는 이유로 구타당하고, 가족과 헤어지고, 노동에 혹사당하고, 선교소 부지 내 집단묘지에 묻혔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에, 스페인 식민 이전 약 30만 명이었던 캘리포니아 원주민 인구가 1900년까지 2만 명 미만으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그 학살의 중심에 선교소가 있었다.
원주민 지도자, 학자, 활동가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그들은 워싱턴으로 가서 미사장 밖에서 시위했다. 그러나 무시당했다.
세라는 성인이 되었다.뼈 위에 세워진 성인.
2020년,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그의 동상이 쓰러질 때, 그들은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응답한 것뿐이었다.
레오 14세의 사과는, 부분적으로 세라 시성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한 신학적 인정이다. 원주민 공동체가 당연히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레오 14세는 시성 자체를 다룰 것인가?
칙서는 철회되지 않았다. 세라는 성인에서 해제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이 사과는 구조적 결과가 없는 말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듣고 있습니다, 성하.
이민: 발견의 교리의 살아 있는 손자
여기서 레오 14세의 도덕적 권위는 진짜로 중요해진다.
그는 이미 대규모 추방에 강력히 반대하며, 이민 단속을 인간 존엄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다. 그는 옳다. 그리고 Inter Caetera에서 현재 국경까지 이어지는 직접적이고 끊어지지 않은 선이 존재한다.
비기독교인에게 땅에 대한 주권이 없다고 선언한 바로 그 문서가, 식민자의 후손들이 그은 선을 갈색 피부와 원주민 후손들이 넘는 것을 범죄화하는 모든 정책의 조상이다.
토호노 오담 국가는 국경을 넘지 않았다. 국경이 그들을 넘었다.
2026년 4월, 국경장벽 건설팀은 카베자 프리에타 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1,000년 된 오담 성지를 파괴했다. 부족과 협의도, 사전 경고도, 어떤 책임도 없이.
토호노 오담 지도자들은 DHS 장관과 만나, 두 번째 국경장벽 계획이 Quitobaquito Springs(A’al Vaipia) 등 여러 성지를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첫 번째 장벽을 만들기 위해 빙하기부터 이어진 지하수를 퍼 올려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토호노 오담이 지정한 성지의 50% 이상이 첫 번째 건설 때 파괴되었다. 투손 센티넬은 보호받는 사와로 선인장들이 죽고, 무덤이 있는 언덕이 폭파되었다고 보도했다.
원주민 토지 수호자 Amber Ortega는 2020년 이 파괴에 항의하다 체포되었으나, 재판에서 자신의 종교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성공적으로 주장해 무죄를 받았다.
원주민 여성이 조상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수정헌법 제1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1452년 교황 칙서의 세속적 후손을 법적 근거로 삼는 연방 정부로부터.
이것이 끊어지지 않은 식민의 연속이다. 1452년에 원주민을 비주권자로 선언한 논리가 2026년에 그들의 무덤을 폭파하고 있다.
결론: 이 사과는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솔직한 평가:
레오 14세의 사과가 한 것:
- 교황이 재임 중 처음으로 성좌 기관 자체가 노예제와 식민지를 승인했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
- 573년간의 조직적 침묵에 대한 신학적 단절
-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필리핀 등 가톨릭 국가들에게 의미 있는 신호
- 파스쿠아 야키 등 토착 가톨릭 공동체와의 다리레오 14세의 사과가 하지 않은 것:
- Dum Diversas, Romanus Pontifex, Inter Caetera 철회
- 후니페로 세라 성인 해제
- Johnson v. McIntosh나 마셜 3부작 변경
- 배상
희망의 한마디이 사과는 수십 년간의 원주민 조직, 학문, 도덕적 증언 없이는 불가능했다.
사막은 항상 물을 찾는다. 사람들도 그렇다.
La lucha sigue. 투쟁은 계속된다.'신앙 > 신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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