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빈은 칼빈주의자였는가? - 리처드 A. 멀러책&논문 소개 2025. 12. 23. 13:54

이번 포스팅은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의 저명한 칼빈 전문가 Richard A. Muller의 책 <Was Calvin a Calvinist? Or, Did Calvin (or Anyone Else in the Early Modern Era) Plant the "TULIP"?>을 정리한 것이다.
"칼빈은 칼빈주의자였는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현대의 오해에 기반한 근본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리처드 A. 멀러(Richard A. Muller)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예... 아니요... 아마도..."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질문에 사용된 '칼빈주의(Calvinism)'와 '칼빈주의자(Calvinist)'라는 용어 자체가 여러 의미로 사용되며,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멀러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칼빈주의자'라는 용어는 칼빈 자신이나 그의 신학적 계승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 아니라, 주로 반대파들이 사용한 경멸적인 표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개혁파 가톨릭(Reformed Catholics)'으로 여겼다. 둘째, 'TULIP'이라는 유명한 교리 요약은 19세기 영국-미국에서 만들어진 시대착오적 약어로서, 도르트 신조(1618-19)의 본래 내용이나 16-17세기 개혁주의 신학 전체를 정확하게 대표하지 못한다. 셋째, '기독론 중심의 인문주의자 칼빈'과 '예정론 중심의 스콜라주의적 칼빈주의자들'을 대립시키는 현대의 이분법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캐리커처에 불과하다. 칼빈 자신도 스콜라적 방법을 사용했으며, 후대 개혁주의자들은 인문주의의 학문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결론적으로, 칼빈은 개혁주의 전통을 세운 여러 인물 중 한 명인 중요한 '2세대 체계화 작업자'였을 뿐, 이 전통의 유일한 창시자나 절대적인 규범은 아니었다. 개혁주의 전통은 칼빈을 비롯한 츠빙글리, 부처, 불링거, 베르미글리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역동적이고 다원적인 운동이었다. 따라서 칼빈은 '칼빈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소위 '칼빈주의자들' 역시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개혁주의 전통'에 기여한 인물들이었다.
1. '칼빈주의' 용어에 대한 정의 문제
멀러는 "칼빈은 칼빈주의자였는가?"라는 질문이 '칼빈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을 낳는다고 지적하며, 세 가지 주요 용법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1.1. '칼빈주의'를 칼빈 자신의 신학으로 이해하는 경우
이 정의에 따르면 "칼빈은 당연히 칼빈주의자였다"는 동어반복적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이 접근법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 칼빈을 유일한 칼빈주의자로 만듦: 이 관점은 칼빈의 사상을 너무 협소하게 정의하여, 그를 따랐다고 알려진 다른 모든 신학자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 독창성 신화: 칼빈의 신학이 완전히 독창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는 그의 예정론, 성찬론 등 대부분의 교리는 부처, 비레, 무스쿨루스, 베르미글리 등 동시대 개혁가들의 사상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며, 전통적인 신학 요소들을 종합한 것이다.
- 『기독교 강요』 중심주의: 칼빈의 사상을 1559년판 『기독교 강요』에만 국한시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의 방대한 주석, 설교, 논문들을 무시하고 그를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놓는 오류를 범한다.
1.2. '칼빈주의'를 칼빈 '추종자들'의 신학으로 이해하는 경우
이 정의에 따르면 칼빈은 자기 자신의 추종자가 될 수 없으므로 칼빈주의자가 될 수 없다. 이 접근법 역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 용어의 기원: '칼빈주의'와 '칼빈주의자'라는 용어는 16세기 중반 루터파 비평가들이 칼빈의 성찬론을 비판하면서 처음 사용한 경멸적인 명칭이었다. 칼빈 자신을 포함한 당시 개혁주의자들은 이 용어를 모욕으로 간주했다.
- 자기 정체성: 베자, 우르시누스, 퍼킨스 등 16-17세기의 주요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스스로를 '칼빈주의자'가 아닌 '개혁파 가톨릭(Reformed Catholics)'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로마 교회와 달리 참된 보편 교회를 개혁한 이들이라고 믿었다.
- 다양한 신학적 뿌리: 후대 개혁주의자들은 칼빈뿐만 아니라 츠빙글리, 불링거, 베르미글리 등 여러 개혁가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이들을 단순히 '칼빈의 추종자'로 규정하는 것은 이들의 신학적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1.3. '칼빈주의'를 '개혁주의 전통'의 동의어로 이해하는 경우
이것이 가장 널리 쓰이고 역사적으로 유용한 용법이다. 이 경우 질문은 "칼빈은 개혁주의자였는가?" 그리고 "칼빈의 사상과 후대 개혁주의 사상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은 무엇인가?"로 바뀌며, 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
2. 주요 신학적 쟁점 분석
멀러는 칼빈과 후대 '칼빈주의자들'을 대립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신학적 쟁점들이 대부분 현대적인 오해와 시대착오적인 틀에 기반하고 있음을 논증한다.
2.1. TULIP의 문제
TULIP(튤립) 약어는 개혁주의 신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 역사적 근원 없음: TULIP 약어와 '칼빈주의 5대 교리'라는 표현은 19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국-미국적 발명품이다. 이는 1618-19년의 도르트 신조를 요약한 것이 아니며, 도르트 신조의 저자들은 이러한 틀로 자신들의 신학을 정리하지 않았다.
- 용어의 부정확성:
-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이 용어는 인간 본성의 모든 선함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은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구원 불능성'에 있다.
- 제한 속죄 (Limited Atonement): 16-17세기 신학자들은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논쟁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가치(충족성)가 제한적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에 '충분(sufficient)'하다고 동의했다. 논쟁은 그 죽음의 '효능(efficacy)'이 왜 택자에게만 적용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도르트 신조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선택에서 찾았고, 칼빈 역시 속죄의 효능이 택자에게 제한된다고 명확히 가르쳤다.
2025.12.22 - [책&논문 소개] - TULIP에 대한 바른 이해와 R.C. 스프로울의 제안
2.2. 예정론, 기독론 중심주의, 그리고 중심 교리
칼빈을 '기독론 중심주의자'로, 후대 개혁주의자들을 '예정론적 결정론자'로 구분하는 것은 허구적인 대립 구도이다.
- 예정론의 위치: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예정론을 구원론 부분에 배치한 것을 '더 온화한' 접근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으나, 이는 교리 자체의 강도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후대 신학자들이 예정론을 신론(神論) 부분에서 다룬 것은 신학서의 장르와 학문적 목적에 따른 배치였을 뿐, 교리의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 중심 교리라는 허상: 특정 교리(예정론, 기독론 중심주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등)를 '중심 교리'로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신학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19-20세기에 유행한 방법론이다. 16-17세기 신학자들에게는 이러한 접근법이 없었다. 칼뱅과 후대 개혁주의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희생을 구원의 유일한 근거로 보았다는 점에서 모두 '기독론 중심적'이었다.
2.3. 인문주의 대 스콜라주의 이분법
칼빈을 '인문주의자'로, 후대 신학자들을 '스콜라주의자'로 나누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구분이다.
- 방법론의 융합: 칼빈은 인문주의적 수사학과 문헌학 훈련을 받았지만, 그의 저술에는 주제별 논증이나 세부적인 구분과 같은 스콜라주의적 방법론이 깊숙이 배어있다. 반대로 후대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은 당대의 인문주의적 언어학과 문헌학 성과를 당연하게 활용했다.
- 내용과 방법의 혼동: 인문주의를 '언약'이나 '은혜'와 연결하고, 스콜라주의를 '예정론'이나 '결정론'과 연결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인문주의자이면서 결정론 철학을 가진 이들도 있었고, 스콜라주의 방법으로 언약 신학을 정교하게 기술한 신학자들도 많았다.
2.4. 칼빈과 언약 신학
칼빈이 언약 신학의 창시자인가, 혹은 언약 신학과 무관한가에 대한 논쟁 역시 복잡한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다.
- 칼빈의 공헌: 칼빈은 은혜 언약이 구약과 신약에서 "실체는 하나이고 시행 방식만 다르다"고 정의했으며, 이는 후대 언약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상은 주로 그의 방대한 성경 주석에서 발견되며, 후대 언약 신학자들은 『기독교 강요』보다 그의 주석을 더 자주 인용했다.
- 전통 속의 칼빈: 그러나 이러한 언약 개념은 츠빙글리와 불링거에게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즉, 칼빈은 이 전통의 유일한 창시자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사상을 발전시킨 여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3. 결론: 개혁주의 전통의 참여자로서의 칼빈
멀러는 최종적으로 "칼빈은 칼빈주의자가 아니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동시에 "소위 '칼빈주의자들' 역시 칼빈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 시대착오적 용어의 폐기: '칼빈주의'와 TULIP은 개혁주의 전통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왜곡하는 환원주의적 용어이므로 신중하게 사용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 전통의 본질: 개혁주의 전통은 칼뱅 한 사람에 의해 세워지고 규정된 것이 아니다. 그는 선배들의 사상을 이어받고 동시대인들과 교류하며 전통 형성에 크게 기여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 발전으로서의 신학: 후대 개혁주의 신학은 칼빈의 사상을 기계적으로 복제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 신학은 경직되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칼빈을 포함한 다양한 신학적 자원을 활용하여 변화하는 시대적, 신학적 도전에 대응하며 전통을 더욱 발전시키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칼빈과 그를 계승한 신학자들은 모두 특정 개인의 '추종자'가 아니라, 더 크고 포괄적인 '개혁주의 전통'에 함께 기여한 참여자들이었다.















'책&논문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겟세마네 동산과 정원사 예수 (0) 2025.12.25 낙원에 대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점 비교 (1) 2025.12.24 TULIP에 대한 바른 이해와 R.C. 스프로울의 제안 (0) 2025.12.23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1) 2025.12.22 초기 기독교 예배의 재구성 (2) 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