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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책&논문 소개 2025. 12. 22. 14:24
Intro
총신 신대원을 졸업하고 Singapore Bible College에 들어갔을 때, 하나의 논쟁을 접한 적이 있다. 바로,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이다. 해당 논쟁을 접하면서, 나는 도무지 이 논쟁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내재적 삼위일체랑 경륜적 삼위일체가 서로 논쟁이 되는 지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다 맞는 소리를 하고 있으면서, 각 주장이 상대방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역하는 목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당 논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커녕,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해서 학자들이 논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배경을 알아야 해당 대화에 참여하거나,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Fred Sanders의 Entangled in the Trinity: Economic and Immanent Trinity in Recent Theology와 한남대와 장신대 교수 김선권의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에서 본 칼뱅의 삼위일체론>, 그리고 남서울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백충현의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와의 관계에 대한 칼 바르트의 상호상응의 입장에 관한 비판적 고찰>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요약
현대 신학에서 내재적 삼위일체(하나님 자신 안의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우리를 위한 구원 역사 속의 삼위일체)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 중 하나로 부상했다. 18-19세기에 신학의 변두리로 밀려났던 삼위일체론은 20세기에 칼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들을 통해 부활했으며, 특히 칼 라너(Karl Rahner)가 제시한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이다"라는 원칙은 현대 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원칙은 삼위일체 교리를 추상적 사변에서 구원 역사라는 구체적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시도였다.
라너의 원칙을 둘러싸고 신학계는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뉜다. 첫째, '긴밀한 해석가들'(Tight Interpreters)은 이 원칙을 급진적으로 적용하여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를 거의 동일시하거나, 경륜적 삼위일체가 내재적 삼위일체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위르겐 몰트만,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캐서린 라쿠냐 등이 여기에 속하며, 이들의 주장은 때로 하나님의 존재가 세계 역사에 의존하게 되는 위험을 내포한다.둘째, '유연한 해석가들'(Loose Interpreters)은 양자 간의 깊은 연관성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와 초월성을 보존하기 위해 둘 사이에 '여지' 또는 '거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브 콩가르, 발터 카스퍼, 토마스 토렌스 등이 이 입장을 대표하며, 이들은 단순한 동일성이 아닌 상응, 조화, 또는 성상(icon)으로서의 관계를 강조한다.
이러한 현대적 논의의 맥락에서 존 칼빈과 칼 바르트의 신학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칼빈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Dieu envers nous)으로서의 경륜적 삼위일체에 일차적 관심을 두었지만, '하나님 자신으로서의 하나님'(Dieu en soi)인 내재적 삼위일체의 신비와 위대함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는 삼위일체 지식이 성경과 구원의 경험에 기반한 '실천적 인식'임을 강조했다. 칼 바르트는 '상호상응'(mutual correspondence)이라는 개념을 통해 양자의 관계를 정립했다. 그에게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존재론적 원형'이며,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로 나아가는 '인식론적 통로'이다. 즉, 내용상 동일하지만 형식상 차이가 있으며, 이 긴장 관계는 궁극적으로 '신적 신비'에 의존한다.
결론적으로, 이 논쟁은 구원 역사에 계시된 하나님이 참으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확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 영원하고 자유로운 분이라는 신앙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I. 문제의 대두: 20세기 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
18세기 후반과 19세기에 삼위일체 교리는 신학의 중심에서 벗어나 사실상 무시되는 "일식 현상"을 겪었다. 칼 라너는 이 시기 기독교인들이 삼위일체론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단순 유일신론자와 구별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20세기 신학에서 가장 놀라운 현상 중 하나는 삼위일체 신학의 부흥과 재발견이었다. 슐라이어마허가 삼위일체 교리를 교의학의 부록으로 취급했던 것과 달리, 칼 바르트는 그의 역작 『교회 교의학』을 삼위일체 신학으로 시작하며 그 중요성을 복원시켰다. 이 삼위일체 신학의 르네상스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의는 바로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관계 문제였다.II. 핵심 개념 정의: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기독교 신학은 전통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두 가지 측면에서 구별하여 이해해왔다. 이 용어들을 명시적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J. 울스페르거(J. Urlsperger)로 알려져 있으나, 그 개념 자체는 교부 시대부터 존재했다.
- 내재적 삼위일체 (The Immanent Trinity)
- 정의: 창조와 구원 역사와는 무관하게, 하나님 자신 안에서의 영원하고 내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영원한 구별과 관계를 의미한다.
- 다른 표현: 본질적 삼위일체(trinitas essentialis), 하나님 자신으로서의 하나님(Dieu tel qu'il est en lui-même), 안을 향한 삼위일체의 사역(opera trinitatis ad intra).
- 특징: 성부의 낳으심(generatio), 성령의 발출(processio)과 같은 "나누어진 사역"(opera divisa)으로 특징지어진다.
- 경륜적 삼위일체 (The Economic Trinity)
- 정의: 창조, 구속, 완성의 구원 경륜 속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활동하시는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 다른 표현: 계시의 삼위일체, 우리를 위한 하나님(Dieu envers nous), 밖을 향한 삼위일체의 사역(opera trinitatis ad extra).
- 특징: 창조(성부), 구원(성자), 성화(성령)는 각 위격의 고유한 사역(appropriatio)에 속하지만, 세 위격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협력하는 "나누어지지 않는 사역"(opera indivisa)으로 이루어진다.
이 둘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의 인식 근거이고,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존재 근거이다"라고 요약된다. 우리는 구원 역사 속 하나님의 활동을 통해서만 그분의 내적 본질을 알 수 있으며, 구원 역사 속 하나님의 활동은 그분의 영원한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
III. 현대 신학 논쟁의 분수령: 칼 라너의 원칙칼 라너는 삼위일체 교리가 기독교인의 "머리와 마음의 교리문답"에 거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고립된 교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 강력한 공리를 제시했다.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이다."
이 선언은 '라너의 원칙(Rahner's Rule)'으로 불리며, 현대 삼위일체론 논쟁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 원칙의 목적은 아들의 성육신이나 성령의 강림과 같은 구원 역사의 사건들을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본질과 직접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삼위일체 교리를 추상적 사변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신앙의 문제로 되돌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다(is)"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신학계는 양분되었다.
IV. 라너 원칙의 해석들
A. 긴밀한 해석: 하나님과 세계의 결속 강화
이 그룹의 신학자들은 라너의 원칙을 논리적 귀결점까지 밀어붙여,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사이의 구별을 최소화하거나 제거하려 시도했다.

피트 스후넨베르흐 - "임무(missions)가 발출(processions)이다"와 같이 모든 삼위일체 개념에 원칙을 적용하여, 하나님이 세계 역사 과정 속에서 비로소 삼위일체가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는 양태론(modalism)의 위험을 내포한다.한스 큉 - 라너의 원칙을 내재적 삼위일체에 대한 모든 사변을 금지하는 장벽으로 해석했다. 신학은 오직 "우리를 위한 하나님"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르겐 몰트만 - 전통 신학이 내재적 삼위일체를 우위에 둠으로써 경륜적 삼위일체를 종속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에 소급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주장하며, 구원 역사가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종말론적 관점에서 양자의 동일성을 주장했다. 즉, "경륜적 삼위일체는 종말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내재적 삼위일체와 동일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자신을 실현하신다.
캐서린 라쿠냐 - "신학은 구원론과 분리될 수 없다"는 명제로 라너의 원칙을 변형했다. 그녀는 오직 경륜(oikonomia)만이 존재하며,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 자신(in se)이 아닌,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삶"에 대한 요약이라고 주장하며 내재적 삼위일체의 개념 자체를 비판했다.
B. 유연한 해석: 하나님의 자유를 위한 여지 확보
이 그룹의 신학자들은 양자 간의 긴밀한 관계를 긍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둘 사이에 반드시 구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단순한 동일성' 대신 '상응', '조화', '일치'와 같은 개념을 선호하며, 하나님과 세계가 얽히는 것을 막기 위해 "밧줄에 약간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브 콩가르 -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이다"라는 원칙의 전반부(인식론적 주장)는 수용하지만,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이다"라는 후반부(존재론적 주장)는 거부했다. 하나님은 창조하지 않으셨더라도 여전히 아들을 가지셨을 것이라며, 하나님의 자유로운 경륜과 필연적인 신적 본질을 동일시할 수 없다고 보았다.발터 카스퍼 - 라너 원칙의 '이다(is)'는 단순한 동일성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즉 역사의 베일 아래 "성사적(sacramental)"으로 현존한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토렌스 - 내재적 삼위일체를 '존재론적 삼위일체'로, 경륜적 삼위일체를 '복음적 삼위일체'로 칭하며, 구원을 주는 복음적 삼위일체의 효력은 위협받지 않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온전함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며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우선성을 강조했다.
V. 주요 신학자들의 관점 분석
A. 존 칼빈: 실천적 지식으로서의 경륜적 삼위일체
칼빈은 내재적/경륜적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으나, 그에 상응하는 개념인 "하나님 자신으로서의 하나님"(Dieu tel qu'il est en lui-même)과 "우리를 위한 하나님"(Dieu envers nous)을 명확히 구별했다.
- 경륜적, 실천적 초점: 칼뱅의 주된 관심은 추상적인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 즉 경륜적 삼위일체에 있었다. 그에게 삼위일체 지식은 사변이 아니라, 구원의 체험에서 오는 "실천적 인식"(pratica notitia)이었다.
- 내재적 삼위일체의 전제: 그는 경륜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계시된 하나님보다 더 크고 장엄한 하나님 자신의 존재, 즉 내재적 삼위일체의 신비를 깊이 인식하고 경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는 "하나님 자신만이 그 자신에 대한 적합한 증인이 되신다"고 말하며, 인간의 이성으로 신적 본질을 파헤치려는 시도를 경계했다.
- 핵심 원리: 칼빈은 "한 본질, 세 인격"이라는 전통적 공식을 따랐으며, 위격들 간의 관계와 위격과 본질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기독론의 원리인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distinctio sed non separatio)를 적용했다.
B. 칼 바르트: '상호상응'의 관계
칼 바르트는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관계를 '상호상응'(mutual correspondence)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는 양방향적 관계이지만, 비대칭적인 관계이다.
- 존재론적 원형: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존재론적 '원형'(prototype), '기초'(basis), '이유'(reason)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아버지가 되시기 이전에, 그리고 그와 무관하게, 영원히 성자의 아버지이시다. 즉, 하나님의 내적 존재가 외적 활동을 존재론적으로 선행하고 결정한다.
- 인식론적 통로: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인식론적 통로'(epistemological gateway)이다. 우리는 계시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만 그분의 영원한 내적 존재를 알 수 있다.
- 내용의 동일성과 형식의 차이: 바르트의 "기본 규칙"에 따르면, 내재적 삼위일체에 관한 진술들은 경륜적 삼위일체에 관한 진술들과 "내용면에서 다를 수 없다". 즉, 계시된 하나님은 참으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나 양자는 형식면에서 다르다.
- 긴장과 신비: 바르트의 신학 방법은 계시(경륜)에서 출발하지만, 그의 존재론은 독립적인 내재적 삼위일체를 상정하기에 긴장이 발생한다. 그는 이 긴장을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와 주권, 그리고 궁극적으로 '신적 신비'(divine mystery)의 개념에 의존하여 해소한다. 그는 하나님의 내적 관계의 '어떻게(How)'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알 수 없음'(ignoramus)을 고백해야 한다고 말한다.
VI. 결론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현대 신학의 논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관통한다. 이 논쟁은 우리가 구원 역사 속에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참으로 하나님 자신을 만난다는 확신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역사 과정에 종속시키지 않고 그분의 영원한 자유와 초월성을 보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신학적 씨름이다.
라너의 원칙에서 파생된 '긴밀한 해석'은 하나님의 역사적 자기 계시의 진정성을 강조하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역사에 의존시키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반면, '유연한 해석'은 하나님의 자유를 지키려 하지만, 계시된 하나님과 하나님 자신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 계시의 최종성을 약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칼빈은 경륜에 대한 실천적 강조와 내재에 대한 경외심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며, 바르트는 '상호상응'이라는 정교한 개념을 통해 존재론적 근거와 인식론적 경로를 통합하려 시도한다.
궁극적으로, 이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은유는 '이미지'(icon)일 수 있다.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의 참되고 유일한 이미지이다. 우리는 이 이미지를 통해서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는 원형 그 자체와 동일하지 않다. 그 사이에는 하나님의 자유와 은혜, 그리고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여유"가 존재하며, 이는 경외와 신앙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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