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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플라벨, 그리고 차녹이 말하는 하나님의 진심신앙/신학 이야기 2026. 1. 9. 08:37
하우, 플라벨, 그리고 차녹이 말하는 하나님의 진심
https://youtu.be/lkuGUbGxY28
이번 포스팅은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 존 하우, 존 플라벨, 스티븐 차녹의 저술을 바탕으로, 복음의 권고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학적 통찰을 종합한다.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죄인의 구원을 향한 그분의 진실한 열망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다.
세 신학자는 공통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순종하고 구원받기를 진정으로 바라시는 계시된 뜻 또는 호의적인 뜻(will of simple complacency)을 가지고 계심을 강조한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자비로운 본성의 진실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뜻은 모든 것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효력 있는 뜻(efficacious will) 또는 결정적인 뜻(determinative will)과는 구별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효력 있게 의지하지는 않으셨으며, 이는 죄와 비참이 세상에 존재하는 현실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
이러한 구별은 하나님의 의지에 모순이나 불완전함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완전한 지혜와 통치의 존엄성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의 인내, 슬픔, 눈물, 그리고 성경의 간절한 권고와 경고는 모두 죄인들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진실하고 열렬한 열망을 증거하는 강력한 표현이다. 종합적으로, 이들의 논증은 복음의 권고가 하나님의 주권과 완전한 지혜와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전하는 진심 어린 부르심임을 확증한다.I. 존 하우(John Howe): 하나님의 의지의 구별과 복음 권고의 진실성
존 하우는 하나님의 의지를 구별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세상에 죄가 존재하는 현실 사이의 긴장을 신학적으로 해소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단일한 방식이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종류의 신적 의지
하우는 하나님의 의지를 두 가지로 명확히 구분한다.
- 단순한 호의의 의지 (Will of Simple Complacency):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순종과 그에 따른 행복을 "단순한 호의로" 원하신다. 순결, 거룩함, 축복은 하나님의 완전하고 자비로운 본성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그분께 매우 기쁘고 즐거운 광경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과 복음의 권고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다.
- 효력 있는 의지 (Efficacious Will):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순종하고 행복하도록 "효력 있게" 의지하지는 않으셨다. 만약 그러셨다면, 그분의 저항할 수 없는 뜻에 반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죄와 비참이 존재하는 사건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모든 이의 구원을 효력 있게 의지하지 않으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모순이 아닌 완전성
하우는 이 두 의지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신적 의지의 완전성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 지혜에 따른 결정: 하나님께서 모든 이의 구원을 효력 있게 원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자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완전한 지혜에 따른 결정이다. 신적 본성은 자비뿐만 아니라 모든 완전성을 포함하며, 하나님의 모든 의지 행위는 그분의 지혜의 계획에 부합한다. 바울이 로마서 11장 33절에서 찬양했듯이, 어떤 이들을 구원하고 어떤 이들을 내버려두는 차이를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의 깊은 지혜에 기인한다.
- 더 가치 있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특정인의 구원보다 "더 큰 이유들" 때문에 그들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신다. 그는 순종과 행복을 진정으로 원하시지만, 이를 이루지 않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이유들(예: 자신의 통치의 존엄성 보존)에 근거할 때, 더 높은 차원의 호의, 즉 결정적인 의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쪽을 택하신다.
복음 권고의 진실성
이러한 구분을 통해 하우는 복음 권고의 진실성을 변호한다.
- 자비로운 낮추심: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권고하고, 간청하고, 슬퍼하는 듯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 안에 인간적인 격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선택하신 "자비로운 낮추심"이다.
- 실제적 의미: 이러한 표현들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공허한 말이 아니다. 이는 "순종과 축복이 불순종과 멸망보다 그분의 본성과 의지에 더 부합하고 기쁨이 됨"을 실제로 의미한다.
- 좌절 불가능성: 하나님은 이로 인해 좌절을 겪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분의 의지는 사건의 결과(사람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의무(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그 의무와 행복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결과를 미리 아시는 그분의 예지(prescience)는 좌절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다.
참조 링크
John Howe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These passages from classical Reformed theologians and preachers speak of God’s desire for or delight in the salvation of those who hear the gospel offer, inasmuch as his revealed will is an expression of his goodness and kindness toward the hearers of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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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존 플라벨(John Flavel): 죄인과의 연합을 향한 그리스도의 열망
존 플라벨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행동, 특히 그분의 인내와 슬픔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렬한 갈망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인내: 화해 가능한 본성의 증거
플라벨에게 있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죄인을 향한 그분의 자비와 화해 의지를 보여주는 핵심 증거이다.
- 영속적인 증거: 그리스도의 인내는 죄 많은 인간을 향한 그분의 "화해 가능하고 자비로운 본성에 대한 영속적인 증거"이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으로 선포하신다.
- 신적 속성의 영광: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독특한 영광이다. 호세아 11장 9절("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을 인용하며, 플라벨은 하나님의 인내가 어떤 피조물의 인내도 초월함을 강조한다. 그분은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평화를 얻을 기회가 있음을 알리기 원하신다.
슬픔과 애통: 구원에 대한 열렬한 애정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슬픔과 애통은 죄인의 구원을 향한 그분의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드러낸다.
- 그리스도의 슬픔: 예수께서 마음이 완악한 자들을 보시고 분노하시며 슬퍼하셨다는 기록(막 3:5)은 "완악한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께 슬픔이 됨"을 보여준다.
- 구세주의 눈물: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신 사건(눅 19:41)은 완고한 자들의 구원을 향한 "그의 애정의 열심과 열렬함"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분의 눈물은 죄인들을 포기하기를 얼마나 꺼리시는지를 보여준다.
- 거절에 대한 탄식: 요한복음 5장 40절("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의 말씀은 "내가 얼마나 너희에게 생명을 주고 싶어 하는가? 그러나 너희는 내게 와서 생명을 얻기보다는 차라리 죽으려 하는구나"라는 그리스도의 애통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모든 슬픔은 사람들이 그분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참조 링크
John Flavel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These passages from classical Reformed theologians and preachers speak of God’s desire for or delight in the salvation of those who hear the gospel offer, inasmuch as his revealed will is an expression of his goodness and kindness toward the hearers of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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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스티븐 차녹(Stephen Charnock):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강력한 증거들
스티븐 차녹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죄인을 향한 그분의 선하심이 얼마나 압도적이고 진실한지를 역설한다.
애정 어린 초청과 간청
차녹은 하나님의 초청이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부드러운 간청임을 강조한다.
- 열정적인 표현: 하나님은 "내 백성이여!", "내 나라여!"(사 51:4)와 같은 녹아내리는 듯한 표현으로 반역한 백성을 부르신다.
- 간청하시는 하나님: 세상의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은 심판자가 아닌 "간청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은 사역자들의 목소리에 하나님의 간청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 경이로운 겸손: 차녹은 이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마치 신적인 선하심이 죄인 앞에 무릎을 꿇고, 비틀린 손과 눈물 어린 뺨으로, 그를 심판의 법정으로 다시 부르지 않도록 간청하는 것과 같다." 이는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반역자의 생명과 행복을 위해 간청하는 주권자의 "기적적인 선하심"이다.
경고: 선한 의지의 수사학
차녹에 따르면, 하나님의 위협조차도 그분의 선하심의 표현이다.
- 경고의 목적: 하나님의 경고는 그분의 정의의 천둥소리라기보다는, 인간의 비참을 막으려는 "그분의 선한 의지의 우렁찬 수사학"이다. 그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보존과 개혁이다.
- 죽음을 원치 않으심: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겔 33:11)고 맹세하셨다. 그분의 위협은 죄인에게 탈출을 경고하는 것과 같으며, 이는 자비가 소진된 후에야 정의가 사용됨을 의미한다.
거절에 대한 애통: 선하심의 진실성
하나님께서 인간의 거절을 슬퍼하시는 모습은 그분의 선하심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가장 강력하게 증거한다.
- 애절한 슬픔: 시편 81편 13절("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의 말씀은 한숨 속에서 터져 나오는 애통과 같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적인 격정을 가지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의 선하심의 진실성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이다.
- 성육신하신 선의 눈물: 성육신하신 선, 즉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눈물과 한숨으로 애통해하신 것(눅 19:42)은 이 진실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 선하심의 명백한 증거: 차녹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결론짓는다. "어떤 의사가 자신의 귀한 약을 거저 주며, 건강을 위해 제발 약을 먹으라고 간청하고, 환자의 고집으로 약이 거절되자 눈물과 슬픔에 잠긴다면, 누가 그 의사에게 친절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애정 어린 초청과 깊은 애통은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가장 높은 증거이다.
참조 링크
Stephen Charnock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These passages from classical Reformed theologians and preachers speak of God’s desire for or delight in the salvation of those who hear the gospel offer, inasmuch as his revealed will is an expression of his goodness and kindness toward the hearers of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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