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일서의 저작권 문제 - 장로 요한?신앙/신학 이야기 2026. 2. 9. 19:54
Intro
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번 포스팅도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에 대한 내용이다. 물론, 요한일서의 저작권은 요한이서, 요한삼서와는 달리 좀더 복잡하긴 하다.
참고로, 이번 번역은 아래의 링크에 있는 글을 번역한 것이다.
1. The Authorship of 1 John | Bible.org
NET Bible Tagger issues Attention: If you are experiencing issues with verses not being displayed in the pop-up window, please clear your browser cache. For desktop and laptop users, this can usually be accomplished by holding the shift key down on your ke
bible.org
요한일서의 저자
요한 서신 세 편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기독론적 논쟁을 고려할 때, 저자 문제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요한일서의 경우, 그 저자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목격한 증인이었는지 여부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는 저자가 요한일서 1:1–4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며, 또한 요한일서 2:18–19에 언급된 분리주의적 반대자들의 새로운 기독론에 맞서, 다른 사도적 목격자들과 함께 서 있는 인물로 자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일서의 저자를 규명하는 문제는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저자 문제와는 다소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요한일서의 경우, 서신 자체 안에 저자가 명시되지 않은 익명 문서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가운데 저자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또 다른 서신은 히브리서뿐이다. 반면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저자를 "장로"로 지칭하고 있으며, 이 인물이 요한일서의 저자와 동일한지, 그리고/또는 사도 요한과 동일한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또한 요한일서의 주해 자체는 누가 이 서신을 기록했는지에 대한 결론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외적 증거(즉 역사적 증거)와 내적 증거(서신 자체에 포함된 증거) 모두와 일관된 저자 규명을 할 수 있다면, 신약성경 내 다른 요한 문서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특히 문체와 어휘에서 오래전부터 많은 유사성이 지적되어 온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러하다.
요한일서 저자에 관한 역사적 증거
요한 서신들에 대한 초기 암시적 언급
일부 학자들은 주후 2세기 무렵의 여러 비정경적 기독교 문헌들 가운데 요한일서 및/또는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 대한 암시적 언급이 존재한다고 제안해 왔다. 이러한 가능한 암시들은 실제로 요한 서신들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의 정도에 따라 몇 가지 범주로 분류되어 왔다.
가능성이 낮은 암시들
이 범주에 속한 문헌들은 요한 서신들에 대한 암시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실제로는 초기 기독교 사상의 공통된 배경에서 비롯된 유사성일 가능성이 더 큰 문헌들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문헌들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클레멘스의 첫째 서신(주후 96년경), 에베소 교회에 보낸 이그나티우스의 서신(주후 110–115년경), 그리고 디다케(현재는 대체로 주후 1세기 말로 연대가 잡힘)이다.
가능한 암시들
이 범주에 속한 문헌들은 실제로 요한일서 및/또는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 대한 암시나 간접적 언급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문헌들로는 바나바 서신(주후 130년경), 『헤르마스의 목자』(주후 150년 이전), 고린도 교회에 보낸 클레멘스의 둘째 서신(주후 150년경), 유스티노스 순교자의 두 변증서와 『트리포와의 대화』(주후 150년경), 그리고 저자가 불확실한 초기 변증 문헌인 『디오그네토스에게 보낸 서신』이 있다. 이 마지막 문헌은 수신자가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총독이었던 클라우디우스 디오게네스였다고 가정할 경우, 주후 2세기 말로 연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는다.
개연성이 높은 암시들
다수의 신약학자들에 따르면, 이 범주에 속한 문헌들은 요한 서신들 중 하나 이상에 대한 실제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이른 예는 폴리캅의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주후 140년 이전)으로, 이 서신 7장은 요한일서 4:2–3과 비교된다. 두 번째 개연성 높은 암시는 폴리캅과 동시대인이었던 파피아스의 증언에서 발견되며, 이는 유세비우스를 통해서만 전해진다.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파피아스는 "요한의 첫째 서신으로부터 증언들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진술은 파피아스가 요한 서신이 둘 이상 존재함을 알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이는 오히려 유세비우스가 살던 4세기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고대 저자들이 이전 문헌을 인용할 때, 당대의 기준에 맞추어 표현을 '갱신'하는 일은 흔한 관행이었다.
요한 서신들에 대한 초기의 직접 인용
다음 문헌들은 요한 서신들에 대한 최초의 명확하고 일반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직접 인용을 포함하고 있다.
(1) 이레네우스
이레네우스의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 주후 180년경)은 세 곳에서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 대한 직접 인용을 포함한다. 『이단 논박』 1.16.3은 요한이서 11절을 인용하면서, 이 서신이 주의 제자 요한, 곧 제4복음서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덧붙인다. 『이단 논박』 3.16.5는 요한일서 2:18–19과 21–22를 인용하며, 『이단 논박』 3.16.8은 요한이서 7–8절을 인용하는데, 이 본문은 요한일서 4:1–2 및 5:1과도 겹친다. 이 모든 인용은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이레네우스의 논증의 일부로 사용된다.
(2) 무라토리 정경
무라토리 정경(일명 무라토리 단편, 주후 200년경)은 정경으로 인정된 문헌들의 초기 라틴어 목록의 단편으로, 로마 교회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문헌은 요한 서신들에 대해 다소 복잡한 설명을 제시한다. 무라토리 정경은 요한이 제4복음서를 기록한 후 그의 "서신들"을 언급하지만, 그 수가 몇 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어서 "확실히 유다의 서신과 앞서 언급된 요한의 두 서신은 보편 교회에서 받아들여진다"고 말한다. 이 문장의 의미는 논쟁적이다. R. 브라운은 이를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한다. 반면 무라토리 정경이 요한일서를 복음서와 함께 배치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여기서 언급된 두 서신은 요한일서와 요한이서가 아니라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를 가리킨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P. 카츠는 "보편적(catholic)"이라는 표현을 교회가 아니라 '보편 서신', 곧 요한일서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여 세 서신 모두를 포함하는 언급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입증하기는 어렵지만)는 이들과 다소 다르다. 곧 요한이서가 서방 교회에서 요한일서의 일부로 간주되었을 가능성이다. 이레네우스는 『이단 논박』 3.16.8에서 요한이서 7–8절을 인용하면서, 이미 앞서 인용한 서신, 즉 요한일서에서 나온 것처럼 다룬다. 만일 그렇다면, 무라토리 정경은 요한일서와 요한이서를 하나로 묶은 문헌과, 요한삼서를 별도의 서신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증거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는 확정적인 주장이 될 수는 없다.(3) 터툴리안
터툴리안(주후 215년 사망)은 요한일서를 여러 차례 인용하며, 이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언급한다.
(4)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주후 220년경 사망)는 요한일서를 여러 차례 인용할 뿐 아니라, 이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귀속시키며, 요한일서를 "더 큰 서신"이라고 부른다. 이는 그가 최소한 요한 서신이 둘 이상 존재함을 알고 있었고, 그것들이 동일한 저자에게서 나왔다고 이해했음을 보여 준다. 클레멘트가 알고 있었던 다른 요한 서신은 요한이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히포튀포세이스』에는 요한이서에 대한 주석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 오리겐
오리겐(주후 253년 사망)은 요한일서를 자주 인용하며 이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언급한다.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오리겐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도 알고 있었으나, 이 두 서신이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리겐의 현존하는 저작 가운데 요한이서나 요한삼서를 직접 인용한 사례는 없다. 그가 복수형으로 "요한의 서신들"을 언급한 유일한 근거는 『여호수아 강해』(7.1)의 라틴어 번역본에 나타나는데, 이 번역본의 헬라어 원문은 전해지지 않는다. 더욱이 같은 저작의 다른 부분(7.4)에서는 다시 단수형으로 "그의 서신"을 언급하고 있어, 이 증거는 다소 불확실하다.
(6)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오리겐의 제자였던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주후 265년 사망)는 요한일서와 제4복음서가 동일한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았으나,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의 문체가 요한계시록과는 다르다고 판단하여, 계시록은 다른 저자의 작품으로 보았다.
역사적 증거에 대한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외적(역사적) 증거를 종합해 보면, 요한일서는 적어도 2세기 말 이전부터 동방과 서방 모두에서 그 진정성과 권위에 대해 아무런 의문 없이 인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는 곧 제4복음서의 저자로 이해되었다.
요한일서 저자에 관한 내적 증거
요한일서와 히브리서는 신약성경의 서신들 가운데 저자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두 문헌이다. 그렇다고 해서 요한일서가 저자에 관한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 그리스도의 목격자로서의 저자
요한일서의 서두, 곧 1:1–4는 서신이 담고 있는 증언의 목격자적 성격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1:1은 저자가 자신이 직접 들었고, 보았고, 주목하여 바라보았으며, 손으로 만졌다고 말하는 것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서두에서 사용된 1인칭 복수형이 반드시 저자가 그 사건들의 직접적인 목격자였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왜냐하면 같은 1인칭 복수형이 서신 후반부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 경험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예: 요한일서 4:13). 그러나 만일 서두가 단지 일반적인 기독교적 경험, 곧 성육신에 대한 신앙 고백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서신 전체의 메시지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서두의 목적은 분명히 저자의 메시지를 확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접근은 요한일서 1:1–4에 나타나는 목격자 언어를, 이후에 이어질 내용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한 수사적 장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한일서가 심각한 기독론적 분열 상황, 곧 반대자들의 이탈(2:18–19)이라는 현실 속에서 기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목격자 주장들이 단지 수사적 장치에 불과했다면, 수신자들과 반대자들 모두 그것을 쉽게 간파했을 것이며, 그러한 주장은 논쟁에서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서두에서 자신이 예수의 지상 생애와 사역을 직접 목격한 원래의 증인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의도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자신을 다른 사도적 목격자들과 동일한 범주에 두고자 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는 앞서 살펴본 외적 증거가 전통적으로 요한일서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귀속시켜 온 것과도 완전히 일치한다.(2) 서신의 권위적인 어조
요한일서 서두의 목격자 주장 외에도, 서신 전체는 저자가 자신의 권위를 전제하고 쓰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저자가 기록한 내용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가정된다(요한일서 4:6). 반대자들의 오류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허용되지 않으며, 그 오류는 단호하게 정죄된다(2:18–19; 4:1–3). 서신 전체의 어조는 분명히 사도적 권위의 어조이며, 이는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보는 이해와 잘 부합한다.
(3) 수신자들과의 친밀한 관계
저자가 수신자들을 가리켜 "자녀들아"(τεκνία)와 같은 애정 어린 호칭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2:1, 12, 28; 3:7, 18; 4:4; 5:21)은, 그가 수신자들에게 매우 잘 알려진 인물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저자의 이름이 서신에 생략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는 이미 충분히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별도의 소개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4)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의 관계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의 관계는 다른 곳에서 더 자세히 논의될 것이다. 여기서는 두 문헌 사이에 문체, 어휘, 신학적 강조점, 그리고 아마도 구조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점만을 언급하면 충분하다. 이 점을 저자 논의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요한일서의 저자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연적으로 요한복음의 저자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적 증거에 대한 결론
요한일서에는 저자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서신 안에 나타나는 여러 지표들—예수의 생애에 대한 목격자, 사도적 권위, 수신자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 그리고 요한복음과의 유사성—은 모두 전통적으로 요한일서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이해해 온 견해와 일관된다.
요한일서 저자에 대한 대안적 제안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요한일서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보는 견해는 역사적·내적 증거 모두에 의해 잘 뒷받침된다. 그러나 서신 자체에 저자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이 견해가 보편적인 동의를 얻어 온 것은 아니며, 몇 가지 주요한 대안적 제안들이 제시되어 왔다.
(1) 장로 요한
요한일서를 사도 요한이 아닌 다른 인물의 저작으로 보는 견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대안은, '장로 요한'이라 불리는 또 다른 인물에 의한 저작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요한이서와 요한삼서가 모두 저자를 "장로"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찾는다. 또한 유세비우스가 인용한 파피아스의 논쟁적인 한 구절 역시, 사도 요한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인물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된다.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파피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리고 또, 만일 장로들의 추종자였던 누군가가 오면, 나는 장로들의 말씀에 대해 물었다. 곧 안드레나 베드로나 빌립이나 도마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마태나 주의 다른 제자들 중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εἶπεν, 과거), 그리고 아리스티온과 장로 요한, 곧 주의 제자들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λέγουσιν, 현재)를 물었다. 이는 살아 있고 남아 있는 음성에서 나오는 말이 책에서 얻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파피아스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 여기서 "장로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이들은 곧바로 나열된 "제자들"과 동일한 인물들인가, 아니면 별개의 집단인가? C. K. 배럿은 "장로들의 말씀"이 이미 말해진 사도들의 발언에 대한 보고라고 확신했다. 이 경우 파피아스는 사도 요한의 직접적인 청자가 될 수 없으며, 폴리캅의 동료도 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파피아스는 세 집단을 구분하고 있는 셈이다. 곧 사도들, 그들의 추종자들인 장로들, 그리고 또 다른 제자들이다.
그러나 만일 파피아스가 사도들을 '장로'로 묘사하고 있다면, 여기에는 두 집단만 존재하게 된다. 곧 사도들과 그 제자들이다. 이 경우 파피아스는 사도들의 추종자들로부터 사도들이 한 말을 직접적으로 물었던 것이 된다. 이는 이레네우스의 증언과 더 가깝다. 그리고 만일 사도들이 '장로'로 불리고 있다면, "장로 요한"은 앞서 언급된 사도 요한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파피아스는 요한이 과거에 한 말과, 자신이 조사하던 당시 여전히 하고 있던 말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는 파피아스의 말을 그렇게 해석한 유세비우스의 견해에 의해 지지된다. 그러나 유세비우스는 요한계시록을 복음서의 저자와 다른 요한에게 귀속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의 해석이 중립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장로 요한'의 존재에 대한 다른 증거는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서두에서 저자가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는 것 외에는 없다. 설령 두 번째 요한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파피아스는 그의 활동 지역이나 저술에 대해 아무런 암시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전통적으로 제4복음서의 저자로 여겨진 인물과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며, 이것이 혼동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만일 후대 교회가 사도들과 장로들을 혼동했다면, 파피아스 자신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실제로 그는 처음부터 한 인물만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의 말이 유세비우스에 의해 혼동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유세비우스가 전하는 파피아스의 증언이 지닌 모호성은, 그 증언만을 근거로 어떤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2) 사도 요한의 제자
요한 서신들이 사도 요한의 제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대체로 요한복음의 저작권 이론과 연결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비판적인 학계에서는 요한복음의 저자를 사도 요한(또는 사랑받는 제자)의 추종자로 보는 견해가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다. 이 견해는 복음서의 증언 자체는 사도적이거나 사도에 근접한 것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기록한 저자는 사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아가 이 인물이 요한일서 또는 요한 서신 세 편 모두를 기록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3) 요한 공동체의 기독교 지도자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요한일서(그리고 아마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도)의 저자를, 사도 요한의 개인적 지인이 아니며 요한복음의 저자도 아닌, 요한 공동체 내의 한 기독교 지도자로 본다. 이는 현재 요한 문헌 연구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로, R. 브라운과 S. 스몰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견해는 주로 두 가지 가정에 기초한다. 첫째, 복음서가 기본적으로 완성된 이후, 서신들이 다루는 상황은 더 발전된 단계에 있다는 점. 둘째, 신학적 강조점, 문체, 어조 등에서 동일 저자를 가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차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브라운과 스몰리는 모두 요한일서·요한이서·요한삼서가 동일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지만, 스몰리는 요한일서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J. 퀴글러는 최근 또 다른 제안을 제시했는데, 그는 요한일서가 실제 저자와 암시된 저자를 모두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이 구분에 따르면, 암시된 저자는 목격자이지만 실제 저자는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 실제 저자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실제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목격자의 입장을 취하는 문학적 장치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요한일서 서두에 나타나는 목격자 언어의 중요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문학적 기법이 고대 세계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초기 기독교가 위서적 저작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점 역시, 퀴글러의 견해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더 나아가 요한일서는 저자가 수신자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독자들이 저자가 목격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면, 그러한 가장은 반대자들을 상대로 아무런 논증적 힘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자들 역시 자신들의 새로운 계시에 대해 성령의 권위를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결론
위에서 제시된 모든 대안들에 대해, 우리는 요한일서·요한이서·요한삼서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지지하는 역사적·내적 증거로 답할 수 있다(요한복음의 경우는 별도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B. H. 스트리터의 다음 진술에 동의한다.
"우리는 이 네 문서 모두가 동일한 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문체와 인격, 감정의 미묘한 뉘앙스에 대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함의들만이 문제 되지 않는 한, 이 결론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브라운이나 스몰리가 제시한 어떤 증거도, 저자를 사도 요한이 아닌 다른 인물로 보아야만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요한 공동체 내부의 상황이 복음서와 요한일서 사이에서 발전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두 문헌 모두의 사도적 저작권을 유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결론이 현재 이용 가능한 모든 증거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판단된다.
'신앙 > 신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에서 사모란 직분인가? (1) 2026.03.02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을 이용한 모범적이고 재현 가능한 설교 준비 방법론 (2) 2026.03.01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은 다른 인물일까? (1) 2026.02.08 축소된 복음을 이겨낸 하나님의 선교, 그 실제적인 예 (1) 2026.02.07 댈러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경적 부르심과 소명 (0) 2026.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