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은 다른 인물일까?신앙/신학 이야기 2026. 2. 8. 18:19
Intro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에 대한 것이다. 일부 학자들 가운데 요한서신을 쓴 사람은 사도 요한이 아니라 장로 요한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조차도 사도 요한이 쓴 게 아니라 장로 요한이 썼다고 말한다.
(이 주장이 꽤나 다양한데, 요한복음을 포함하여 모든 걸 장로 요한이 썼다는 주장, 요한123서와 계시록만 장로 요한이 썼다는 주장, 요한3서와 계시록만 장로 요한이 썼다는 주장, 요한계시록만 요한 장로가 썼다는 주장 등.. 두 인물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게 다양하다.)
물론 복음주의권 학자들은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을 동일시한다. 다른 사도들이 다 죽은 상황에서 홀로 남은 요한만 장로 요한이라고 불렀다는 주장도 있고,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이 별개의 인물이라고 볼 근거가 약하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의 유사성을 생각하면, 요한서신의 저자가 요한복음의 저자와 이름만 동일인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처음 들어본 사람이 있을 듯하여, 이번에는 그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한 아래의 링크를 번역했다.
https://webtheology.com/books/Identity_of_Papias_Elder_John.pdf
파피아스의 '장로 요한'의 정체성
(The Identity of Papias' "Elder John")
약 1,700년 동안 학자들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이하 HE)에 인용된 한 단락 때문에 논쟁해 왔다. 이 단락에서 유세비우스는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이었던 파피아스(c. 70–140)의 말을 인용한다. 유세비우스 자신은 곧이어 파피아스가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을 언급했다고 주장하며, 이 두 번째 요한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실제 저자라고 결론지었다.
과연 이 말들은 두 명의 요한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가르침과 현재의 가르침을 대비하면서 오직 한 명의 요한만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든지 장로들의 추종자였던 사람이 오면, 나는 그들의 말에 대해 물었다. 곧 안드레나 베드로가 무엇을 말했는지, 혹은 빌립이나 도마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마태나 주의 다른 제자들 중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그리고 아리스티온과 장로 요한, 곧 주의 제자들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이는 책에서 얻는 정보보다 살아 있고 남아 있는 음성에서 나오는 말씀이 나에게 더 큰 유익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HE 3.39.4, Maier 번역에 대한 번역, p.127)
■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가 두 명의 요한을 말하고 있으며, 그 두 번째 요한이 『요한계시록』의 저자라고 믿었다. 그는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는 점은 단호하게 가르쳤다(HE 3.24.11–13). 그러나 유세비우스의 이 '두 요한' 결론을 토대로, 일부 현대 학자들(예: 독일 튀빙겐의 마르틴 헹엘,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리처드 보컴)은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조차 기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같은 전통적 학자들은 이 장로 요한을 여전히 초기의 신뢰할 만한 목격자로 보지만,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이 두 번째 '무명의 요한'이 예수의 생애에 대해 신뢰할 만한 저자가 될 수 없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사도적 저작권은 HE 3.39.4의 파피아스 인용문이나, 그것이 두 명의 요한을 가리키는지 여부에 대한 결정 없이도 충분히 확증될 수 있다(참조: Waterhouse, Jesus and History, pp. 45–59). 해당 인용문은 저작권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이 문제는 부차적 논점으로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 만일 두 번째 요한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문헌의 저자도 될 수 없다.
■ 파피아스가 정보를 수집한 시기가 매우 이르렀다는 점(사도 요한의 생애와 겹치는 시기)은, 그가 사도 요한에게서 배우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파피아스는 사도행전 21:9에 언급된 빌립의 두 딸과도 교류할 수 있을 만큼 이른 시기에 활동했다(HE 3.31.3; 39.9.9).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에 관한 장을 트라야누스 황제 통치 3년과 12년 사이, 즉 주후 101–110년 사이에 배치한다(HE 3.34; 4.1.1). 또한 그는 파피아스 직전에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 폴리캅을 언급한다(3.38.5). 파피아스는 HE 3.36에서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과 함께 언급되며, 같은 장에서 이그나티우스의 순교(주후 107–108년경)가 기록된다. 반면 폴리캅의 순교는 다음 권(HE 4:15)에 가서야 다루어진다. 이는 유세비우스가 파피아스를 폴리캅의 초기 활동 시기에 위치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고, 약 86세에 주후 156년에 순교했다. 그렇다면 파피아스 역시 사도 요한을 직접 알았거나, 최소한 그가 아직 생존해 있을 때 그의 제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세비우스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파피아스를 사도 요한을 알 수 있었던 시기에 배치하고 있는 셈이다. 소아시아 출신으로 폴리캅에게서 배운 이레네우스를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 이레네우스는 파피아스를 "폴리캅의 동료"이자 "요한의 청자"라고 불렀다(『이단 논박』 5.33.4). 파피아스가 주후 110년경 혹은 그 이후에 저술했다 하더라도, 그의 학습 시기는 사도 요한의 생존한 가르침의 시기와 충분히 겹친다.
■ 예수의 실제 제자였던 또 다른 '장로 요한'을 상정하는 이론은 자기모순적이다. 만일 파피아스가 이 가상의 제자로부터 배울 수 있을 만큼 이른 시기에 살았다면, 그는 사도 요한에게서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를 직접 따랐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 축에 속했으며,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생존한 제자였다.
■ HE 3.39.4에서 아리스티온과 장로 요한은 함께 언급되지만, 파피아스는 아리스티온에게는 '장로'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 이는 파피아스에게 '장로'라는 표현이 단순한 고령이나 교회 직분이 아니라, 베드로전서 5:1에서처럼 사도를 의미했음을 시사한다.
■ 파피아스는 구전 전승을 책과 동등한 권위로 보았다. 만일 그가 '책'에 이미 기록된 복음서들을 포함시켰다면(Hill, The Johannine Corpus, p.385 이하; Bauckham, Jesus and the Eyewitnesses, p.417), 그의 구전 출처 역시 그에 상응하는 최고 권위를 지닌 인물, 곧 사도 요한을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
■ HE 3.39.15에서 이름 없이 단순히 "그 장로"라고 언급되는 후속 표현은, 파피아스가 독자들이 이 장로를 사도 요한으로 인식할 것이라 기대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와 같이 초기 교부들이 이해했던 방식과도 부합한다.
■ 유세비우스가 디오니시우스를 인용하여 『요한계시록』의 저자를 비사도적 요한으로 돌릴 때(HE 7.25), 디오니시우스 자신은 그 요한을 "장로 요한"이라 부르지도 않았고, 파피아스의 인용문과 연결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유세비우스는 자신의 '두 요한'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파피아스의 증거를 전혀 사용하지 않다. 만일 그가 자신의 결론을 확신했다면,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다.
■ 디오니시우스는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사도적 저작권은 인정했다(HE 7.25.11). 이는 그에게도 '장로'라는 칭호가 제2의 요한이 아니라 사도 요한을 의미했음을 보여준다.
■ 유세비우스는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저작권에 의문을 제기했지만(HE 3.25.3), 여전히 그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파피아스의 책에 자주 등장한다는 '장로 요한'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가 실제로는 『요한계시록』의 사도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데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 유세비우스는 천년왕국 사상과 『요한계시록』의 저작권 문제에서 객관적이지 않았다. 그는 사도 요한이 고령이었고,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에베소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HE 3.18.1; 20.11). 또한 많은 이들이 사도적 저작권을 지지했음을 알고 있었다(유스티노스, 멜리톤, 이레네우스, 무라토리 정경). 이런 정황에서 또 다른 요한을 상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결론
요한 문서군(Johannine Corpus)의 사도적 저작권은 파피아스의 인용문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확립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두 번째 요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문헌의 저자도 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세비우스라는 비우호적인 비평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 파피아스의 단편적 증언 속에서 작은 단서들을 종합하는 것뿐이다. 그 작은 단서들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현재 이용 가능한 자료에 근거할 때, 유세비우스의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저작권 문제와 또 다른 요한의 존재 문제에서 객관적이지 않다. 그는 대체 저자를 '찾고자' 하였고, 그 결과 파피아스의 한 문장 속에서 가상의 요한을 끌어내었다. 파피아스가 말한 "살아 있는 음성"은 사도 요한, 곧 널리 알려진 그 "장로" 외의 다른 인물이었다고 보기에는 현재의 증거가 턱없이 부족하다.
© Steven Waterhouse 박사
Westcliff Bible Church, Amarillo, Texas'신앙 > 신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소된 복음을 이겨낸 하나님의 선교, 그 실제적인 예 (0) 2026.02.07 댈러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경적 부르심과 소명 (0) 2026.02.05 교회의 생애 주기 - 성장의 열정부터 조직의 소멸까지 (1) 2026.01.24 교회, 커뮤니티의 생애 주기와 각 시기별 활성화 방안 (0) 2026.01.23 은사에 대한 세 가지 입장과 고린도전서 13장 해석에 대하여 (1) 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