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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 함께 즐기는 만찬에서 엄숙한 종교 의식으로 바뀌는 과정책&논문 소개 2025. 12. 11. 09:10
성찬의 변화 과정 - 함께 즐기는 만찬에서 거룩한 의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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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성결교 예배학자 조기연 교수의 논문, <성찬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예배학적 고찰 - 초대교회와 존 웨슬리를 중심으로>를 정리하고자 한다. 해당 논문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존 웨슬리에 이르기까지 성찬(Eucharist)의 역사적 변천, 핵심 신학적 의미, 그리고 그 중요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성찬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자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갱신하는 중심 예식이다. 초기에 온전한 한 끼 식사였던 성찬은 점차 상징적 예식으로 변화했으며, 이 과정에서 풍부한 신학적 의미가 정립되었다.
초대교회가 정립한 성찬의 핵심 신학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성령을 통한 변화: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2. 공동체적 사건: 성찬은 개인의 경건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이는 교회의 공적 행위이다.
3. 그리스도와의 연합: 참여자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며, 그분과의 '새 언약'을 갱신한다.
4. 성도의 일치: 하나의 빵을 나눔으로써 모든 참여자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한 지체가 되어 연합한다.
5. 종말론적 잔치: 성찬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경험할 천국 잔치를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예표이다.
존 웨슬리는 이러한 초기 교회의 신학적 유산을 충실히 계승했다. 그는 성찬을 구원의 은혜가 실제로 주어지는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으로 보았으며, 그의 찬송가에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실제적 임재, 종말론적 소망, 영적 양식, 성도의 연합이라는 성찬의 다층적 의미가 깊이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성찬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인간의 행위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시며 현재적으로 역사하시는 능동적인 은총의 사건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I. 성찬의 역사적 변천: 완전한 식사에서 상징적 예식으로
초기 형태: 공동 식사로서의 성찬
성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성찬은 소량의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상징적 예식이 아니라, 배불리 먹고 마시는 '온전한 한 끼 식사'였다. 1세기 성찬은 예수의 최후 만찬이 유대인의 유월절 식사(Chabura Meal)였던 배경에 따라 정규 저녁 식사를 포함하는 형태였다. 1세기 성찬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재구성될 수 있다.
1. 주께서 빵을 집으심
2. 감사 기도
3. 빵을 떼심
4. 제자들에게 주심 ("나를 기념하라")
5. 식사 (온전한 한 끼의 저녁 식사)
6. 잔을 집으심
7. 감사 기도
8. 제자들에게 주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성찬과 애찬의 분리
온전한 식사 형태의 성찬은 주후 50년경(고린도전서 기록 시점)과 2세기 초반(플리니우스의 편지, 주후 112년) 사이에 점차 두 가지 형태로 분화되었다. 하나는 소량의 빵과 포도주만을 먹는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식사인 성찬(Eucharist)이며, 다른 하나는 온전한 식사를 하는 애찬(Agape Meal)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있었다.
- 오남용 문제: 고린도교회의 사례처럼 부유한 자들이 먼저 와서 음식을 독점하여 가난한 자들이 소외되는 등 음식과 음료의 오남용 문제가 발생했다.
- 예배 시간의 변경: 예배 모임이 저녁에서 아침으로 옮겨지면서 아침부터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 경제적 부담: 교인 수가 증가함에 따라 매주 식사를 준비하는 비용이 증가했다.
II. 초기 기독교 문헌에 나타난 성찬
초기 기독교 문헌들은 성찬이 매주 거행되었으며,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 담긴 예식이었음을 증언한다.

초기 교부들의 증언
- * 로마의 클레멘트 (Clement of Rome, 약 주후 80년): 성찬을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확히" 거행할 것을 가르쳤다.
-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 (Ignatius of Antioch): 성찬의 빵을 "불멸의 약이며 해독제"라고 표현하며, 이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했다.
- 키프리아누스 (Cyprian, 3세기): 성찬에서 포도주에 물을 섞는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포도주)와 하나님의 백성(물)의 분리될 수 없는 연합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III. 초기 교회의 핵심 성찬 신학
초기 교회 문헌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성찬의 신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A. 성령을 통한 빵과 포도주의 변화
초기 교회는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화된다고 믿었다. 이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선 실재적 변화로 이해되었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Ambrose of Milan): "가장 거룩한 성례전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오면 사제는 더 이상 자신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성례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없는 것도 생겨나게 하시는데 하물며 이미 존재하는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얼마나 쉽겠습니까?"
예루살렘의 키릴루스(Cyril of Jerusalem)는 이 변화의 주체가 성령이라고 강조했다.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 위에 임하셔서 그것들을 거룩하게 변화시키신다는 것이다.
B. 교회의 공적 행위
성찬은 처음부터 개인의 경건 훈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함께 모여 거행하는 공동체적이고 공적인 사건이었다.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는 "하나님의 성찬을 거행하고 그분을 찬양하기 위해서 더 빈번하게 모임을 갖도록 하라. 왜냐하면 당신들이 자주 모일 때 당신들의 하나된 믿음으로 인해 사탄의 힘이 약화되고 그의 파괴력이 무력화된다"고 말하며 공동체적 성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C. 그리스도와의 연합
성만찬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Communion)과 연합을 가져온다. 참여자들은 빵을 먹고 잔을 마심으로써 예수께서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신 계약을 기억하고 갱신하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이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성령이다.
D. 그리스도인 간의 연합과 일치
성찬은 참여자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킬 뿐만 아니라, 참여자들 상호 간에도 하나로 묶는 일치의 사건이다.
사도 바울: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린도전서 10:16-17)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수많은 밀알이 빻아져 하나의 빵이 되고, 수많은 포도알이 모여 하나의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다양한 신자들이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된다고 설명했다.
E. 천국 잔치의 예표
성찬은 장차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실 천국 잔치를 미리 맛보는 종말론적 식사이다. 이 의미는 성찬을 제정하신 예수의 말씀에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누가복음 22:15-18)
초대교회는 "마라나타(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를 성찬 예식 중에 사용하며,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종말론적 소망을 확인했다.IV. 존 웨슬리의 성찬 신학
존 웨슬리의 성찬 신학은 그의 형제 찰스와 함께 출간한 『주의 만찬에 관한 찬송들』(1745)에 집약되어 있으며, 초기 교회의 풍부한 신학적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다.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성찬
웨슬리에게 성찬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구원에 필요한 그리스도의 모든 은택이 실제로 주어지는 '효력 있는 은혜의 수단(effectual means of grace)'이었다. 그는 성찬을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표현했다.
- 은총의 상징 (figure)
- 은혜의 방편 (means)
- 거룩하고 참된 효험있는 징표 (the Sacred true, effictual sign)
- 내적 은총의 가시적 징표 (outward sign of inward grace)
웨슬리 찬송가에 나타난 성찬의 의미
웨슬리의 찬송가들은 성찬의 다층적인 의미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1.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기념: 성찬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려진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 제사를 기념하고 현재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이다.
2.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 웨슬리는 "떡을 받으면서 우리는 예수(의 살)을 먹는다... 예수는 여기 계신다!"고 노래하며,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실제로 임재하신다고 믿었다.
3. 종말론적 잔치: 성찬은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 참여하게 될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웨슬리의 찬송가는 성찬 참여자들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 천상의 잔치에 참여하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4. 영혼의 양식: 웨슬리는 "우리의 몸이 떡과 포도주를 먹음으로 건강해지듯이 우리의 혼이 주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건강해집니다"라고 설교하며, 성찬을 규칙적으로 자주 받을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5. 성도의 연합: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의 지체가 되어 온전한 연합과 조화를 이룬다고 보았다.V. 결론 및 시사점
성찬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인간의 행위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능동적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며 우리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하시는 은총의 사건이다. 이는 초기 교회로부터 존 웨슬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져 온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다.
특히 한국 교회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성찬의 종말론적 성격, 즉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기쁨과 소망'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더욱 풍부한 신학적 기도문과 찬양을 통해 성찬의 다층적 의미를 되살릴 때, 모든 성도들은 매주 예배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깊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책&논문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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