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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지성인과 철학자들을 향한 알빈 플란팅가의 조언
    책&논문 소개 2025. 12. 27. 09:36

    기독교 지성인과 철학자들을 향한 알빈 플란팅가의 조언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https://christianprince.tistory.com/189

    www.youtube.com

     
     
    이번 포스팅은 알빈 플란팅가의 글, <Advice to Christian Philosophers>를 정리한 것이다. 알빈 플란팅가는 같은 교회 성도님이셨지만 몸이 좋지 않아서 자주 볼 수 있지는 않았다. 대신 알빈 플란팅가의 가족들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눈 기억이 선명하다.

    이 글에서 알빈 플란팅가의 중심 주장은 기독교 철학자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 지성인들이 학문 활동에 있어 더 큰 자율성(autonomy), 통전성(integrality), 그리고 용기(courage)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 학계의 지배적인 지적 풍토가 근본적으로 비(非)유신론적이거나 반(反)유신론적이라고 진단하며, 기독교 지성인들이 무비판적으로 이러한 세속적 전제와 연구 의제를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플란팅가는 기독교 공동체가 자신만의 고유한 질문과 연구 과제를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 철학자들은 이러한 과제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는 세속 학계의 유행을 따르는 대신, 기독교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독자적인 대안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철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모든 학문적 논의의 출발점에서 중립적으로 증명해야 할 가설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자신의 철학적 작업의 정당한 전제로 삼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논리실증주의, 악의 문제, 자유의지와 결정론, 행위자 인과론 등 구체적인 철학적 논쟁들을 사례로 들어 기독교적 전제가 어떻게 독자적이고 강력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논증한다. 궁극적으로 이 문서는 기독교 학자들이 단순히 '기독교인인 철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학문적 실천의 핵심에 두는 '기독교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촉구를 담고 있다.


    1. 핵심 주장: 독자적 기독교 지성 활동의 촉구

    플란팅가는 기독교 철학자들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그들이 학문 공동체 내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세 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한다. 이 원칙들은 기독교 지성이 세속 학문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고 고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1.1. 자율성 (Autonomy)

    기독교 철학자들은 프린스턴, 버클리, 하버드와 같은 주류 철학계가 설정한 연구 주제나 유행에 맹목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 공동체는 그 자체의 고유한 관심사, 탐구 주제, 연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철학자들의 일차적인 과제는 이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이며, 따라서 공동체의 필요와 질문에 부응하는 철학적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세속 철학계의 유행을 따르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기독교 철학자로서의 핵심적이고 중심적인 과업을 소홀히 하게 될 위험이 있다.

    1.2. 통전성 (Integrality)

    통전성은 온전함 또는 통일성을 의미한다. 기독교 사상을 윌러드 밴 오먼 콰인(W. V. O. Quine)의 자연주의와 같은 근본적으로 반기독교적인 철학적 틀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기껏해야 어색한 '파스티셰(pastiche)'에 그치거나, 최악의 경우 기독교 유신론의 주장을 심각하게 타협, 왜곡, 혹은 하찮게 만들 뿐이다. 예를 들어, 신을 '참된 명제들의 집합'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기독교 신앙을 세속 철학에 맞추려는 잘못된 시도이다. 기독교 철학자는 자신의 작업을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온전히 통합하여, 모든 요소가 하나의 일관된 전체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1.3. 용기 (Courage)

    기독교 철학자는 자신의 철학적 작업의 출발점이 되는 전제들에 대해 완벽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전제들이 기독교 또는 유신론 공동체 외부에서 널리 공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흥미롭지만 근본적으로 무관하다. 기독교 철학자는 신의 존재와 같은 자신의 신념을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 아닌, 철학적 탐구의 타당한 시작점으로 삼을 권리가 있다. 다른 철학자들이 과거의 존재나 타인의 마음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듯, 기독교 철학자 역시 신의 존재를 전제하고 거기서부터 작업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2. 주요 사례 연구

    플란팅가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철학사의 구체적인 논쟁들을 사례로 제시한다. 각 사례는 기독교 철학자들이 자율성, 통전성, 용기를 발휘해야 할 필요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2.1. 신앙과 검증가능성: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비판

    • 배경: 20세기 중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검증가능성 원리'를 내세워 "신은 우리를 사랑하신다"와 같은 유신론적 문장들이 거짓이 아니라 아예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이 원리에 따르면, 한 문장은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 때만 의미가 있다.
    • 잘못된 대응: 많은 기독교 철학자들은 이 도전에 위협을 느끼고 불안해하며 실증주의에 순응하려 했다. 일부는 유신론이 엄밀히 말해 무의미하지만 '중요한 무의미'라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신은 존재한다"는 말을 "어떤 사람들은 '신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는 의미로 재해석하자고 제안했다.
    • 플란팅가의 제안: 이는 완전히 부적절한 대응이었다. 기독교 철학자들이 취했어야 할 올바른 태도는 다음과 같았다: "당신들의 기준이 틀렸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를 사랑하신다'와 같은 문장은 명백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문장들이 당신들의 의미에서 검증 가능하지 않다면, 검증 가능한 문장만이 의미 있다는 당신들의 주장이 거짓인 것이다." 기독교 유신론이 참이라면 검증가능성 원리는 거짓이므로, 기독교 철학자는 이 원리를 단호히 거부했어야 했다. 이는 더 많은 기독교적 자신감이 필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2. 신앙과 인식론: 악의 문제와 전제된 믿음

    • 배경: 신의 존재에 대한 고전적인 반론인 '악의 문제'는 오늘날 신의 존재가 악의 존재와 논리적으로 불일치한다는 '연역적 논증'보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양과 종류를 고려할 때 신의 존재가 '개연성이 낮다'는 '확률적 논증'으로 제기된다.
    • '고차원적 반론 (High Road Reply)': 플란팅가는 설령 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확률적으로 낮춘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유신론적 믿음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대자의 주장은 유신론이 '적절한 총체적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개연성이 낮다는 것인데, 여기서 플란팅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신에 대한 믿음 자체가 그 총체적 증거의 일부가 될 수 없는가?"
    • 칼빈의 신적 감각(Sensus Divinitatis): 플란팅가는 존 칼빈의 주장을 예로 든다. 칼빈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 안에 본성적으로 그분을 믿으려는 경향성, 즉 '신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두셨다. 따라서 별이 빛나는 하늘이나 꽃의 아름다움을 보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는 것은, 나무를 보고 나무가 있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합리적이고 정당하다. 이 경우 신에 대한 믿음은 다른 명제로부터 추론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연스러운 인식 기능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철학자는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대상으로 삼을 필요 없이, 인식론적 논의의 정당한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2.3. 신앙과 인격: 행위자 인과론과 인간 이해

    • 배경: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인간학에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대립은 핵심적인 쟁점이다. 결정론은 모든 인간 행위가 통제 불가능한 초기 조건과 인과 법칙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 기독교적 관점: 기독교 사상가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믿음 때문에 결정론을 거부할 강력한 이유를 가진다. 만약 우리의 모든 행동이 결정되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 행위자 인과론(Agent Causation): 현대 철학은 '사건 인과론(event causation)'을 선호하며, 인격과 같은 실체가 직접 사건의 원인이 되는 '행위자 인과론'을 의심한다. 사건 인과론에 따르면, 어떤 행위가 선행 사건에 의해 야기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단지 '우연'일 뿐이다.
    • 플란팅가의 반론: 이 관점은 기독교적 시각에서 매우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은 자유로운 행위를 하시지만, 그분의 행위는 통제 불가능한 선행 조건이나 인과 법칙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우연'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최고의 행위자 원인(agent cause)이시다. 따라서 기독교 철학자는 세속 철학계의 사건 인과론에 대한 편향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이라는 최고의 인격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위자 인과론을 옹호할 강력한 근거를 가진다.


    3. 광범위한 적용 및 최종 촉구

    플란팅가는 이러한 접근법이 철학의 여러 다른 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야
    기독교적 접근 방식
    윤리학
    옳고 그름, 선과 악, 의무와 허용 같은 개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지와 창조 활동에 관련되는가를 핵심 질문으로 삼는다.
    인식론
    우리가 지적 의무를 다할 때 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설계하셨기 때문이다.
    창조적 반실재론
    인간의 사유와 언어가 세계의 근본 구조를 만든다는 주장은 신의 절대적 창조주 되심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허세'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수학 철학
    집합(set)의 존재를 칸토어가 말한 '함께 생각하기'라는 지적 활동의 결과로 본다면, 무한한 집합들의 존재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함께 생각하기'를 통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결론: 기독교 철학자의 소명

    플란팅가는 기독교 철학자들이 외부 학계와 단절되어 고립된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학계의 전문적인 삶에 깊이 참여하여 배우고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근본적인 임무는 세속 학계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철학 공동체는 자신만의 의제를 추구해야 하며, 현재 유행하는 철학적 사상이나 방법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이를 모든 철학자가 받아들이는 전제로부터 먼저 증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

    플란팅가의 최종적인 조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우리는 우연히 기독교인인 철학자가 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기독교 철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전성, 독립성, 그리고 기독교적 담대함을 가지고 우리의 과업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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