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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CRC 교단 서번트 교회의 역사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회고
    책&논문 소개 2026. 1. 1. 09:25

    혼란 속에서 태어난 교회, 미국 CRC 교단 속 진보의 기치 - 처치 오브 더 서번트 이야기

    #교회#건물#철학#난민

    www.youtube.com

     
    이번 포스팅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회고록 <COS - remembered history>를 바탕으로 서번트 교회(Church of the Servant, 이하 COS)의 창립 배경, 핵심 이념, 발전 과정, 그리고 주요 사역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안타깝게도 이 문서는 한글로 번역된 것이 없고, 더 안타까운 것은 영어로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 내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와 함께 교회에 다녔을 때만 해도 "내년에는 이 책이 출판될 거다"라고 들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의 원고를 직접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에게 받았다. 그리고 언젠가 이 책이 출판되고, 또 한국어로도 번역되길 기다리며 중요한 내용만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서번트 교회는 미국 CRC 교단 내에서 진보 진영의 기치이자 예배 예전에 가장 진심인 교회로 유명하다. 내가 이 교회에 가게 된 것은, 예배 예전을 배우고 싶었고, 이민자들에게 마음이 열려 있는 교회 분위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교회에서는 백인들과 교제하기가 쉽지 않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 사용자라면 모르겠지만.)
     
    COS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사회적, 종교적 격동 속에서 변화를 갈망하던 젊은이들에 의해 탄생했다. 교회의 정체성은 ▲참여 중심의 활기찬 예배 갱신 ▲신자들의 주체적인 참여와 평신도 리더십 ▲사회 정의를 향한 헌신 ▲예배와 삶 속에 통합된 예술이라는 네 가지 핵심 기둥 위에 세워졌다.
     
    초기의 이상주의는 현실과 부딪히며 "단련되었지만 거부되지는 않았다." 목회자 청빙, 교인 수 증가 수용, 교회 건물 건축 등 초기의 선언과 다른 결정을 내렸지만, 소그룹(가정)과 교구를 통해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건물의 신학적 의미를 구현하며, 예산의 상당 부분을 선교와 구제 사역에 투입함으로써 창립 정신을 계승했다. 특히 군나르 버커츠가 설계한 교회 건물은 '빛', '하나님의 가족', '일상의 존엄성'이라는 신학적 비전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COS의 사회적 헌신은 난민 사역과 교도소 사역이라는 두 가지 주요 분야에서 구체화되었다. 1970년대 베트남 난민 후원을 시작으로 난민 태스크 포스(Refugee Task Force), 프렌드십 ESL(Friendship ESL) 프로그램, 그리고 다문화 예배 공동체인 기초 영어 예배(Basic English Service, BES)로 확장되었다. 또한, 수감자였던 트로이 린스트라의 회심과 제안을 계기로 시작된 교도소 사역은 형사사법 채플린시(Criminal Justice Chaplaincy), 그리스도 안의 수감자들(Prisoners in Christ), 교도소 내 교회인 셀러브레이션 펠로우십(Celebration Fellowship) 등으로 발전하며 교회의 핵심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COS는 창립 비전을 현실 속에서 역동적으로 실천하며 성장해 온 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한다.
     
    *참고로 BES를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을 격리한다는 비판이 있어서 이름을 변경하게 되지만, 이 회고록에는 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변경되기 전에 쓴 원고라 그런 듯하다. 아마 추후 출판될 대에는 이 이름이 변경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 창립 배경: 1960-70년대의 사회적 격동

    서번트 교회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와 70년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격동의 시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 시기는 주요 인물들의 암살(존 F. 케네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로버트 케네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반전 시위, 흑인 민권 운동, 그리고 2차 페미니즘 운동의 확산으로 점철되었다. 기존의 모든 권위와 제도가 도전을 받았으며 사회 구조 전반에 분노와 개혁의 요구가 들끓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은 기독교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 CRC)를 포함한 미국 전역의 교회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여성 안수, 베트남 전쟁, 민권 운동에 대한 입장 차이로 교인들은 분열되었다. 창립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당시 시무하던 라 그레이브 애비뉴 CRC(La Grave Avenue CRC)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공개 토론 제안이 "논쟁을 격화시키고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이는 기존 교회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이와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는 '예배 갱신 운동'이라는 조용한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주류 교단들은 1960년대에 예배 개혁 위원회를 임명했으며, 이들은 공통적으로 서기 200년경 로마 교회의 예배 구조에 주목했다. COS는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 격동의 한가운데서 탄생했다. 창립 멤버들은 대부분 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던 20-30대 젊은이들로, 자신들이 속한 교회에 ▲더 참여적인 예배 ▲더 깊은 교제 ▲사회 정의를 위한 헌신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발언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존 교회들은 이러한 요구를 개혁의 요청이 아닌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저항했다.


    2. 교회의 탄생: '사도행전 펠로우십'에서 서번트 교회로

    변화를 갈망하던 그랜드래피즈 지역의 사람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서로를 발견하고 가정에 모여 성경 공부, 예배, 교제를 시작했다. 이 모임은 곧 '사도행전 펠로우십(Fellowship of the Act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YMCA, 백스터 커뮤니티 센터, 캘빈 칼리지 커먼스 빌딩 등에서 매주 주일 오후에 공개 예배를 드렸다.
     
    사도행전 펠로우십의 예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 높은 참여도: 참석자들이 직접 기도 제목을 나누고, 간증하며, 찬송을 요청했다.
    • 초교파적 성격: CRC, 미국 개혁교회(RCA) 교인뿐만 아니라 장로교, 메노나이트, 루터교, 가톨릭 신자들까지 참여했다. 설교자 역시 다양한 교단에서 초빙되었다.

    월터스토프는 이 펠로우십을 라 그레이브 교회 내의 대안적 예배로 도입하려 했으나, 가죽 재킷을 입은 오토바이족과 바닥에 앉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본 장로들이 "품위 부족"을 이유로 충격을 받으면서 단 한 번의 시도로 무산되었다. 결정적으로, 월터스토프가 CRC 총회 예배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시도했던 새로운 통합 예배(말씀과 성찬) 양식을 담임목사가 독단적으로 폐기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기존 교회 내에서 개혁을 이루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사도행전 펠로우십의 참여자들은 자원봉사 활동의 피로와 비공식 조직의 한계를 느끼고, 자신들이 경험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CRC 교단 내의 정식 교회로 조직화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정은 비 CRC 교인들과의 이별과 제도화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1972년 6월, 네 쌍의 부부가 주축이 되어 새로운 교회 설립을 추진했고, 같은 해 9월 21일 그랜드래피즈 동부 노회(Classis Grand Rapids East)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약 1년간의 심사와 논란 끝에 1973년 6월, 총회는 최종적으로 교회 설립을 승인했다. 교회의 이름인 '서번트 교회(Church of the Servant)'는 데이비드 티머가 제안한 것으로, 듣는 순간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전해진다.


    3. 핵심 창립 목표와 이념

    1972년 가을, COS 공동체는 교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11가지 "일반 목표"를 채택했다.

    1. 풍성한 교제: 모든 연령과 성별을 아우르는 교제를 경험한다.
    2. 분명한 증거: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포괄적인 복음을 세상에 증거한다.
    3. 기독교적 연민: 도움이 필요한 외부인들에게 연민을 보이며, 희생자를 돕는 자선과 희생을 낳는 구조적 문제 해결을 병행한다.
    4. 활기찬 예배: 기독교 예배의 역사와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쁨과 활력이 넘치는 예배를 드린다.
    5. 적극적인 참여: 가능한 한 많은 교인들이 교회의 삶과 사역에 참여하여 각자의 은사를 발휘한다.
    6. 여성의 역할: 여성이 교회의 운영에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7. 어린이의 참여: 어린이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8. 현대적 조직: 교회의 조직과 운영이 현대적 필요와 감각에 부합하며, 의사 결정은 개방적으로 이루어진다.
    9. 직분의 재고: 성경과 CRC 교회 질서에 따라 목사, 장로, 집사의 직무를 재고한다.
    10. 건물에 대한 관점: 예배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건물에 과도한 시간, 에너지, 재정을 쏟지 않는다.
    11. 개혁주의 정체성과 에큐메니컬 개방성: 개혁주의 전통의 정체성을 심화시키면서 다른 전통의 기독교인들과의 교류에 열려 있는다.

    월터스토프는 이 목표들에서 "교회의 예배와 삶에서 예술에 대한 깊은 헌신"이 언급되지 않은 점을 놀랍고 설명할 수 없는 특징으로 회고했다. 실제로 창립 초기부터 시각 예술, 시, 음악, 무용은 COS 예배의 중요한 일부였다.


    4. 이상주의의 단련: 초기 발전과 변화

    COS의 초기 역사는 젊은 이상주의가 현실과 만나 "거부되지는 않았지만 단련되는(chastened but not rejected)" 과정이었다.

    • 목회자 청빙: 처음에는 평신도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이상으로 전임 목사를 두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매주 다른 설교자로 인한 연속성 부족과 평신도 목양의 한계를 느끼고, 논란 끝에 1974년 첫 담임목사로 존 브리엔드를 청빙했다.
    • 성장의 수용: 창립자들은 모든 교인이 서로를 아는 작은 공동체를 지향하며, 교회가 너무 커지면 분립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교인 수가 빠르게 증가하자 현실적인 분립 방안을 찾지 못했고, 성장을 받아들였다. 대신 소그룹인 '가정(household)'과 지역 기반의 '교구(parish)' 제도를 도입하여 대규모 공동체 안에서도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 건물 건축: "절대 건물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초기 선언과 달리, 임대 생활의 어려움이 커지자 결국 1990년대 초 자체 건물을 건축하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창립 원칙을 저버린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필요에 따른 결정이었다.
    • 평신도 리더십의 유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창립 이념은 살아남았다. 담임목사는 교회를 '운영'하지 않으며, 교회의 최고 의결기구인 당회(Council)의 의장을 맡지 않는다. 예배는 목사가 아닌 예배위원회가 책임지며, 목사는 위원회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이처럼 COS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창립 비전을 유연하게 적용하며 발전해 나갔다.


    5. 예배와 예술: 신학의 실천

    COS의 정체성은 예배와 예술에 대한 독특한 접근 방식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예배 갱신

    COS 예배의 핵심은 '회중의 적극적인 참여'이다.

    • 매주 성찬: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드물게, 말씀과 성찬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판단에 따라 매주 성찬을 거행한다.
    • 몸의 참여: 헌금 시간에 회중은 자리에 앉아 헌금 바구니를 돌리는 대신, 직접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헌물을 '드린다(offering)'. 성찬 역시 앞으로 나와 원을 이룬 후 서로에게 떡과 잔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예배 행위의 신학적 의미를 몸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이다.
    • 평신도 위원회 주도: 예배 순서는 교인들로 구성된 예배위원회가 교회력 절기에 맞춰 초안을 작성하고, 회중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예술의 통합

    예술은 COS 예배의 장식이 아니라 본질적인 요소이다.

    • 음악: 전통적인 오르간 대신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연주팀이 회중 찬양을 돕는다. 이는 더 많은 교인들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예배에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교인들이 직접 찬송가를 작곡하기도 한다.
    • 시각 예술: 세례반, 성찬기, 배너, 장례 예복(casket pall) 등 예배에 사용되는 모든 예술품은 교인 예술가들이 직접 제작했다. 상업적인 교회용품점에서는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았다. 이는 '예배를 위한 예술(liturgical art)'이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예술 작품은 단순히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 행위 안에서 기능하도록 만들어졌다.

    6. 신념의 건축: '우아한 삼베 교회'

    1994년에 헌당된 COS 건물은 교회의 신학과 예배 철학을 구현한 건축물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군나르 버커츠(Gunnar Birkerts)에게 주어진 건축 프로그램에는 기능적 요구사항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적인 '표현적' 요구사항이 포함되었다.

    1. 빛: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빛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는 말씀에 근거한 요구였다.
    2. 하나님의 가족: 예배는 소수의 성직자가 집례하는 공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함께 모여 드리는 행위라는 신념을 표현해야 했다. 이를 위해 ▲회중석은 강단을 중심으로 반원 형태로 배치하고 ▲공간은 수평적(가족의 모임)이면서 동시에 수직적(하나님을 향한 예배)인 느낌을 주도록 설계하며 ▲예배 인도자를 위한 단상은 최소한으로 높여 회중과의 분리를 최소화할 것을 요청했다.
    3. 행렬의 특성(Processional Quality): 예배는 모였다 흩어지는 리듬의 일부이므로, 건물의 구조가 외부에서 내부로, 내부에서 외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행렬의 느낌을 갖도록 설계해야 한다.

    버커츠는 이 요구를 뛰어나게 해석하여 "우아한 삼베 교회(an elegant burlap church)"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노출된 철골, 콘크리트 블록, 합판 등 평범하고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여 일상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건축을 의미한다. 건물의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십자가를 동시에 상징하는 강철 기둥 '나무'가 서 있으며, 반투명한 천장과 창문을 통해 공간은 빛으로 가득 찬다. 이 건물은 COS 공동체가 추구하는 신앙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증언한다.


    7. 핵심 사역 I: 난민과 새로운 미국인을 위한 사역

    창립 초기부터 사회 정의에 대한 헌신을 목표로 삼았던 COS는 난민과 이민자들을 위한 사역에서 그 비전을 구체화했다.

    난민 태스크 포스(Refugee Task Force)

    • 기원: 1975년, 베트남 전쟁 직후 베트남 난민 가정을 후원하면서 시작되었다.
    • 발전: 1980년대에는 중앙아메리카 망명 신청자들을 돕는 '오버-그라운드 레일로드(Over-Ground Railroad)' 활동에 참여했으며, 1987년 이러한 활동들을 통합하기 위해 '난민 태스크 포스(RTF)'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 현재: RTF는 보스니아, 이란, 라이베리아, 수단, 미얀마, 네팔, 콩고 등 전 세계에서 온 난민들의 정착을 돕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400가구, 연평균 20가구를 후원했다.

     

    프렌드십 ESL(Friendship ESL)

    교회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많은 난민이 거주하는 것을 알게 된 후, 1996년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ESL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여러 기관을 거쳐 2006년부터 COS가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프렌드십 ESL'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약 30개국 출신의 학생들에게 언어 교육과 시민권 취득 교육을 제공한다. 모든 프로그램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기초 영어 예배(Basic English Service - BES)

    ESL 학생들의 예배와 교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2009년 4월, 쉬운 영어로 진행되는 '기초 영어 예배(BES)'를 시작했다.

    • 특징: COS 본 예배와 동일한 예배 구조를 따르지만,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시각 자료를 활용한다. 참석자들은 자신의 모국어로 조용히 기도할 수 있으며, 전 세계의 다양한 예배 음악을 함께 부른다.
    • 공동체: 예배 후에는 본 예배 참석자들과 함께 교제하며, 정기적으로 연합 예배와 식사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임을 확인한다. 현재 10여 개국 이상에서 온 100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세계 교회의 축소판과 같은 활기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8. 핵심 사역 II: 교도소 및 형사사법 사역

    난민 사역과 더불어 교도소 사역은 COS의 DNA에 깊이 새겨진 핵심 사역이다. 이 사역의 중심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회심한 트로이 린스트라(Troy Rienstra)가 있다.
     

    형사사법 채플린시(Criminal Justice Chaplaincy - CJC)

    1980년, COS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출소자들의 사회 재적응을 돕기 위해 노회에 '교도소 사후관리' 사역을 제안하여 시작되었다. 현재는 '70 x 7 Life Recovery'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복귀 시민들을 위한 정의, 자비, 치유를 추구한다.
     

    그리스도 안의 수감자들(Prisoners in Christ)

    2004년, 트로이 린스트라가 COS에 제안하여 결성된 팀이다. 수감자들에게 편지 쓰기, 방문, 교정 및 양형 제도 개혁 운동, 출소자 지원 등 COS의 모든 교도소 관련 사역을 조정하는 중심 역할을 한다.
     

    셀러브레이션 펠로우십(Celebration Fellowship)

    2008년, 트로이와 동료 수감자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교도소 내 예배 공동체이다.

    • 개념: 수감자('내부 교인')와 외부 교회 교인('외부 교인')이 함께 예배드리는 하나의 교회이다.
    • 성장: 아이오니아에 위치한 벨라미 크릭 교정시설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핸들런 교도소와 저경비 시설인 '더 돔스'까지 총 3개의 '캠퍼스'를 가진 독립된 CRC 교회로 성장했다.
    • 목표: 수감자들이 교도소라는 환경 안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고 양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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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변화 북클럽(Life Change Book Club)

    트로이가 핸들런 교도소에 있을 때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수감자들이 책과 영화를 통해 영적, 정서적, 지성적 변화를 추구하도록 돕는다. COS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교도소를 방문하여 토론을 이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후 캘빈 신학교와 캘빈 대학교가 교도소 내에서 5년제 학위 과정을 제공하는 '캘빈 교도소 이니셔티브(Calvin Prison Initiative)'의 모태가 되었다.


    결론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회고록을 마치며 COS가 창립자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번성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성령께서 이곳과 이 사람들 가운데 놀라움으로 가득 찬 풍성한 역사를 이루셨다"고 고백한다. COS의 역사는 격동의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여 탄생한 교회가 어떻게 창립의 이상을 현실 속에서 단련시키고, 예배와 예술, 건축을 통해 신학적 비전을 구체화하며, 공동체의 가장자리로 시선을 돌려 난민과 수감자들을 섬기는 핵심 사역으로 발전시켰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언이다. 이는 단순히 한 교회의 역사를 넘어, 신앙 공동체가 시대와 소통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실천해 나가는 생생한 모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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