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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설교의 재발견책&논문 소개 2026. 1. 4. 08:12
칼빈 설교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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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저명한 칼빈 학자 중 한 사람인 Elsie McKee의 Calvin's Sermons: Treasure and Surprise를 가지고 포스팅하려고 한다. Elsie McKee는 존 칼빈의 설교가 지닌 역사적 가치, 보존 과정, 출판 동기, 그리고 학문적 연구에서 간과된 중요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칼빈의 설교는 당대에 매우 귀중한 보물로 여겨졌으나, 이후 수 세기 동안 잊혔다가 최근에 들어 그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특한 보존 방식: 칼빈의 설교는 출판을 위해 다듬어진 텍스트가 아니라, 그가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은 속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이는 프랑스인 망명자이자 속기사였던 드니 라그니에(Denis Raguenier)와 그를 고용한 프랑스 자선기금(Bourse française)의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
- 칼빈의 출판 반대: 칼빈 자신은 자신의 즉흥 설교가 세련되지 않았고, 제네바 교인이라는 특정 청중에게 맞춰져 있다는 이유로 출판을 꺼렸다. 그가 유일하게 직접 출판에 관여한 것은 '니고데모주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재집필한 《우리 시대를 위한 네 편의 매우 유용한 설교》뿐이었다.
- 동시대인들의 출판 동기: 칼빈의 동료와 지지자들은 박해받는 프랑스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제공하고, 신임 목회자들에게 설교의 모범을 보이며, 칼빈의 가르침을 변호하기 위해 그의 설교를 출판했다. 장 지라르(Jean Girard), 콘라드 바디우스(Conrad Badius)와 같은 출판업자들은 물론, 마리 당티에르(Marie Dentière)와 앤 본 로크(Anne Vaughn Lock) 같은 여성들도 출판과 번역에 참여했다.
- 놀라운 누락: 기록으로 남아있는 칼빈의 설교 목록에는 로마서, 요한복음과 같이 그의 신학에서 핵심적인 성경에 대한 설교가 빠져있다. 이는 칼빈이 이 책들을 설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라그니에가 기록을 시작하기 전인 그의 초기 사역(1530년대 후반~1540년대 초반)에 이미 설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칼빈 설교에 대한 오랜 학문적 무관심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칼빈의 설교는 종교개혁 당시 평신도 교육, 목회, 신학의 실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산이며, 그 보존과 전파 과정은 칼빈 주변 인물들의 신앙적 열망과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다.
I. 서론: 칼빈 설교의 역사적 가치
장 칼빈의 설교는 그의 시대에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이후 수 세기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가 최근 몇 세대에 걸쳐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글은 칼빈의 설교가 어떻게 보존되었고, 시대를 거치며 어떤 운명을 겪었는지 그 역사를 추적한다. 또한, 칼빈의 동시대인들이 그의 설교를 어떻게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칼빈 자신이 제네바 시민들에게 매일 전했던 말씀의 본문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의 기록된 설교 목록에서 나타나는 놀라운 누락 사항은 무엇인지 탐구한다.
II. 칼빈 설교의 보존: 독특하고 방대한 기록
칼빈의 개혁가로서의 위상을 고려할 때 그의 설교가 많이 보존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놀랍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설교가 그가 말하는 그대로 거의 축어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현대 기술이 녹음을 용이하게 하기 전, 종교개혁 시대에는 설교가 선포된 그대로 보존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 기록 방식의 독창성: 당시의 관행은 출판을 위해 설교를 다듬고, 수정하며, 심지어 재작성하는 것이었다. 마틴 루터의 설교도 동료들이 정리하거나 그가 직접 출판용으로 저술하는 방식으로 보존되었다. 반면 칼빈의 설교는 전문 속기사에 의해 현장에서 직접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 드니 라그니에의 역할: 1549년, 프랑스 출신 종교 난민이자 전문 속기사였던 드니 라그니에가 칼빈의 설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 망명자들을 돕기 위해 부유한 난민들이 조직한 구호 재단인 '프랑스 자선기금(Bourse française)'에 고용되었다.
- 프랑스 자선기금의 구상: 자선기금은 라그니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칼뱅 설교라는 귀중한 자산을 확보하고자 했다. 출판된 설교의 판매 수익은 가난한 망명자들을 돕는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평신도들이 칼뱅의 즉흥 설교를 성경만큼이나 가치 있는 '보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기록된 설교의 범위
칼빈은 성경 각 권을 구절별로 연속해서 설교하는 '렉티오 콘티누아(lectio continua)' 방식을 따랐다. 보통 주일에는 신약, 주중에는 구약을 설교했다. 라그니에가 1549년 9월 29일 기록을 시작했을 때, 칼빈은 이미 사도행전과 예레미야서 설교를 진행 중이었다. 이후 기록된 설교 시리즈는 다음과 같다.
성경 구분 기록된 성경 설교 횟수 (예시) 신약 사도행전, 데살로니가서, 목회서신(디모데서, 디도서), 고린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조화복음서(마태복음 순서) • 고린도전서: 110회
• 고린도후서: 66회
• 에베소서: 48회
• 목회서신: 103회구약 예레미야, 애가, 소선지서(미가, 스가랴, 호세아 등), 다니엘, 에스겔, 욥기, 신명기, 이사야, 창세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 • 신명기: 200회
• 이사야: 343회
• 욥기: 159회
• 에스겔: 174회시편 시편 119편 등 다수 시편은 운율에 맞춰 노래로 만들어질 때마다 순서와 무관하게 설교됨
라그니에는 1560년 말 혹은 1561년 초에 사망했으며, 그가 사망할 당시 칼빈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부분을 설교하고 있었다(65편 만에 기록 중단). 그의 사후 다른 서기들이 사무엘서와 열왕기상 등의 설교를 일부 기록했다.III. 망각과 재발견: 설교 원고의 운명
라그니에와 자선기금에 의해 소중히 보존된 설교 원고들은 당대의 높은 평가와는 달리, 이후 수 세기 동안 잊히거나 심지어 파기되는 비운을 겪었다.
- 1805년의 대량 폐기: 제네바 대학 도서관은 공간 부족을 이유로 소장 중이던 44권의 방대한 설교 원고집 중 43권을 무게를 달아 폐지로 팔아버렸다. 이 원고들은 칼빈이 직접 쓴 것이 아니며 읽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여겨졌다.
- 19세기 복음주의 부흥과 재발견: 1823년,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영향을 받은 신학생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포장하는 데 칼빈의 설교 원고가 사용되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들은 헌 옷 가게에서 8권의 원고를 찾아내 도서관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 사건은 1826년 대중의 공분을 일으켰고, 이후 몇 권의 원고가 추가로 회수되었다. 하지만 라그니에가 남긴 2,023편의 미출판 설교 대부분은 영원히 소실되었다.
- 현대의 학문적 노력: 20세기 칼빈 르네상스는 그의 모든 저작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36년부터 세계개혁교회연맹(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es)의 후원으로 남은 설교 원고를 비평판으로 출판하는 《칼빈 유고 보충집(Supplementa Calviniana)》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원문의 양이 방대하고 판독이 어려워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IV. 칼빈의 입장과 동시대인들의 출판 동기
칼빈의 꺼림칙함
칼빈은 자신의 즉흥 설교가 출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 문체적 불완전성: 설교가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상태라는 점을 꺼렸다.
- 청중의 특수성: 설교는 제네바의 평범한 교인들의 이해 수준에 맞춰 예시와 적용을 확장한 것이므로, 전 세계를 가르치려는 듯 널리 퍼지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유일한 예외: 《우리 시대를 위한 네 편의 매우 유용한 설교》
1552년, 칼빈은 예외적으로 다섯 편의 설교를 직접 재집필하여 출판했다. 그는 서문에서 로마 가톨릭 치하에서 안전을 위해 신앙을 숨기는 '니고데모주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출판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나는 이전에 두 편의 충분히 광범위한 논고를 통해... 그곳에서 횡행하는 남용, 미신, 우상숭배에 동의하거나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행위도 허용되지 않음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사람들이 마치 내가 전혀 말한 적 없는 것처럼 새로이 내게 조언을 구합니다... 따라서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내가 설교했던 한 편의 설교를 수정하고 정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칼빈은 논문 형식의 글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교라는 형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인들의 출판 동기와 그 이유
칼빈의 마지못한 동의 하에, 그의 동료와 지지자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설교 출판을 주도했다.
1. 장 지라르(Jean Girard): 초기 출판의 개척자
지라르는 칼빈의 '다듬어지지 않은' 설교를 처음으로 출판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1546년 두 편의 시편 설교를 출판하며 서문에서 칼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판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자는 자신의 설교가 출판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에, 우리가 왜 이 두 설교를 출판했는지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그 가르침의 진실성이 모든 이에게 유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이것이 한 번 선포된 설교이지, 세상에 출판되기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님을 고려하여... 표현이 정밀하지 못하고 단어가 잘 다듬어지지 않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설교의 "가르침의 진실성"과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도우신 이야기"가 주는 위로를 출판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2. 콘라드 바디우스(Conrad Badius): 목회적·변증적 목적
1550년대 후반부터 바디우스는 설교 출판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동기는 복합적이었다.
- 박해받는 신자들을 위한 영적 양식: 그는 프랑스 전역에 흩어져 복음 설교를 들을 수 없는 신자들에게 칼빈의 설교가 "말 없는 교사(mute teachers)"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다.
"교황이 여전히 지배하는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가련한 신자들이 매일 이 귀한 선물[설교]을 누릴 수는 없기에, 저는 인쇄술이라는 유익한 기술을 사용하여 우리가 어떤 목초로 양육되는지 그들에게 보여준다면 큰 위로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목회자 훈련 모델: 새로 사역을 시작하는 목회자들이 칼빈의 설교를 통해 "순수하고 단순하며, 인간적 웅변의 과시와는 거리가 먼" 가르침의 방식을 따르도록 돕고자 했다.
- 칼빈에 대한 오해 불식: 그는 칼빈이 강단에서 교황을 비방하거나 사회적 선동만 일삼는다는 비난에 맞서, 설교 자체가 그의 가르침이 성경 강해에 충실함을 증명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3. 여성 편집자/번역가들: 놀라운 참여
- 마리 당티에르(Marie Dentière): 전직 수녀였던 그녀는 1561년, 여성이 옷차림에서 단정함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디모데전서 2:9-11 설교 한 편을 출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젠더 이슈가 예상보다 복잡했음을 보여준다.
- 앤 본 로크(Anne Vaughn Lock): 영국인 망명자였던 그녀는 1560년, 히스기야 왕의 질병과 치유에 관한 이사야 38장 설교 세 편을 영어로 번역했다. 그녀는 서문에서 하나님을 "하늘의 의사", 성경을 "처방전", 그리고 칼빈을 그 처방에 따라 약을 조제하는 "가장 뛰어난 약제사"로 묘사하는 독창적인 의료적 은유를 사용했다.
"이 처방전은 하늘의 의사이신 하나님께서 가르치셨고, 그의 가장 뛰어난 약제사인 존 칼뱅 선생이 조제했으며, 당신의 가장 큰 은혜를 입은 비천한 제가 영국 상자에 담아 당신께 바칩니다."
V. 놀라운 누락: 기록되지 않은 핵심 설교들
칼빈의 설교 목록을 면밀히 분석하면 가장 놀라운 사실 중 하나가 드러난다. 바로 그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책들인 로마서와 요한복음에 대한 설교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빌립보서, 골로새서, 베드로 서신, 요한 서신에 대한 설교 기록도 없다.
- 학문적 맹점: 이러한 부재는 칼빈의 설교가 오랫동안 학문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칼빈 연구자들조차 이 명백한 누락에 대해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 가능성 있는 설명: 칼빈이 이 중요한 책들을 설교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그가 이 책들을 그의 사역 초기에 설교했다는 것이다. 즉, 드니 라그니에가 체계적으로 기록을 시작한 1549년 이전에, 특히 그의 첫 번째 제네바 사역 기간(1536-1538)이나 스트라스부르크 시절(1538-1541), 혹은 제네바로 돌아온 직후에 이미 로마서와 요한복음 설교를 마쳤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책들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그것들이 칼빈의 초기 사역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라 할 수 있다.
VI. 결론
존 칼빈의 설교는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귀중한 영적 보물이었으며,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그의 설교는 종교개혁의 신학이 어떻게 강단을 통해 평신도들의 삶 속에 전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속기사에 의해 보존된 방대한 설교 원고, 그것을 출판하려 했던 동료들의 열정,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초기 설교의 미스터리는 칼뱅의 목회 사역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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