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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본주의는 없다?
    신앙/말씀 믿음 삶 2024. 3. 15. 07:39

    Intro

    얼마 전에 잘잘법으로 유명한 교수님이 신본주의는 없다는 주장을 했다. 유명한 교수라는 분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한 것이었다. 물론 그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이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주장 자체는 사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었다.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다. 사회 구성원이 어떤 단어에 어떤 의미를 담는다고 약속으로 정하게 되면, 그 단어의 뜻은 약속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교수라는 분이 자기 혼자 생각으로 사회의 약속을 틀렸다고 말하는 초유의 주장을 한 것이다. "신본주의라는 건 없는데 왜 쓰느냐"면서 말이다. 마치 신본주의라는 용어를 쓰면 무식한 것처럼 묘사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이 분의 주장은, 인본주의와 신본주의가 서로 대립된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한다. 이건 마치 "자유와 평등은 대립되는 게 아니야"라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대립되지 않아"라는 주장으로 확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평등과 자유는 대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평등이라는 이념과 자유라는 이념이 경쟁하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과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이 싸웠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절대적인 진리의 눈으로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각 단어는 시대의 노예이고, 각 상황에 따른 용례가 존재한다. 시대에 따라 사전적 정의도 바뀔 수 있다는 거다.

     

    좀더 명료하게 말하자면, 저 교수님은 단어의 의미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하고 인본주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단어의 의미는 바뀌었고, 그에 맞추어 새로운 단어가 사용될 필요가 생겼다. 언어가 시간에 속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는 저런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핀트가 어긋난 주장

    아래의 영상에서 이분의 설명을 들으며 들었던 생각이 있다. 먼저, 이분에 대한 공격이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에 대한 이분의 반론이 아래의 영상인데, 그 영상 또한 전혀 핀트가 어긋난 소리를 하고 있다. 느닷없이 "신본주의란 용어는 거짓이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신본주의란 용어를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이해가 가지만,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대립은 거짓이다" 같은 소리를 하는 건 솔직히 말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소리였다. 이건 마치 김밥 먹고 체했다는 이유로 "이 세상에 밥이라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아" 같은 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급발진이다.

     

    뭐, 저런 소리를 주장하니 사람들이 "자유주의 성향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에 대한 "내 생각"은 존재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그 이상은 이야기하지 말아라..라는 주장도 재미있다. 그것은 마치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대립은 거짓이다"라는 주장 또한 "그건 교수님 생각이지요"라고 반박할 수 있다. 즉,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대립은 거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관점에서와 같이) 진리를 말할 수 없고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저분처럼 어떠한 자명한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없이 "A는 B이다"라는 문장이 가능하다면, 인문학적 해석을 통해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는 이야기 또한 할 수 있다.

     

    즉, 교수님의 실수는, 어떠한 특수한 상황에 대한 비판을 일반적인 비판으로 뒤바꾸었다는 것에 있다. 즉, "니가 어떻게 이것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아느냐"라는 말을 "니가 어떻게 하나님의 관점을 알 수 있느냐"로 일반화한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관점이 성경에 적혀져 있고, 성경은 이해되도록 인간에게 주어졌는데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걸까?

     

    물론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성경의 일부 구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는 이유로, 모든 성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뒤바꾸는 건 잘못된 일반화이다.

     

     

     

     

     


     

    인본주의에 대하여

    그렇다면 인본주의는 정말 신본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닐까?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신본주의와 반대가 되는 말이 무엇인가부터 정의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신본주의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알아야 이것이 보다 이해하기가 쉽다.

     

    일단, 인본주의 운동은 비 종교주의 또는 세속주의 관점으로 이루어진다. 계시, 곧 성경의 계시보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보다 중요하게 보기 시작한 것이 인본주의 운동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위의 교수님 말씀처럼 성경을 해석하는데에도 이성이 사용되니 이것이 신본주의의 반대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교수님의 주장은 종교적 대화를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합리주의와 합리성에 대한 구분이다. 교수님이 "이성이 사용되니"라고 했을 때는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계시보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중요하게 본다는 것은 합리주의를 말한다.  즉, 교수님은 여기서 합리주의와 합리성을 혼동한 것이다.

     

     

     

    합리주의와 합리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

    1. 지성이 있는 신앙으로서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합리성과 합리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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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주의(rationalism)는 성경의 기적을 배제하고, 예수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말한다. 합리성은 성경의 기록과 고대 비 그리스도인의 증거들을 보았더니, 예수의 부활이 있음직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본주의 운동이 세속주의가 되었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기적을 부인하고 성경의 계시를 부정하는 쪽으로 간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인본주의는 합리주의 색채를 가진 철학적 사조라고 볼 수가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Humanism

     

    정리하자면, 다시 말해, 합리주의 색채를 가진 인본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온 것이 신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인본주의의 성격이 합리주의적인 것인지 합리적인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렇게 신본주의에 대한 허수아비 논법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신본주의에 대하여

    그렇다면 신본주의란 용어는 없는 것일까? 신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데, 한국에 있는 무식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용어인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신본주의라는 용어가 버젓이 존재한다. 위의 영상에서 교수님은 인본주의 humanism을 인간 중심주의 anthropocentrism로 설명하면서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신본주의 theocentrism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뭐, humanism을 인간 중심주의로 해석할 수는 있다. 실제로 humanism이 그런 것이기는 하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 본다. 문제는,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반대급부인 신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버젓이 존재한다.

     


    정리하며

    루터가 어거스틴 수도사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가? 루터 당시에는 어거스틴 수도회는 도미니코 수도회나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같은 메이저 수도회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가톨릭 내에서는 그 위상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물어보니, 너무 인본주의적 humanistic이라고 했다. 너무 인본주의적이라 루터와 같은 사람들이 대거 신교로 나갔다는 것이다.

     

    뭐.. 루터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루터가 인본주의적이라는 가톨릭의 생각도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로는 허수아비 논법에 가깝다고 보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가톨릭 내에 존재하는 "인본주의"에 대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신앙보다 인간 이성에 근거한다는 그 생각 말이다.

     

    물론 위의 교수님처럼 "인간 이성과 신앙을 양립 가능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 이성을 배제하지 않는 가톨릭이 인본주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는지만 들어도 우리는 저 주장이 허수아비를 친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구도 신앙과 이성(합리성)이 양립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신앙과 합리주의(인본주의)가 양립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대립시킬 때에는 이때에만 가능하다.

     

    (물론 기독교적 인문주의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본주의를 어떻게든 재해석할 수도 있고, 인본주의라는 거대한 용어 안에 다양한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신본주의라고 하면 무신론적 유물론적 합리주의적 인본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https://namu.wiki/w/%EC%9D%B8%EB%B3%B8%EC%A3%BC%EC%9D%98

     

    이번에 케임브릿지 학과장 출신 교수님께 성공회의 역사와 신학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그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 성공회에는 현재 에라스무스 계통과 칼빈주의 계통이 존재하는데, 에라스무스 계통은 인본주의 humanism 입장이고 칼빈주의는 반 인본주의 anti-humanism 입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anti-humanism은 biblicism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래서 그게 무슨 차이인가 들어보았더니, 인본주의자들은 에라스무스 계통은 LGBTQ를 인정하고, biblicism을 주장하는 칼빈주의자들은 LGBTQ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이었다. 뭐.. 가톨릭에 남은 에라스무스와 가톨릭과 분리한 개혁주의를 생각해보면.. 개신교는 너무 인본주의적이라는 가톨릭의 생각은 허수아비를 때리는 게 아닐까 다시 생각하면서.. 인본주의와 성경주의(우리로 따지면 신본주의)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는 범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s://www.dictionary.com/browse/humanism

     

     

    물론 인본주의의 원래 의미 또는 사전적 의미(첫 번째 의미)는 교수님의 말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는 항상 바뀐다. 시대에 따라, 그리고 용례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다면 허수아비를 때리게 될 뿐이다. 예를 들어, 수십 년 전만 해도 페미니즘은 Lady first 라는 구호로 대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한다면 여성 차별주의자로 불릴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페미니즘은 "여자에게 친절한 사람"을 뜻했고, 지금은 이것을 여자를 약자로 보는 차별주의자로 보기 때문이다. 즉, 교수님과 같이 사전적 의미 중 하나만 사용하면서 그게 유일한 의미라고 주장하는 건 솔직히 말해서 그 단어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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