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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사 안수식, 사제 서임 예식, 성직, 기독교 직분의 그 시작과 변화
    책&논문 소개 2025. 12. 14. 00:24

    기독교 직분의 진화 - 초대 교회의 직분이 중세에 변질되었다가 현대 회복되기까지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https://christianprince.tistory.com/169#사제#목사#집사#초대교회#부제#평신도#성직자#안수#서임

    www.youtube.com

    이번 포스팅은 폴 브래드쇼(Paul F. Bradshaw)의 저서 『Rites of Ordination: Their History and Theology』를 바탕으로 기독교 서임(Ordination) 또는 목사 안수식의 역사적 변천과 신학적 이해의 발전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핵심적인 통찰은 다음과 같다.

    1. 초기 리더십의 다양성에서 3직제로의 발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획일적인 성직 제도가 없었으며, 가정교회 후원자나 예언자 같은 카리스마적 인물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행정과 구제 업무를 중심으로 감독(episkopos), 사제/장로(presbyteros), 집사/부제(diakonos)의 3직분 체계가 점차 확립되었다.
     
    2. 성직의 사제직화(Sacerdotalization)와 그 의미 변화: 3세기부터 서임된 성직자를 '사제(sacerdos)'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감독에게 적용되었으나, 점차 성찬례를 일상적으로 집례하는 사제(presbyter)에게도 이 개념이 확장되었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사제직의 본질이 성찬례를 집전할 권능(potestas)에 있다는 이해가 지배적이 되었다.
     
    3. 서임 예식의 변천: 초기 교회의 서임은 공동체의 선출과 기도, 그리고 (때로는) 안수라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였다. 그러나 중세 서방 교회에서는 직무의 상징물(성반, 성작 등)을 수여하는 '직무 수여 예식(traditio instrumentorum)'과 기름을 바르는 '도유(anointing)'가 예식의 핵심으로 부상하며 매우 복잡한 형태로 발전했다.
     
    4. 종교개혁의 도전과 근대의 재편: 종교개혁가들은 중세적 사제직과 복잡한 예식을 비판하며, '만인사제직'의 원리 위에서 '말씀의 사역'을 중심으로 한 성경적 직분관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에 대응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는 중세적 사제직과 서임 성사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역사·전례 연구와 교회 일치 운동의 영향으로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단에서 서임의 본질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5. 현대의 수렴과 재발견: 현대의 개정된 서임 예식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공통된 구조와 신학적 이해를 향해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서임이 특정 개인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행위가 아니라, 안수를 동반한 '성령 청원 기도(epiklesis)'를 통해 전체 교회가 참여하는 성례적 행위라는 초대 교회의 이해를 재발견한 결과이다.


    I. 초기 기독교 성직의 기원과 발전

    1. 성경적 배경과 원형

    기독교의 성직은 구약의 특정 직분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지는 않았지만, 후대 기독교인들이 그 직분의 본질을 정의하기 위해 구약의 인물과 제도를 '원형(type)'으로 사용했다.
     

    • 구약의 사제직: 초기에는 족장이 제사를 주관했으나, 가나안 정착 이후 전문적인 사제 계급이 등장했다. 바빌론 유배 이후에는 대사제-사제-레위인의 3중 체계가 확립되었고, 기름부음(anointing)을 포함한 공식적인 임명 예식이 자리를 잡았다.
    • 장로(Presbyteros): 구약과 초기 유대교에서 '장로'는 특정 직책이 아니라, 나이와 지혜로 존경받는 씨족이나 부족의 지도자 그룹을 가리키는 집합적 용어였다. 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를 지칭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 신약의 직분들: '열두 사도', '일흔두 제자', '일곱 봉사자' 등은 신약 성경 안에서 직접적인 후계자를 임명하는 영속적인 직책이라기보다는, 구원사적 의미를 지닌 역사적 인물 그룹으로 묘사된다. 특히 '사도'는 바울의 서신에서 열두 제자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인물을 포함하며, 사도행전 6장의 '일곱 봉사자'는 후대에 첫 부제로 해석되었으나 본래 역할은 더 광범위했다.
    • 안수(Imposition of Hands): 신약에서 안수는 서임을 위한 보편적이거나 필수적인 행위는 아니었다. 그 의미 또한 모호하여, 은사나 권위의 '전수'라기보다는 대상자를 위해 기도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후대에 안수가 중요해진 것은 '손을 들어 올린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케이로토니아(cheirotonia)'가 선출 행위에서 서임 행위 자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한 것과 관련이 있다.
    • 신약의 사제직: 히브리서는 예수를 유일무이한 영원한 대사제로 묘사하며, 지상의 사제직과 제사를 완성하고 종결시켰다고 선언한다. 대신 베드로전서와 요한계시록 등은 모든 기독교인 공동체를 '거룩한 사제', '왕 같은 사제'로 칭한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찬양, 선행을 '영적 제사'로 드린다. 신약에서는 특정 성직자를 '사제'로 부르는 용례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2. 초대 교회 공동체의 다양한 리더십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은 획일적인 성직 구조를 갖지 않았으며,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리더십 형태가 공존했다.
     

    • 다양성과 용어의 모호성: 초기 리더십은 유대교 회당 모델보다 그레코-로만 '가정교회(house church)' 모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집주인(남성 또는 여성)이 자연스럽게 모임의 주재자가 되었다. 또한 episkopos(감독), presbyteros(장로), diakonos(집사, 부제, 봉사자) 등의 용어는 처음에는 명확히 구분된 직책이라기보다 기능적 역할을 나타내는 모호하고 유동적인 용어였다.
    • 제도화 과정: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공동체들은 주로 행정과 자선 활동을 관리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감독과 부제를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책임은 점차 설교, 교육, 전례 집례 등으로 확대되었고, 이 과정에서 예언자와 같은 기존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들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 초기 문헌에 나타난 증거:
      • 목회서신: 한 명의 감독(episkopos)과 여러 명의 집사/부제(diakonoi)가 있는 모델을 보여주며, '장로들(presbyteroi)'은 이들을 포함한 지도자 그룹 전체를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였을 가능성이 크다.
      • 디다케: 순회 예언자들의 시대에서 선출된 감독과 부제들이 리더십을 계승하는 과도기적 상황을 보여준다.
      • 이그나티우스의 편지: 저자는 감독-사제-부제로 이어지는 3직제의 위계질서를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이는 당시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라 저자가 새롭게 확립하고자 했던 모델임을 시사한다.
      • 1 클레멘스 서신: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 해임 분쟁에 개입하며, 사도적 계승(가르침의 계승)과 '온 교회의 동의'에 의한 임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3. 3-4세기 성직 제도의 확립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 시기부터 교회 내 성직 제도는 점차 명확한 구조를 갖추기 시작했다.
     

    • 성직자-평신도 구분 강화: 1 클레멘스 서신에서 이미 나타난 구분이 3세기에 이르러 더욱 뚜렷해졌다. '성직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클레루스(clerus)와 오르도(ordo)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 성직의 사제직화: 3세기부터 교회의 지도자에게 사제(그리스어 hiereus, 라틴어 sacerdos)라는 용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터툴리안은 감독을 '대사제'로 칭했고, 키프리아누스는 감독을 '사제'로 부르는 것을 일반화했다. 3직분은 구약의 대사제, 사제, 레위인에 비유되었고, 성직의 역할은 성찬례뿐만 아니라 설교와 가르침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사제직으로 이해되었다.
    • 여성 사역의 축소 및 하위 성직의 등장: 여성 예언자들의 역할이 축소되고, 여성 부제는 여성 세례 후보자를 돕는 등 특정 역할에 한정되었다. 한편 로마와 북아프리카에서는 3세기 중반까지 보조부제(subdeacon), 시종(acolyte), 구마사(exorcist), 독서자(reader), 수문(doorkeeper) 등 다양한 하위 성직(minor orders)이 등장했다.
    • 서임 절차의 정립: 공동체에 의한 선출("백성의 투표")과 기존 성직자들의 증언이 여전히 서임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감독의 서임식에 같은 관구의 다른 감독들이 참여하는 관행이 확산되었고, 이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규정으로 확립되어 감독단(episcopal college)의 연대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II. 서임 예식의 역사적 변천

    1. 고대 교회의 서임 예식

    초기 서임 예식의 구체적인 형태는 문헌 부족으로 파악하기 어렵지만, 현존하는 몇몇 고대 예식서를 통해 그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 사도 전승(Apostolic Tradition): 2-4세기 여러 지역의 관습이 혼합된 복합적인 문헌이다.
      • 감독 서임: 가장 오래된 층위에서는 사제단(presbytery)만이 안수했던 것으로 보이나, 후대 판본에서는 다른 감독들의 참여가 추가되었다. 서임 기도문은 감독을 '대사제'로 묘사하며 강한 사제직 성격을 띤다.
      • 사제 서임: 감독과 다른 사제들이 함께 안수한다. 기도문은 모세가 70인 장로를 세운 것을 원형으로 삼아, 사제직을 사제적 기능이 아닌 '공동체를 돕고 다스리는' 역할로 이해하는 원시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 사도 헌장(Apostolic Constitutions): 4세기 시리아에서 편집된 문헌으로, 사도 전승을 확장했다. 감독 서임 시 머리 위에 펼친 복음서 책을 얹는 예식을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여성 부제와 하위 성직자들의 서임식에 안수를 포함시켰다.
    • 동방 교회의 공통 구조: 다양한 동방 교회 예식들은 후대에 많은 요소가 추가되었지만, 다음과 같은 고대적 공통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1. 선출 결과 공포와 회중의 환호("Axios!", 합당하나이다!)
      2. 기도 요청(Bidding)
      3. 회중의 기도(연도 등)
      4. 안수와 함께 드리는 서임 기도
      5. 평화의 입맞춤
      6. 성찬례 거행
     

    2. 중세 서방 교회의 예식 변화

    중세 서방에서는 로마 고유의 예식과 갈리아(프랑스 지역)의 예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 하나의 통합된 형태로 발전했다.
     

    • 로마 예식: 7세기 베로나 성사집에서 확인되는 로마의 서임 기도는 구약의 제사직 이미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부제는 레위인, 사제는 아론의 아들들, 감독은 대사제 아론의 영적 후계자로 묘사되었다.
    • 갈리아 예식과 직무 수여 예식: 갈리아 지역에서는 고대 교회의 법규집(Statuta ecclesiae antiqua)의 영향을 받아, 직무를 상징하는 물건(성반, 성작 등)을 수여하는 '직무 수여 예식(traditio instrumentorum)'이 서임의 핵심적인 행위로 부상했다.
    • 통합 예식의 등장과 복잡화: 8세기 이후 로마 예식과 갈리아 예식이 통합되면서 서임 예식은 매우 복잡해졌다. 10세기 로마-게르만 주교예식서에 집대성된 이 통합 예식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추가되거나 강조되었다.
      • 도유(Anointing): 사제와 감독의 손, 감독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예식이 표준화되었다.
      • 직무 수여 예식: "…할 권한을 받으시오(Accipe potestatem…)"와 같은 명령형 문구와 함께 직무 상징물을 수여하는 것이 서임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간주되었다.
      • 두 번째 안수: 사제 서임식 말미에 죄를 사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의미로 "성령을 받으시오(Accipe Spiritum Sanctum)…"라는 말씀과 함께 두 번째 안수가 추가되었다.

     

    3. 중세 서임 신학의 발전

    중세 스콜라 신학은 서임의 본질을 '권능(power)'의 부여로 이해했으며, 이는 서임 신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서임 개념의 변화: 서임은 특정 공동체를 위한 사역의 시작이 아니라, 개인에게 성찬례를 집전하고 죄를 사하는 초자연적 권능을 부여하는 행위로 이해되었다.
    • 지워지지 않는 인호(Indelible Character): 어거스틴의 신학을 바탕으로, 서임이 영혼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적 '인호'를 새긴다는 교리가 확립되었다. 이로 인해 특정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절대 서임(absolute ordination)'도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 감독직과 사제직의 관계: 사제직의 핵심이 성찬 집전권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 권능을 공유하는 감독과 사제는 본질적으로 같은 '품(order)'에 속하며, 감독은 단지 더 높은 '위계(dignity)'나 '재치권(potestas jurisdictionis)'을 가질 뿐이라는 신학이 우세해졌다.
    • 질료와 형상 논쟁: 스콜라 신학자들은 서임 성사의 본질적 요소인 '질료(matter)'와 '형상(form)'이 무엇인지 논쟁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다수는 안수와 기도보다는, 직무 수여 예식과 그에 따르는 명령형 문구가 서임의 질료와 형상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피렌체 공의회(1439)에서도 확인되었다.

    III. 종교개혁과 근대의 서임

    1. 종교개혁의 도전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중세 교회의 서임 신학과 예식을 성경에 근거하여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 핵심 비판: 중재자로서의 사제직, 교회의 위계 구조, 지워지지 않는 인호 개념 등을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인간의 발명품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만인사제직' 원리를 강조하며, 서임된 성직자는 '말씀의 사역(Ministry of the Word)'을 위해 공동체로부터 부름받은 자라고 주장했다.
    • 루터: 서임은 성사가 아니라, 공동체의 동의를 얻어 말씀의 사역자를 세우는 교회의 예식이라고 보았다. 그의 예식은 기도, 안수, 주님의 기도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 칼빈: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4중 직제를 주장했다. 서임은 신자들의 동의와 목사들의 안수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나, 미신적 관행을 우려하여 제네바에서는 안수를 생략했다.
    • 영국 성공회: 감독-사제-부제의 3직제를 유지하면서도, 예식은 대륙의 개혁가 마르틴 부처(Martin Bucer)의 영향을 받아 단순화했다. 핵심 요소는 공적 기도(연도)와 안수, 그리고 위임 말씀이었다.

     

    2. 트리엔트 공의회와 그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로마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를 통해 성직에 대한 교리를 재확인했다.
     

    • 트리엔트 공의회(1563): 그리스도가 제정한 가시적 사제직, 7품 제도, 그리고 인호를 새기는 서임 성사를 교의로 선포했다. 그러나 서임의 구체적인 '질료와 형상'이나 감독직과 사제직의 신학적 관계와 같은 내부 논쟁은 해결하지 못했다.
    • 20세기 신학의 발전:
      • 비오 12세: 1947년 교황령 「성품성사론(Sacramentum Ordinis)」을 통해, 논란이 많았던 서임의 질료와 형상이 바로 '안수'와 서임 기도의 핵심 청원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로써 직무 수여 예식이 핵심이라는 중세적 견해는 마침내 극복되었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성직을 '만인사제직'의 더 넓은 맥락 안에서 재조명했다. 성직자는 그리스도의 3중 직무, 즉 예언직(가르침), 사제직(성찬), 왕직(통치)에 참여하는 자로 규정하여, 성찬 집전에만 국한되었던 중세적 이해를 확장했다. 또한 감독직이 사제직의 상위 등급이 아니라 '성품성사의 충만함(fullness)'이라고 선언하여 오랜 신학 논쟁을 종결시켰다.
    • 1968년/1990년 개정 예식: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서임 예식이 대대적으로 개혁되었다. 중세적이고 복잡한 요소들이 삭제되고, 초대 교회의 단순한 구조를 회복했다. 핵심 구조는 후보자 소개 - 신자들의 동의 - 서약 - 공적 기도(호칭기도) - 안수 - 서임 기도로 재편되었다. 특히 감독 서임 기도문은 중세의 것을 폐기하고 고대 문헌인 사도 전승의 기도문을 채택했다.

    IV. 현대 서임 예식의 동향과 과제

    1. 예식의 수렴 현상

    20세기 후반, 전례 운동과 교회 일치 운동의 영향으로 여러 교단의 서임 예식들이 신학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유사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다.
     

    • 남인도교회 예식(1958)의 영향: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연합으로 탄생한 남인도교회의 서임 예식은 안수를 성령 청원 기도(epiklesis) 중에 거행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후대의 많은 개신교 및 성공회 예식 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공통 구조의 확산: 현대의 많은 예식은 후보자 소개와 회중의 동의, 서약, 공적 기도, 안수와 서임 기도, 직무 상징 수여라는 공통된 구조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는 서임이 교회의 공적 행위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결과이다.

     

    2. 신학적 재조명과 남은 과제

    현대의 서임 예식들은 서임의 본질을 '권능 부여'가 아닌, 성령의 은사를 구하는 교회의 청원 기도이며, 전체 교회의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신학적, 실천적 과제가 남아있다.
     

    • 평신도의 역할: 서임 예식에서 평신도가 어느 정도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가, 특히 안수 예식에 평신도가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단별로 의견이 나뉜다.
    • 지역교회와 보편교회: 서임이 특정 지역공동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보편교회 전체를 위한 것인지의 관계 설정이 예식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다.
    • 안수 행위와 기도의 관계: 안수라는 상징적 행위와 서임 기도라는 언어적 행위를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할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전례적 과제이다. 여러 명을 동시에 서임할 때, 이 둘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은 특히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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