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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동방 기독교 입교 예식에 관한 종합 보고서
    책&논문 소개 2025. 12. 15. 10:02

    초기 기독교의 세례의 숨겨진 역사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초기 동방 기독교 입교 예식에 관한 종합 보고서https://christianprince.tistory.com/170

    www.youtube.com


    이번 포스팅은 Essays in Early Eastern Initiation을 정리한 것이다. 아래와 같이 세 명의 저자들, 폴 F. 브래드쇼(Paul F. Bradshaw), 맥스웰 E. 존슨(Maxwell E. Johnson), 그리고 루스 A. 마이어스(Ruth A. Meyers)의 논문 묶음을 정리한 것이다.
     
    해당 논문들은 초기 동방 기독교의 세 가지 주요 전승—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시리아—의 입교 예식에 대한 심층 분석을 제공한다. 각 전승은 뚜렷한 특징과 발전 과정을 보여주며, 이는 초기 기독교 예배가 단일한 형태가 아닌 지역적 다양성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1. 알렉산드리아 전승: 전통적으로 '서방형'으로 분류되었던 알렉산드리아의 세례 관습은 실제로는 독자적인 '알렉산드리아형' 특성을 지닌다. 이 전승은 본래 주님 공현 대축일 이후 40일 금식 끝에 거행되던 독특한 세례 시기, 정교한 입교 예식이 없고 최종 심사만을 강조한 예비 신자 교육, 구마(驅魔)가 아닌 치유와 재창조의 의미를 지닌 세례 전 도유(塗油) 등 서방 전승과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세례 후 도유는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알렉산드리아 예식이 단순한 동방/서방 이분법으로 규정될 수 없는 고유한 구조를 가졌음을 증명한다.
     
    2. 예루살렘 전승: 4세기 예루살렘의 교리 교육 과정에 대한 키릴로스 주교와 순례자 에게리아의 기록은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전승의 서로 다른 발전 단계를 보여준다. 에게리아가 묘사한 7주간의 긴 교리 교육 기간은, 키릴로스가 남긴 18개의 신조 중심 강의가 그 마지막 3주를 구성하는 형태로 통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가설에 따르면, 키릴로스의 다섯 번째 강의 후 거행된 '신조 수여'(traditio symboli)는 에게리아가 언급한 '5주간의 가르침 후'라는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예루살렘의 교리 교육은 기존의 3주간 신조 교육 과정이 더 긴 성경 교육 과정의 핵심적인 최종 단계로 편입되며 확장된 것이다.
     
    3. 시리아 전승: 시리아의 세례 예식은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물로 씻는 단순한 예식이었으나, 4세기를 기점으로 준비 예식(1부)과 세례 본예식(2부)으로 구성된 이중 구조로 발전했다가 후대에 다시 하나의 통합된 예식으로 합쳐졌다. 특히 4세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개종자가 급증하면서 예비 신자 등록, 구마 예식, 사탄 포기 및 그리스도 서약 등 정교한 준비 예식이 도입된 결정적 시기였다. 시리아 전승의 초기 특징은 세례 후 도유 없이 세례 전 도유와 침수(浸水)만 있었다는 점이며, 이후 이마에 인호를 새기는 도유와 전신 도유, 그리고 성령의 은사와 연관된 세례 후 도유가 점차 추가되면서 예식의 구조가 복잡해졌다.


    1부: 알렉산드리아 전승의 세례 관습: 동방인가, 서방인가?

    저자: 폴 F. 브래드쇼(Paul F. Bradshaw)

    이 연구는 알렉산드리아의 초기 세례 예식이 전통적인 서방형 분류에 들어맞지 않으며, 오히려 독자적인 특성을 지닌 '알렉산드리아형'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기 교회에는 동방과 서방이라는 두 가지 주요 전승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적 관습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세례 시기

    • 초기 관습: 서방에서 2세기 말부터 파스카(부활절) 축제가 세례의 일반적인 시기로 자리 잡은 것과 달리, 고대 콥트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의 세례는 '대사순 시기 제6주 엿샛날', 즉 40일 금식이 끝나는 날에 거행되었다. 이 40일 금식은 본래 주님 공현 대축일 직후에 위치했다.
    • 변화 과정:
      • 330년경, 아타나시우스는 이집트의 관습을 다른 지역과 일치시키기 위해 40일 금식 기간을 파스카 직전으로 옮기려 시도했으나 저항에 부딪혔다.
      • 파스카 시기로의 이전은 테오필루스 총대주교(385-412년) 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때에도 세례는 파스카 성야(聖夜) 중에 거행된 것이 아니라, 40일 금식이 끝난 토요일 오전에 거행되었다.
      • 5세기에 이르러서는 특정 세례 시기가 사라지고, 사제에 의해 연중 어느 때나 유아 세례가 집전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크리스마(성유) 축성 예식은 파스카 전 금식 기간과 계속 연관되어 있었다.

     

    예비 신자 교육(Catechumenate)

    • 기간: 서방의 3년 과정 예비 신자 교육이 이집트에도 있었음을 시사하는 증거들은(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마카리우스의 서신 등) 그 가치가 의심스럽거나 후대의 영향(히폴리투스의 『사도 전승』)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이집트 문헌인 『히폴리투스 교령집』은 3년 기간을 생략하고 오직 40일간의 교육만을 언급하여, 이것이 지역의 고유한 관습이었음을 시사한다.
    • 특성: 서방과 성격이 달랐다.
      • 서방에서 볼 수 있는 정교한 입교 예식이나 '신조 수여'(traditio symboli)에 대한 언급이 없다.
      • 『사도 전승』이나 다른 동방 지역(안티오키아, 예루살렘)에서 나타나는 매일의 구마 예식 흔적이 없다.
      • 대신 세례 며칠 전에 구마 예식 없이 행해지는 단 한 번의 최종 심사(Fishishin)가 있었다. 이 심사에서는 후보자의 이름 등록, 성경 읽기, 시편 학습 여부 확인 등이 이루어졌다.

     

    세례 전 도유(Pre-Baptismal Anointing)

    • 의미: 로마 예식의 도유가 구마적 성격을 띤 것과 달리, 알렉산드리아 전승의 도유는 치유와 재창조의 기능으로 이해되었다. 초기 이집트 자료들은 '구마의 기름'이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기름 부음'(aleimma) 또는 '교리 교육의 크리스마'로 불렀다.
    • 형식: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거행되는 삼위일체 공식을 동반했으며, 이는 이마와 심장에 십자 표시를 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 후대 변화: '구마의 기름'이라는 용어는 『사도 전승』의 영향으로 후대에 유입되었으나, 그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세례 후 도유에 적용되는 등 혼란을 보였다.

     

    신앙 고백

    • 초기 형식: 디오니시우스 총대주교와 오리게네스의 기록에 따르면, 초기에는 서방과 유사한 문답식 신앙 고백 형태가 사용되었다. 이것이 알렉산드리아 예식이 서방형으로 분류된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 후기 형식: 이 문답식 고백은 오래가지 못하고, 알렉산드리아 전승에 이미 확립되어 있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 선포식 형태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라는 직설법 세례 공식을 채택하면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세례 후 도유(Post-Baptismal Anointing)

    • 크레치마르(Kretschmar)의 연구를 따라, 세례 후 도유는 이집트 예식에 후대에 추가된 요소라고 주장한다. 원래 예식은 시리아 전승과 마찬가지로 세례 전 한 번의 도유만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 초기 문헌에서 '크리스마'에 대한 언급은 은유적이거나 세례 전 도유를 가리킬 수 있어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 『크리스마의 책』에 수록된 두 가지 전설은 4세기에 이 관습이 단절되었다가 복원되었거나 새로 도입되었음을 암시하는데, 이는 세례 후 도유가 혁신적인 요소였음을 시사한다.

     

    성찬례

    • 세례가 주일에 거행되지 않았기 때문에(4세기까지 완전한 성찬례는 주일에만 거행됨), 세례 직후에 완전한 성찬례가 거행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미리 축성된 성체로 영성체했거나, 다음 주일까지 기다렸을 가능성이 있다. 문헌들은 이에 대해 상반된 증언을 제공한다.

     

    결론

    알렉산드리아의 세례 예식은 서방형으로 단순하게 분류될 수 없다. 오히려 고유한 '알렉산드리아형' 특징을 지닌다. 이는 초기 기독교에 단일한 규범적 세례 관습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지역적 관행이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20세기의 '원시 기독교 예식 복원' 시도는 그 근거가 의문시될 수 있다.



    2부: 4세기 예루살렘의 교리 교육 과정: 키릴로스와 에게리아의 기록 조화시키기

    저자: 맥스웰 E. 존슨(Maxwell E. Johnson)

    이 연구는 4세기 예루살렘의 세례 전 교리 교육에 대한 키릴로스 주교(c. 348년)의 강의록과 순례자 에게리아(c. 381-384년)의 기록 사이의 명백한 불일치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두 기록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전승의 발전 과정 속에서 조화롭게 이해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핵심 문제

    • 에게리아의 기록: 8주간의 사순 시기 동안 7주에 걸쳐 매일 교리 교육이 진행되었다. 처음 5주는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를 가르쳤고, '5주간의 가르침 후'에 신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 키릴로스의 기록: 18개(또는 19개)의 세례 전 강의는 거의 전적으로 예루살렘 신조 해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조 수여'(traditio symboli)는 5주 후가 아닌, 다섯 번째 강의가 끝난 후에 이루어진다.

     

    기존의 해결 시도들

    1. 카브롤(F. Cabrol, 1895): 키릴로스의 강의(6-18강)를 에게리아가 언급한 마지막 주간들에 배정했으나, 강의의 내부 증거와 맞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2. 스티븐슨(A. A. Stephenson, 1954): 에게리아가 그리스어에 능통하지 않아 통역을 오해했으며, 예루살렘의 교리 교육 내용은 오직 신조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에게리아의 증언을 오류로 치부하는 추측에 기반한다.
    3. 텔퍼(W. Telfer, 1955): 키릴로스의 강의를 8주간에 걸쳐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고 가정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
    4. 볼도빈(J. Baldovin, 1987): 예루살렘의 '정주(定住) 전례'(stational liturgy)가 없는 날에만 강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으나, 계산에 오류가 있으며 에게리아의 '매일 교육'이라는 증언과 상충된다.
     

    대안적 해결책의 발전

    • 라게스(M. F. Lages)의 가설: 4세기 이전 예루살렘에는 원래 3주간의 사순 준비 기간이 있었으며, 키릴로스의 18개 강의는 바로 이 3주간의 교육 과정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로마 전승의 초기 형태와 아르메니아 전례서의 구조 분석을 통해 뒷받침된다.
    • 존슨의 제안: 이 연구는 라게스의 가설을 발전시켜, 에게리아 시대에 사순 시기가 8주로 확장되면서 기존의 3주간 신조 교육 과정이 더 긴 교리 교육의 최종 단계로 편입되었다고 제안한다.
    • 조화된 구조:
      • 에게리아가 묘사한 7주간의 교육 중 처음 4주는 성경 교육에 할애된다.
      • 마지막 3주(5, 6, 7주) 동안 키릴로스의 18개 신조 강의가 매일(일요일 제외) 진행된다.
      • 이 구조에 따르면, 키릴로스의 5번째 강의(신조 수여)는 전체 교육 과정의 5주차가 끝나는 시점에 위치하게 된다. 이는 에게리아가 "5주간의 가르침 후에" 신조를 가르쳤다는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결론

    키릴로스와 에게리아의 기록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키릴로스는 3세기 후반에 정립된 3주간의 전통적인 신조 교육 과정을 기록했으며, 에게리아는 이 전통적인 교육이 8주로 확장된 사순 시기 안에서 최종 준비 단계로 통합된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두 기록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예루살렘 전례 패턴의 약간 다른 역사적 맥락을 증언한다.


    3부: 시리아 세례 예식의 구조

    저자: 루스 A. 마이어스(Ruth A. Meyers)

    이 연구는 후대 시리아 세례 예식서에 나타나는 통일된 예식이 수세기에 걸친 진화의 결과물임을 추적한다. 초기의 단순한 예식에서 출발하여, 준비 예식(1부)과 세례 본예식(2부)의 이중 구조로 발전했다가, 다시 하나의 예식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4세기는 이러한 발전에서 결정적인 시기였다.
     

    준비 예식

    • 4세기 이전: 준비 과정은 비공식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개종자가 급증하면서 체계적인 예비 신자 교육 제도가 발전했다. 이 시기에는 악마적 세력과의 대결이 강조되며 정화와 구마적 성격의 예식이 주를 이루었다.
      • 등록: 사순 시기 초에 예비 신자와 대부모를 등록했다.
      • 교육과 구마: 매일 교리 교육(신조 수여 포함)이 있었고, 교육 후에는 구마 예식이 거행되었다.

     

    포기/서약 예식

    • 발전: 이 예식은 4세기에 발전한 것으로, 예비 신자 준비 기간을 마감하는 의례였다.
    • 시기: 요한 크리소스톰의 강론에 따르면, 이 예식은 성 토요일의 세례와는 별개로 성 금요일에 거행되었다.
    • 구조 변화: 원래 성 금요일에 독립적으로 거행되던 이 예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준비 예식과 세례 본예식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성 토요일의 세례 예식 직전으로 이동했다. 이는 후대 예식서들이 세례를 '1부'(준비)와 '2부'(본예식)로 나누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가 묘사한 예식은 이러한 통합의 초기 단계를 보여준다.

     

    신경 암송

    • '신경 봉헌'(redditio symboli)은 4세기 문헌에서 처음 언급된다.
    •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문헌들의 증언이 엇갈린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마지막 교리 교육 후인 성 목요일, 또는 성 금요일 포기/서약 예식 중에 암송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이 연구는 두 번의 신앙 고백이 있었다는 가설보다, 원래 성 목요일에 한 번의 신경 암송이 있었고, 이것이 후대에 포기/서약 예식에 통합되었다고 주장한다.

     

    세례: 도유와 침수

    • 초기 형태: 가장 오래된 시리아 예식은 세례 후 도유 없이 세례 전 도유와 침수만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디다케』는 도유 없이 물세례만 언급하며, 『유다 토마스 행전』은 도유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모두 보여주어 초기 관습의 다양성을 시사한다.
    • 세례 전 도유의 발전:
      • 초기 문헌(『유다 토마스 행전』, 『디다스칼리아』)에서는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위로 묘사된다.
      • 4세기(크리소스토무스, 테오도로스)에 이르면, 이마에 기름으로 인호를 새기는 행위와 전신에 기름을 바르는 행위로 분화된다.
      • 이마에 인호를 새기는 것은 원래 기름 없이 행해지던 서약 예식의 인호 예식에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 세례 후 도유의 등장:
      • 이것은 시리아 예식에 늦게 추가된 요소로,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와 『사도 헌장』에서 처음 나타난다.
      • 성령의 은사를 부여하는 의미와 관련이 있으며, 다른 예식 요소들에 비해 기도문 등의 변화가 적은 편이다. 이는 후대에 추가되었음을 방증한다.

     

    결론

     
    시리아의 세례 예식은 단순한 침수 예식에서 출발하여, 점차 체계적인 준비 과정이 결합된 복잡한 구조로 발전했다. 특히 4세기는 구마, 사탄 포기, 그리스도 서약 등 준비 예식이 도입되고, 세례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히는 것으로 이해하는 바오로 신학이 강조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이러한 발전은 기존의 관습과 신학을 바탕으로 한 점진적인 심화와 체계화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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