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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
    책&논문 소개 2026. 1. 17. 09:23

    이번 포스팅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을 요약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한글 번역판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도록 하자.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 도서출판 100  - 예스24

    철학자의 눈으로 본 예배와 하나님그리스도인은 예배에 참여하여 찬양, 기도, 고백, 성찬 나눔 등의 행동을 한다. 철학자 월터스토프는 전통적인 예배 행위들을 분석하여 그리스도교 예배에 나

    www.yes24.com

     
    이 책의 중심 프로젝트는 '예전 신학(Liturgical Theology)'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 행위, 즉 예전(liturgy)에 암묵적으로 내포된 하나님 이해를 명시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월터스토프와 같은 교회에 다닐 기회가 있어서, 월터스토프와 여러 번 만나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심지어 그때 나는 어거스틴의 예배 예전에 대해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liturgy(예배예전)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그냥 쉽게 말하면 예배 순서(Worship Order)가 예배 예전이라는 거다.
     
    (사실, 학문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 예배 예전이라는 용어를 너무 남용할 수가 있다. 특히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배 예전을 이야기하면 신자들은 못 알아듣는다. 사실 못 알아듣는 건 신자들만이 아니라, 사역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도 예배 예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가 칼빈대에 와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처음 칼빈에 정착하면서 주변 교회 소개를 받았을 때, 우리가 다니던 교회가 예배 예전이 엄청 유명한 교회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예배 예전이 뭐냐고 물었을 때 제대로 된 답변은 듣지 못했던 것도 기억한다. 예배 예전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거 그냥 예배 순서야"라고 말하는 월터스토프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이 책을 보면 월터스토프는 예배를 하나님의 가치(worth)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자, 하나님을 향해 직접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하나님을 향한(Godward)' 지향성을 가진 행위로 정의한다. 기독교 예배의 핵심 태도는 '경배(adoration)'이며, 이는 경외(awe), 존경(reverence), 감사(gratitude)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경외는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영광(glory)에, 존경은 그분의 거룩함(holiness)에, 감사는 그분의 사랑(love)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나 예전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역설'을 드러낸다. 예배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의무'라는 사실은,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에게 '잘못을 당하실 수 있는(vulnerable to being wronged)' 취약한 존재가 되셨음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직 완전히 도래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서 '저항을 받으시는(vulnerable to resistance)' 분임을 전제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을 지니신 동시에 취약하신 분이며, 이러한 역설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놀라움(amazement)이다.

    또한, 예전은 하나님을 인간과의 '상호적 말씀(mutual address)'에 참여하시는 분으로 드러낸다. 인간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이는 하나님이 우리 말을 '들으실(listen)' 수 있는 인격적 존재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어 우리의 말을 들으심으로써 우리를 높이신다. 반대로, 하나님은 성경 봉독, 설교, 축복 등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이때 설교자와 같은 인간 대리인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는(counts as)'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이처럼 예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나-너(I-thou)' 관계를 형성하는 역동적인 소통의 장이다.


    I. 서론: 예전 신학의 프로젝트

    월터스토프는 신학적 탐구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예전 신학(liturgical theology)'을 제안한다. 이는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라는 구체적인 실천 행위에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담겨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이다.

    • 독특한 출발점: 이 접근법은 다른 전통적인 신학의 출발점과 구별된다.
      • 토마스 아퀴나스가 '모든 것의 무조건적 조건이신 하나님'에서 시작한 것과 다르다.
      • 존 칼빈이 '창조와 성경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에서 시작한 것과 다르다.
      • 칼 바르트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한 것과 다르다.
    • 프로젝트의 목적: 예전 신학은 현대 교회가 겪고 있는 "교리의 실종"이라는 위기에 대응한다. 이는 신학이 추상적이고 삶과 무관하다는 편견에 맞서, 계시 신학에서 비롯된 하나님 지식이 실제적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프로젝트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캔처 강좌(Kantzer Lectures)'의 일부로 진행되었다.

    II. 예배의 본질: 경외와 감사와 놀라움의 경배

    월터스토프는 예배의 본질을 '경배(adoration)'로 규정하고, 그 구성 요소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예배의 정의와 방향성

    • 어원: 영어 단어 'worship'은 '가치 있음(worthiness)'을 의미하는 고대 영어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의 가치에 합당한 경의와 존경을 표하는 행위이다.
    • 방향성: 예배의 독특성은 '하나님을 향한(Godward)' 방향성에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과업이나 이웃, 창조 세계를 향하지만, 예배에서는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분과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face to face)'.

     

    예배의 태도: 경배(Adoration)

    예배자의 태도를 가장 잘 포착하는 단어는 '경배(adoration)'이다. 이는 매력으로서의 사랑의 한 형태로, 대상의 가치 때문에 그에게 이끌리고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예전의 모든 행위는 이러한 경배의 표현이다.
     

    기독교적 경배의 구성 요소

    월터스토프는 기독교적 경배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구성 요소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속성 설명


    따라서 기독교 예배는 "경외와 존경과 감사와 놀라움이 담긴 경배"로 정의할 수 있다. 고백과 도고기도 같은 행위조차도 하나님의 거룩함, 권위, 사랑, 능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예배의 한 형태이다.


    III. 예전에 내재된 하나님의 이해: 역설적 하나님

    예전은 하나님을 단순히 위대한 분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전의 규범적 성격과 특정 예전 행위들은 하나님에 대한 깊고 역설적인 이해를 드러낸다.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을 지닌 하나님

    예배 행위의 근저에는 영광과 거룩함과 사랑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다. 우리는 이 위대함에 경외와 존경과 감사로 응답한다.
     

    취약하신 하나님

    그러나 이 위대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취약하신 분으로 드러난다.

    1. 잘못을 당하실 수 있는 취약성 (Vulnerability to Being Wronged)

    •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단지 좋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의무(obligatory)이다.
    • 따라서 예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잘못을 저지르는 것(to wrong God)이다.
    • 하나님은 인간에게 예배할 자유와 그렇지 않을 자유를 주셨다. 이 두 사실을 종합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피조물에게 잘못을 당할 수 있는 취약한 존재가 되셨다는 결론에 이른다.

     
    2. 저항을 받으실 수 있는 취약성 (Vulnerability to Res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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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기도문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고 기도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으며 그 도래에 대한 저항(resistance)이 존재함을 전제한다.
    •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서 저항에 부딪히는, 즉 저항에 취약하신 분임을 암시한다.

     

    역설의 핵심과 그에 대한 반응: 놀라움(Amazement)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는 탁월함을 지니신 동시에 취약하시다. 이 두 측면은 나란히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취약해지기를 선택하고 허락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탁월함의 한 요소"이다. 이 깊은 역설에 대한 적절한 태도적 반응은 놀라움(amazement)이다.


    IV. 상호적 말씀에 참여하시는 하나님

    예전은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에게 말하고 듣는 상호적 소통의 장이다.
     

    인간의 말씀: 하나님을 향한 기도

    • 강력한 말씀(Strong Address): 예전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듣는 이가 주의를 기울이고, 파악하며, 적절히 반응하기를 바라는 목적을 가진 '강력한 말씀'이다.
    • 전제된 하나님 이해: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이 우리의 말을 들으실 수 있고, 듣기를 선택하실 수 있으며, 우리에게 응답하실 수 있는 인격적 존재라는 이해를 전제한다.
    • '나-너(I-thou)' 관계: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께서 들으실 때,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상호적 지향성이 생겨나며 '나-너' 관계가 창조된다.

     

    하나님의 응답: 들으심

    • '들으심'의 경이로움: 전 우주의 창조주이자 유지자이신 하나님께서 먼지와 같은 미약한 피조물인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어 우리의 말을 들으심으로써, 우리를 높여주시고 존중해주신다.
    • 말씀드리기가 주제넘지 않은 이유: 우리가 감히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초대하셨기 때문이다. 시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보고이자 모델이며, 예수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할지 직접 가르치셨다("이렇게 기도하여라").
    • 말씀드리기가 무의미하지 않은 이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신다고 해서 기도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기'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약속, 주장, 감사, 고백 등과 같은 발화수반 행위(illocutionary act)를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아실지라도, 우리가 그분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행위' 자체를 원하신다.

    V. 말씀하시는 하나님: 두 가지 신학적 모델

    예전에서 회중은 성경 봉독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월터스토프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주요 신학적 모델을 제시하고 평가한다.

    1. 칼뱅의 모델: 대리자(Deputy)로서의 설교자

    • 이 관점에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사(ambassador) 또는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한다.
    • "먼지에서 일어난 미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 (칼빈, 기독교 강요)
      • 여기서 설교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이 특정 회중에게 말씀하시는 행위로 '간주된다(counts as)'. 이는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를 통해 행동하는 '이중 행위자(double-agency)'의 한 형태다.

     
    2. 바르트의 모델(폰 알멘을 통해): 사건(Event)으로서의 말씀

    • 스위스 신학자 폰 알멘(von Allmen)에게서 발견되는 이 관점은 칼 바르트의 신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 궁극적인 '하나님의 말씀(Word of God)'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 설교는 이 '말씀'을 가리키는 인간의 행위이다.
    • 하나님은 이 인간의 설교를 '수단'으로 사용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효과적으로 행동하시는 '사건(event)'을 일으킬 수 있다.
    • 이 모델에서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해 문자 그대로 '말씀하시는(illocutionary act)'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말을 사용하여 '행동하시는' 것이다.

     

    월터스토프의 평가

    월터스토프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고 선언했던 구약 선지자들의 사례를 들며 바르트의 모델이 비개연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선지자들이 단순히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심판을 선포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칼빈의 모델, 즉 하나님께서 인간 대리인을 통해 직접 말씀하시고 그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된다'는 이해를 지지한다.



    VI. 성만찬에 내재된 하나님의 이해

    월터스토프는 존 칼빈의 신학을 통해 성만찬에 내재된 심오한 하나님 이해를 탐구한다.
     

    • 기념과 상징을 넘어서: 칼뱅에게 성만찬은 단순히 과거 사건을 회상하는 기념이나 상징적 행위가 아니다.
    •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와 참여(Partaking): 성만찬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가 영적으로 먹고 마시며 그분께 참여하도록 실제적으로 내어주신다. 우리는 이 선물을 믿음으로 받는다.
    • '간주됨(Counting-as)'의 원리:
      • 집례자가 회중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는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는 행위로 간주된다.
      • 우리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몸과 피를 우리 자신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로 간주된다.
    • '놀라운 교환'과 신화(Theosis): 그리스도께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생명과 연합하게 된다. 칼뱅은 이를 "놀라운 교환(wonderful exchange)"이라고 표현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죽을 운명을 취하시고 우리에게 자신의 불멸성을 주시며, 우리의 죄악의 짐을 지시고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입히신다. 이는 동방정교회의 '신화(divinization, theosis)' 교리, 즉 인간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상과 깊은 유사성을 보인다.
    • 내재된 그리스도론: 따라서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현재적 내주(indwelling)에 초점을 맞춘, 요한 복음과 바울 서신의 그리스도론을 역동적으로 '실행하는(enact)' 행위이다.

    VII. 하나님의 나라와 기도

    월터스토프는 N.T. 라이트의 연구에 크게 의존하여,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기도가 모든 기독교적 기도의 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하나님 나라에 대한 두 가지 이해: 예전 안에는 긴장이 존재한다.
      • 1. 내세의 나라: 사도신경(Creed)이나 많은 기도문에서 언급되는 '천상의', '영원한' 왕국.
      • 2. 현세의 나라: 주기도문에서처럼,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그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대상.
    • 예수의 선포(N.T. 라이트의 해석):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승리를 의미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적 기대를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예수에게 진정한 '포로 상태'는 정치적 억압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였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다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 회개: 우상숭배적인 민족주의와 복수심에 가득 찬 폭력성을 버리는 것.
      • 새로운 실천(Praxis): 원수까지 사랑하고, 복수 대신 용서를 베풀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는 삶.
      • 이 나라는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하는, 전복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온다.
    • 기도의 의미: 우리의 모든 간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 overarching context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루스가 치유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루스의 치유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 대한 이해: 만약 루스가 치유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있지 않다는 표시도 아니다. 단지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우리가 열망했던 그 특정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종류의 채워지지 않은 열망과 함께 사는 것은 이 현 시대 기독교인의 삶에 내재되어 있다."

    VIII. 결론: 예전 신학의 기여

    월터스토프의 예전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풍부하고 역동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 역설적 하나님: 예전은 하나님을 헤아릴 수 없이 위대하면서도 동시에 취약하신 분으로, 초월적인 동시에 우리와 관계 맺으시는 분으로 드러낸다.
    • 관계적 하나님: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행동하시는 군주가 아니라, 우리를 초대하여 '나-너'의 상호적 관계 속으로 들어오시는 분이다.
    • 하나님에 대한 언어: 월터스토프는 '유비적 확장(analogical extens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들으신다"라는 명제는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들으시거나, 혹은 듣는 것과 매우 유사한 어떤 일을 하신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유치한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언어가 공허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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