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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에 대하여책&논문 소개 2026. 1. 30. 15:45
Intro
이번 포스팅은 아래 링크의 팟캐스트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해당 링크에서는 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으로만 구분지어서 소개를 했는데, 물론 더 많은 논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가지 관점으로만 간단하게 다룬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Cessationism and Continuationism: Two Views of Spiritual Gifts - Phylicia Masonheimer
Do the revelatory spiritual gifts - tongues, healing, and prophecy - continue to modern day? If not, why are they so prevalent in Acts? If they do, why do we see them practiced in strange and chaotic ways? And what does the Bible say?
phyliciamasonheimer.com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스타그램에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월요일(Ask Anything Monday)'이었고, 자유의지와 지옥에 관한 질문부터 저희 집 토끼에 관한 질문까지 정말 다양한 질문들에 답했습니다. 네, 저희가 새로운 토끼들을 입양했고, 개인적으로는 꽤 신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팟캐스트를 듣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겠지요.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다루면서, 이 본문과 또 다른 관련 본문들로부터 파생되는 두 가지 주요 신학적 관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두 관점은 치유, 예언, 방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들이 오늘날에도 계속되는가, 아니면 이미 그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에 이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에피소드를 준비하며 어떻게 시작할지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냥 고린도전서 13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장을 중심으로 양쪽 입장을 살펴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에 최근에 참석하신 적이 있다면 이미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매우 유명한 '사랑장'이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장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고전13:1-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이제 여기서 출발하겠습니다. 먼저 은사중지론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에 앞서 몇 가지 용어를 정의하겠습니다. 은사중지론이란 '그치다(cease)'라는 어근에서 나온 말로, 성령의 은사들이 이미 중단되었으며 오늘날 더 이상 실천되어야 할 은사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이러한 은사들을 보지만, 은사중지론자들과 학자들은 이 은사들이 특정한 시대, 즉 초대교회 시기에만 주어졌다고 믿습니다.
반면 은사지속론은 말 그대로 성령의 은사들이 오늘날까지 계속된다고 믿는 입장입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하는 본문은 사실 매우 많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방언과 그것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말하며, 무질서가 아니라 덕을 세우는 예배를 강조합니다. 로마서 12장 역시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은사들을 나열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은사 테스트를 떠올려 보면, 치유·방언·예언 외에도 다양한 은사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특히 이 세 가지 은사—치유, 방언, 예언—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오순절 이후, 사도들과 초대교회가 공개적으로 행하던 은사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은사중지론자와 은사지속론자 사이에는 매우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곤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양측 모두 성경을 매우 높이 존중한다는 사실입니다. 은사중지론자는 성경의 권위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그 어떤 새로운 계시도 더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은사지속론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명령하는 대로 은사를 사모하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동일한 본문을 가지고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전에 다루었던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논쟁과도 유사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은사중지론은 종교개혁 이후 특히 개혁주의 전통 안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가 성경 위에 전통을 덧붙이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강하게 강조했고, 그 과정에서 계시와 관련된 모든 주장에 대해 극도로 신중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은사중지론은 성경의 권위를 보존하려는 열망에서 발전했습니다.
은사중지론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본문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 8–10절, 특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는 구절입니다. 그들은 '온전한 것'을 신약 정경의 완성으로 이해합니다. 즉, 성경이 완성되었으므로 예언과 방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 은사지속론의 관점을 살펴봅시다. 은사지속론자들은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하며 "말세에 내 영을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말한 점에 주목합니다. '말세'는 초대교회부터 재림까지의 전체 교회 시대를 가리킨다고 이해됩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은 은사의 목적이 사도 권위 확증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는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역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어떤 은사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는 분명히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대면, 곧 재림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은사지속론자에게 '온전한 것'은 그리스도 자신, 혹은 그분의 재림입니다. 그러므로 예언과 방언과 치유는 그때까지 지속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예언은 어떤 모습입니까? 은사지속론자들도 성경에 새로운 계시를 더하는 예언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신약의 예언은 구약 선지자들과 동일한 권위의 계시가 아니라, 권면과 위로와 덕을 세우는 말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말씀으로 분별되고 검증되어야 합니다.
방언과 치유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치유는 오늘날에도 가능하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방언의 경우, 사도행전 2장의 실제 언어로서의 방언을 강조하는 입장도 있고, 로마서 8장 26절에 근거해 '기도의 방언'을 말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 주제에서 중요한 점은,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이고 비성경적인 은사 남용의 경험 때문에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은사는 반드시 질서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혼란과 과시, 감정적 선동은 성경적 예배가 아닙니다.
동시에 은사중지론 역시 반작용적 신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극단적인 은사지속론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나쁜 해석학입니다. 양측 모두 성경적 논증 자체를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은사는 본질 교리가 아니라 이차적 사안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논의의 한가운데에 사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이미 그 본문의 정신을 배반한 것입니다.'책&논문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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