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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과 복음의 초청신앙/신학 이야기 2026. 1. 12. 15:41

ㅏ나님ㅇ 이번 포스팅은 개혁주의 신학자인 존 머레이(John Murray)와 제임스 I. 패커(James I. Packer)의 글을 바탕으로 '복음의 값없는 제시(free offer of the gospel)'라는 신학적 개념을 살펴본다. 핵심 쟁점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하는 자(유기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진정으로 '소원(desire)'하시는지의 여부이다.
그러나 이 '소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담은 '작정적 뜻(decretive will)'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그의 명령과 초청인 '계시된 뜻(revealed will)'에 속한다고 명확히 구분한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소원과 특정인만을 구원하시기로 한 작정 사이에 신학적 모순이 발생하지 않음이 설명된다.
존 머레이의 논증에 따르면, 복음 제시는 단순한 명령을 넘어 죄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성품(disposition of lovingkindness)'의 진실한 표현이다. 특히 마태복음 23:37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은 단지 인간적인 슬픔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바라시는 신성(神性)의 의지를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다. 제임스 I. 패커 역시 복음의 보편적 초청이 모든 사람이 듣고 믿어 구원받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진실한 소원(bona fide wish)'이며, 이는 '사랑의 능동적인 표현'이라고 결론짓는다.1. 하나님의 '소원'과 두 가지 뜻의 구분
논쟁의 핵심: 하나님의 소원
복음의 값없는 제시와 관련된 실제적인 논쟁점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소원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한지의 여부이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뜻을 두 가지로 구분함으로써 이해되어야 한다.
- 작정적 뜻 (Decretive Will): 만물의 궁극적인 결과를 결정하는 하나님의 비밀스럽고 주권적인 계획.
- 계시된 뜻 (Revealed Will): 성경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난 하나님의 명령과 초청.
하나님께서 유기자의 구원을 '소원하신다'는 명제는 '계시된 뜻'의 영역에 속한다. 만약 이를 '작정적 뜻'에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 유기자의 파멸을 작정하셨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구원을 작정적으로 소원하신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하나님께서 '뜻하시면서 동시에 뜻하지 않으신다'는 논리적 오류가 발생한다.
복음 제시에 내재된 하나님의 성품
'소원'이라는 단어는 복음 제시가 단순한 명령 이상의 의미를 지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갖는다.
- 자애로운 성품의 표현: 복음 제시 안에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성품'이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복음의 은혜에 순종함으로써 얻게 될 구원을 향한다.
- 하나님의 기쁨: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 제안을 듣는 자들이 약속된 복을 온전히 누리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에스겔 33:11의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는 말씀의 정신과 일치한다.
- 실제적인 태도: 이러한 하나님의 소원은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복음 제시에 내재된 실제적인 자비와 기쁨의 성품이다.
수단을 통한 구원의 소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소원하신다는 것은 '회개와 믿음이라는 필수적인 수단과 분리된' 구원을 원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구원의 필수 조건에 순응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이는 그들의 '회개'를 바라신다는 말과 동일하다. 조건 없는 구원을 소원하시는 것은 선과 악의 차이를 포기하는 것과 같으므로 상상할 수 없다.
2. 성경적 근거: 마태복음 23:37 분석 (존 머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두고 탄식하신 말씀("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은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성경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의 뜻과 인간의 뜻의 대립
이 구절은 명백히 두 가지 의지를 대립시킨다.
- 예수님의 의지: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그의 구원과 보호의 은혜 아래 모으기를 '원하셨다(willed/wished)'.
- 그들의 의지: 그들은 '원하지 않았다(willed/wished)'.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 즉 하나님의 작정적 뜻이 아니었던 일을 원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백성의 회심과 구원을 간절히 바라셨다는 가장 단호한 선언을 접하게 된다.
단순한 인간적 소원인가, 신적 의지의 계시인가?
일각에서는 이 탄식이 예수님의 전지하지 않은 인간성에 기인한 '인간적 소원'일 뿐이며, 따라서 신적 의지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존 머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해석이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반박 근거 상세 설명 신인(God-man)으로서의 발언 예수님은 이 말씀을 메시아이자 구원자라는 신적 자격으로 하셨다. 사람들을 구원의 품으로 모으는 행위는 그가 신인으로서 수행하는 초월적이고 신적인 기능이다. 따라서 이 발언에서 그의 신적 측면을 분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 요한복음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듯(요 12:49-50, 14:10, 17:8), 아들이신 예수님의 뜻은 아버지의 뜻과 완벽한 조화와 일치를 이룬다. 이 탄식을 단지 인간적인 것으로 치부하면, 예수를 아버지의 최고 계시자로 보는 관점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보편적 초청의 배경 이 탄식은 마태복음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과 같은 보편적 초청의 배후에 있는 주님의 의지와 열망을 드러낸다. 이는 그의 신적 특권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다. 신적 권위의 확증 탄식 직후 38-39절에서 예수님께서 신적 심판을 선포하시는 것은 그가 신적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고 있음을 확증한다. (참조: 요 5:26-27)
결론적으로, 이 탄식은 예수님의 인간적 의지를 통해 표현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는 진정한 '신적 의지의 계시'이다.
John Murray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These passages from classical Reformed theologians and preachers speak of God’s desire for or delight in the salvation of those who hear the gospel offer, inasmuch as his revealed will is an expression of his goodness and kindness toward the hearers of t
www.westminsterconfession.org
3.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제임스 I. 패커)
제임스 I. 패커는 이 주제를 간결하게 요약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복음의 보편적 초청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 된 인간들이 죄를 위해 죽으신 살아계신 그리스도께 믿음과 회개로 돌아오도록 초청하는 복음의 보편적 부르심에서 드러난다.
- 하나님께서는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듣는 모든 사람이 믿고 구원받기를 바라는 '진실한 소원(a bona fide wish)'을 표현하신다.
- 이러한 초청과 소원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사랑의 능동적인 표현(love in active expression)'이다.
James I. Packer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These passages from classical Reformed theologians and preachers speak of God’s desire for or delight in the salvation of those who hear the gospel offer, inasmuch as his revealed will is an expression of his goodness and kindness toward the hearers of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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