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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과 복음으로의 초청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설명신앙/신학 이야기 2026. 1. 13. 01:50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간청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https://christianprince.tistory.com/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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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토머스 할리버튼, 토머스 보스턴, 에버니저 어스킨, 아치볼드 보나르, 토머스 챌머스 등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저술을 종합하여 하나님의 뜻과 복음의 권고에 관한 핵심 사상을 분석한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복음의 권고가 모든 청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친절함, 그리고 구원에 대한 진실한 열망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라는 점이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위일체의 간청: 복음의 권고는 단순히 신적인 명령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전체가 죄인들에게 구원을 받아들이라고 간절히 요청하고 애원하는 것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요청을 거절하는 행위이다. (할리버튼)
- 하나님의 보편적 선의: 하나님은 심판을 늦추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보편적 선의와 오래 참으심을 드러내신다. 복음의 초대는 특권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무시하는 것이다. (보스턴)
- 하나님 사랑의 구별: 하나님의 사랑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모든 이에게 확장되는 선의의 사랑(자비), 가시적 교회에 주어지는 선행의 사랑(은혜), 그리고 신자들에게만 국한된 기쁨의 사랑(희락)이다. (어스킨)
- 거절의 죄악성: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불순종을 넘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모욕하고 경멸하는 배은망덕한 행위이다. 이러한 거절은 미래의 형벌을 가중시킨다. (보나르)
- 권고의 시급성과 한계: 현재는 하나님께서 진노가 아닌 부드러움과 긍휼로 모든 이를 초대하시는 은혜의 시기이다. 그러나 이 초대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면 성령께서 더 이상 역사하지 않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를 수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며 우신 것은, 그들이 바로 이 지점을 넘어섰기 때문이며, 이는 하나님의 초대에 즉각적으로 응답해야 할 시급성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챌머스)
결론적으로, 이 신학자들은 복음의 권고가 하나님의 진실한 제안임을 강조하며, 이를 듣는 모든 이에게는 이 사랑의 초대를 받아들일 책임과 기회가 주어졌음을 역설한다. 동시에 이 초대를 거부하는 행위가 가져올 심각하고 영원한 결과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서론: 복음 권고에 담긴 하나님의 뜻
이번 포스팅에서는 네 명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복음 권고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들의 저술은 복음의 권고가 듣는 모든 이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친절의 표현이며,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반영한다는 공통된 주제를 다룬다. 각 신학자는 이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며, 복음 권고의 본질,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때의 의미,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설명한다.
1. 토머스 할리버튼: 삼위일체 하나님의 간청
토머스 할리버튼(1674-1712)은 복음의 권고를 성부, 성자, 성령, 즉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가 죄인들에게 드리는 간절한 요청으로 묘사한다. 그는 불신앙이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넘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열망, 간구, 애원"을 거부하는 행위라고 강조한다.
- 그리스도의 마음: 복음의 권고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기초를 놓으셨으며, 그분의 "마음이 이 요청에 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이 이 부르심에 순응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고 우셨으며, 복음 사역을 위해 막대한 은사와 은혜를 쏟으셨다.
- 삼위일체의 연합된 간구: 복음의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간청하며, 이는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당신들에게 간청하시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모두 이 간구에 동참하신다. 할리버튼은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오 죄인들이여, 만일 당신들이 온 삼위일체의 열망, 간구, 애원을 거절할 수 있다면, 당신들은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
- 거절의 심각성: 복음 권고를 거절하는 것은 이성, 자기 보존, 이익, 감사의 모든 도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할리버튼은 이러한 거절을 하늘이 놀랄 일이라고 표현하며, "하나님은 간청하시고, 인간은 거절하는도다!"라고 탄식한다.
Thomas Halyburton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These passages from classical Reformed theologians and preachers speak of God’s desire for or delight in the salvation of those who hear the gospel offer, inasmuch as his revealed will is an expression of his goodness and kindness toward the hearers of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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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머스 보스턴: 그리스도의 초대와 하나님의 선의
토머스 보스턴(1676-1732)은 복음의 권고를 잔치에 대한 초대에 비유하며, 이 초대가 하나님의 보편적인 선의에 기반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 초대의 본질: 죄인들은 잔치에 "들어오도록 요청받았다." 이는 장례식이나 감옥이 아닌, 하늘의 모든 진미로 대접받는 손님의 방으로의 초대이다. 주인이 종들을 보내어 "억지로라도 데려오라"고 한 것은 그만큼 초대가 진실하다는 증거이다.
- 초대의 특권성: 이 초대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보스턴은 세상의 30개 부분 중 19개가 이교도에 의해 점유되어 있으며, 복음의 제안이 그들에게 주어졌다면 더 잘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 초대를 받은 것은 특별한 특권이며, 거절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 심판 지연의 이유: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늦추시는 이유는 그분의 "보편적 선의" 때문이다. 그는 베드로후서 3장 9절("주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과 디모데전서 2장 4절("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진노에는 더디시나 자비에는 속히 응답하신다고 설명한다. 정의의 심판은 그분의 "이상한 행위"이지만, 자비는 그분이 "특별한 기쁨"을 느끼시는 바이다.
Thomas Boston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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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버니저 어스킨: 하나님의 사랑의 종류
에버니저 어스킨(1680-1754)은 하나님의 사랑을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하여 복음 권고의 다층적 의미를 설명한다.
- 선의의 사랑 (Love of Benevolence):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 특히 모든 가시적 교회 구성원들을 향해 품으시는 선한 의지이다. 이스라엘 진영에 놋뱀을 들어 올린 것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치유를 위한 선의의 증거였듯이,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은 모든 이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선의를 보여준다. 그는 에스겔 33장 11절("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을 인용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 선행의 사랑 (Love of Beneficence): 이는 선한 의지를 넘어 실제로 선을 행하시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가시적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반복적인 교훈, 기쁨의 소리, 수많은 사역자,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의 제안을 끊임없이 제공하신다. 말씀, 양심, 성령의 감동을 통해 문을 두드리신다.
- 기쁨의 사랑 (Love of Complacency): 이는 오직 신자들에게만 국한된 사랑으로, 기쁨과 만족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기뻐하시고(시 149:4), 그들을 귀하게 여기시며(사 43:4) "보배"와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다. 또한 신자들과의 연합을 원하시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신다.
Ebenezer Erskine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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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치볼드 보나르: 거절된 사랑의 죄악성
아치볼드 보나르(1753-1816)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복음을 거부하는 행위의 심각성과 배은망덕함에 초점을 맞춘다.
- 하나님의 친절을 왜곡함: 부주의한 죄인들은 하나님의 친절한 행위들을 "자비로운 은인에 대한 반역의 도구로 왜곡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누리면서도 그분을 잊고, 그분의 인자하심에 대한 찬양을 도둑질한다.
- 사랑을 모욕하는 행위: 회개하지 않고 불신앙에 머무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 율법과 복음의 위대한 것들을 계시하고 "값진 진주"를 내미셨음에도, 죄인들은 그것을 발밑에 짓밟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을 경멸한다.
- 가중되는 형벌: 이러한 배은망덕, 불신, 불순종, 그리고 자비와 은혜를 단호히 거부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의로운 불쾌감을 증가시키고, 미래의 형벌을 가중시키며, "영원한 고통의 불꽃에 새로운 연료를 더할 것"이다.
- 회개를 위한 논증: 보나르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히려 회개와 믿음의 근거로 삼으라고 촉구한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스러움, 아들을 통해 나타난 구속의 사랑,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을 아끼고 보호하신 인자하심에 의지하여 나아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Archibald Bonar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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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토머스 챌머스: 복음 권고의 보편성과 긴급성
토머스 챌머스(1780-1847)는 복음 권고의 보편적인 성격과 그것에 응답해야 할 시급성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논증한다.
복음 권고의 보편성
챌머스는 초대받은 것들의 선함(영생)과 초대를 촉발한 선의(하나님의 마음)를 구분한다.
- 하나님의 선의: 하나님의 선의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실제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생의 선물을 내미는 것"에 있다.
- 보편적 제안: 하나님은 두 사람에게 선물을 내밀 수 있고, 한 명은 받고 다른 한 명은 거절할 수 있다. 제안을 촉발한 선의는 두 사람 모두에게 동일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이는 선물이 모든 이에게 솔직하고 자유롭게 제시된다는 사실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Thomas Chalmers - The Presbytery of the United States | The 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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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는 진노가 없음
챌머스는 이사야서의 "내게는 분노가 없나니"라는 구절을 해석하며, 하나님의 현재 태도를 설명한다.
- 초대의 시기: 하나님께 진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즉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화해로 초대하고 평화를 만들라고 부르시는 "초대의 시기"에는 진노가 없다. 이때 하나님의 어조는 분노가 아닌 "부드러움"이며, 그분의 표정은 진노가 아닌 "애정"이다.
- 예루살렘의 예: 예수께서 "오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라고 외치셨을 때 그분의 목소리에는 복수심에 찬 진노가 아니라, 그들이 평화에 속한 일을 알기를 바라는 연민과 간절함이 있었다.
- 미래의 진노: 진노는 초대를 거부하고 불신과 경멸로 외면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자비의 계절이 끝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죄인들이 쌓아온 진노가 그들 위에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오늘", 초대가 유효한 지금 이 순간에는 하나님께 진노가 없다.
죽음에 이르는 죄의 본질
챌머스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막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셨던 신비를 통해 복음 거부의 최종적 결과를 설명한다.
- 성령의 역사와 한계: 그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 때문이다.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고 회개하도록 촉구하신다. 그러나 사람이 계속해서 저항하면, "그분은 점차 그들과 다투는 일을 멈추실 것이다."
- 돌이킬 수 없는 지점: 성령의 첫 감동에 굴복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것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이미 가진 감동마저 빼앗길 것이다. 계속해서 성령의 음성을 억누르면, 마침내 그분은 더 이상 간섭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이 도달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었다.
- 긴급한 경고: 예수님의 눈물은 무력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은혜의 날을 지나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즉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함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지금은 용납된 때요 구원의 날이지만, 이 시기는 영원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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