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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이 말하는 '하나님의 이중 은혜'와 현대 에큐메니컬 복음 논의신앙/신학 이야기 2026. 1. 15. 13:30
칼빈이 말하는 이중 은혜 - 칭의와 성화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https://christianprince.tistory.com/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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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코르넬리스 P. 페네마(Cornelis P. Venema)의 논문CALVIN’S UNDERSTANDING OF THE “TWOFOLD GRACE OF GOD” AND CONTEMPORARY ECUMENICAL DISCUSSION OF THE GOSPEL을 바탕으로 존 칼빈의 '하나님의 이중 은혜(duplex gratia dei)' 개념, 즉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에 대한 이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 문서는 칼빈의 신학이 어떻게 16세기 종교개혁 시대부터 이어진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간의 핵심적인 신학적 논쟁, 특히 칭의 교리에 대한 논쟁을 명확히 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핵심적인 통찰은 다음과 같다.- 칼빈의 핵심 개념: 칼빈 신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이중 은혜'가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신자가 동시에 받는 두 가지 혜택, 즉 칭의와 성화를 의미한다. 칭의는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義)가 신자에게 전가(imputation)되는 법정적(forensic) 선언이며, 구원의 토대가 된다. 성화는 신자의 삶이 점진적으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과정으로, 칭의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 핵심 관계 "분리 없는 구별": 칼빈은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칼케돈 신조의 기독론적 공식을 차용하여 "분리 없는 구별(distinction without separation)"로 설명한다.
- 구별: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이며 구원의 확신을 위한 토대이므로, 인간의 내적 변화인 성화와 개념적으로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이를 혼동하면 구원의 근거가 인간의 불완전한 의로 옮겨가 양심의 평화를 위협하게 된다.
- 분리 불가능성: 칭의를 받은 신자는 필연적으로 성령의 사역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위로 나타나므로, 칭의와 성화는 현실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는 말로 요약된다.
- 가톨릭과의 역사적 논쟁: 트리엔트 공의회로 대표되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 입장은 칭의를 죄의 용서뿐만 아니라 내적 갱신과 성화를 포함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가 아니라 신자에게 주입된(infused) 의이며, 인간의 협력과 공로가 구원에 기여한다고 본다. 이로 인해 구원의 확신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가톨릭은 개신교의 칭의론이 구원을 '법적 허구'로 만들고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무시한다고 비판해왔다.
- 현대 에큐메니컬 논의: 최근 루터교-가톨릭의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과 복음주의-가톨릭 간의 대화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으나, 칭의의 본질(법정적 선언 vs. 과정), 구원의 근거(전가된 의 vs. 주입된 의), 구원의 확신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는 여전히 견해 차이를 보인다.
- 칼빈 신학의 기여: 칼빈의 '이중 은혜' 개념은 이 논쟁을 명확히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는 성화의 필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신자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가톨릭의 우려에 충분히 답한다. 동시에 칭의를 성화와 명확히 구별함으로써,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상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근거한다는 개신교의 핵심 원리를 확고히 지킨다. 이를 통해 논쟁의 초점을 '변화가 필요한가'라는 문제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인정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동시킨다.

추가로 참고할 링크: 2026.01.02 - [책&논문 소개] - 칼빈이 말하는 칭의에 대하여I. 서론: 칼빈 신학의 현대적 적실성
존 칼빈의 16세기 신학, 특히 '하나님의 이중 은혜'에 대한 그의 이해는 현대의 교회일치(에큐메니컬) 논의, 그중에서도 칭의 교리에 대한 논의에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최근 수십 년간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역사적인 신학적 분열, 특히 칭의 교리를 중심으로 심도 있는 대화를 재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칼빈의 입장을 재검토하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이유에서 의미가 있다.
- 역사적 원천의 재검토: 현대의 에큐메니컬 대화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적 문헌들을 새롭게 읽는 것을 필수적인 과제로 삼는다. 칭의 교리는 당시 분열의 핵심 원인이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모색하는 현대의 노력은 당시의 신학적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칼뱅은 개신교 측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로서, 양측의 핵심적인 차이점을 포괄적으로 요약하고 체계화했다.
- 칼빈 신학의 대화적 성격: 칼빈은 로마 가톨릭의 반론에 대해 깊이 고심하며 자신의 칭의론을 정립했다. 그의 신학은 단순히 가톨릭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가톨릭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예: 믿음만 강조할 경우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만족스러운 신학적 답변을 제공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의 '이중 은혜' 교리는 개신교의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도, 양측의 신학적 차이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지점들을 날카롭게 조명하는 에큐메니컬적 성격을 지닌다.
II. 칼빈의 '하나님의 이중 은혜' 개념 요약
칼빈은 『기독교 강요』 3권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다루며, 신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누리는 두 가지 핵심적인 혜택을 '하나님의 이중 은혜(duplex gratia dei)'라고 칭한다. 이것이 바로 칭의와 성화이며, 칼빈은 이를 "복음의 총화(sum of the gospel)"라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을 붙잡고 소유한다. 그분께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주로 이중의 은혜(duplicem gratiam)를 받는다. 즉, 그리스도의 무죄하심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늘에서 심판자 대신 은혜로운 아버지를 모시게 되는 것과, 둘째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룩하게 되어 흠 없고 순결한 삶을 경작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 III.xi.1)
이 두 가지 혜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두 가지 방식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적용에 관한 모든 기독교 설교의 불변하는 내용이 된다.III. 칭의: 이중 은혜의 첫 번째 요소
칼빈에게 있어 칭의는 '이중 은혜' 중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혜택이다. 그는 칭의를 "종교를 지탱하는 주된 경첩(the main hinge on which religion turns)"이라고 부르며, 구원에 대한 지식이 바로 이 혜택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달려있다고 보았다.
A. 칭의의 법정적(Forensic) 성격
칼빈은 칭의를 다음과 같이 포괄적으로 정의한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의롭다고 여겨지고(qui iudicio Dei et censetur iustus) 그의 의 때문에 받아들여진 자를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고 한다... 반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행위의 의에서 제외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아 그것으로 옷 입고,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의인으로서 나타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의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기시고 자신의 호의 안으로 받아들이시는 수납(acceptance)이라고 간단히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기독교 강요』 III.xi.2)
이 정의의 핵심은 칭의가 법정적(juridical) 또는 선언적(forensic) 행위라는 점이다. 이것은 신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자의 지위(status)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꾸시는 은혜로운 판결이다. 칼빈은 칭의를 '의롭게 만드는 것(iustum facere)'으로 이해한 중세 스콜라 신학의 경향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칭의의 근거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자질(qualitas)'이나 '주입된 의(iustitia infusa)'가 아님을 강조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며, 이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됨으로써 칭의가 이루어진다.
B. 믿음에 의한 칭의와 행위에 의한 칭의의 대립
칼빈은 믿음에 의한 의와 행위에 의한 의가 서로를 완전히 배제하는 절대적인 대립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믿음의 의는 행위의 의와 너무나 달라서 하나가 세워지면 다른 하나는 무너져야 한다." (『기독교 강요』 III.xi.15)
이러한 대립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실적 불가능성: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자는 이론적으로 의롭게 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인간은 죄인이므로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 복음의 본질 위배: 행위가 칭의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고 인정하면, 구원의 전적인 근거인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가 훼손되고 인간의 '공로'라는 사상이 개입하게 된다.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이유는 믿음 자체가 뛰어난 행위여서가 아니라, 믿음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만을 향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자신의 모든 공로를 부인하고 구원의 모든 이유를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유일한 통로이다.
C. 칭의론의 두 가지 핵심: 하나님의 영광과 양심의 평화
칼빈은 자신의 칭의론이 보존하려는 두 가지 핵심 가치를 제시한다.
- 하나님의 영광: 중세 스콜라 신학이 자유 의지, 공로, 협력 은혜 등을 언급하며 구원에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속 사역을 축소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빼앗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칭의만이 인간의 모든 자랑을 제거하고 구원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한다.
- 양심의 평화: 만약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의 행위나 내적 상태에 조금이라도 달려 있다면,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코 평안을 누릴 수 없다. 우리는 늘 불안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칭의가 오직 변치 않는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의 자비로운 약속에 근거할 때, 신자는 "마음을 지속적인 확신과 완전한 신뢰로 강하게 하고, 쉴 곳과 발붙일 곳을 찾게 된다." (『기독교 강요』 III.xiii.3)
IV. 성화: 이중 은혜의 두 번째 요소
칼빈은 '이중 은혜'의 두 번째 혜택을 주로 중생(regeneratio) 또는 회개(poenitentia)라고 부른다. 이는 칭의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구별되는 혜택이다. 칭의가 용서받은 죄인으로서의 우리의 '지위'를 다룬다면, 성화는 그리스도의 영의 사역을 통해 우리의 죄된 '상태'가 변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 성화는 믿음의 결과이다: 칼빈은 "회개가 믿음을 즉시 따를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생산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강요』 III.iii.1)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의적이심을 먼저 믿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그분께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성화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삶의 개혁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이다. 칼빈은 "인간이 스스로를 창조할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회심시킬 수도 없다"고 말하며, 성화 역시 칭의와 마찬가지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은혜임을 강조한다.
V. 칭의와 성화의 관계: "분리 없는 구별"
칼빈은 칭의와 성화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설명한 칼케돈 신조의 공식을 빌려와 "분리 없는 구별(distinction without separation)"이라는 틀을 제시한다.
*칼케돈 신경의 이 공식은 본래 그리스도의 한 위격(Person)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칼케돈 신조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서로 개념적으로는 구별되지만, 실제로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방식으로 연합되어 있다. 칼빈은 이것을 칭의와 성화 관계에 적용한 것이다.
A. 구별의 필요성 (Distinction)
칭의와 성화는 반드시 개념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의 은혜의 무상성 보존: 만약 칭의가 성화(내적 변화)에 의존하게 되면, 구원은 더 이상 값없는 선물이 아니게 된다. 우리의 불완전한 성화가 칭의의 근거가 되는 순간, 은혜는 은혜가 아니게 된다.
- 구원의 확신 확보: 구원의 확신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완성된 의에 근거해야 한다. 만약 우리의 변화되는 상태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결코 확신에 이를 수 없다. 칼뱅은 "구원의 확신 문제가 걸려 있을 때, 우리는 죄의 속죄와 용서에 결부된 값없는 양자됨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구별을 혼동하면, 필연적으로 행위에 의한 칭의 교리로 이어져 신자들을 교만하게 만들거나 절망에 빠뜨리게 된다.
B. 분리 불가능성 (Inseparability)
개념적으로 구별되지만, 칭의와 성화는 신자의 삶 속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동시에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 필연적이고 불변하는 연결: 칼빈은 이 둘을 "불가분리의 은혜(gratiae inseparabiles)"라고 부르며, 회개는 칭의의 '원인'이 아니라 필연적인 '동반자'라고 설명한다.
- 산 믿음과 죽은 믿음: "오직 믿음만이 의롭게 하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fides sola est quae iustificet: fides tamen quae iustificat, non est sola)." 칼빈은 이 관계를 태양과 그 빛 또는 열의 관계로 비유한다. 태양의 열만이 땅을 데우지만, 태양 안에 열만 홀로 존재하지 않고 항상 빛과 함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분리 불가능성'에 대한 강조는, 개신교의 칭의론이 선행을 무시하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비판에 대한 칼빈의 강력한 답변이다.
VI. 개신교 교리에 대한 전통적 로마 가톨릭의 비판: 트리엔트 공의회
16세기 로마 가톨릭의 공식적인 대응인 트리엔트 공의회는 개신교의 칭의 교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확립했다.
쟁점 트리엔트 공의회의 로마 가톨릭 입장 칭의의 정의 칭의는 단순히 죄의 용서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인간의 성화와 갱신"을 포함하는 과정이다. 칭의의 '형상인(formal cause)'은 외부에서 전가된 의가 아니라, 신자 안에 주입되어 내재하는 의이다. 즉,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와 공로 칭의는 하나님의 선행 은혜로 시작되지만, 인간은 그 은혜에 "자유롭게 동의하고 협력"해야 한다. 칭의를 받은 후의 선한 행위는 칭의를 "증가"시키며, 영생을 얻을 만한 진정한 공로(merit)가 된다. 구원의 확신 신자는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오류 없는 믿음의 확신으로 알 수 없다. 구원의 확신을 주장하는 것은 "헛된 자신감(inanis fiducia)"이며, 경솔한 추정이다. 마지막까지 은혜 안에 머무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 비판 요약: 가톨릭의 관점에서 개신교의 칭의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닌다.- 법적 허구(Legal Fiction): 신자는 여전히 죄인인 상태로 남아있는데, 하나님이 단지 의롭다고 선언만 하신다는 것은 실제적인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명목상의 구원이다.
- 변화의 부재: 구원이 신자 안에 실제적인 의를 생성하지 못하고, 선행의 가치를 무시한다.
- 오만한 확신: 신자의 순종 여부와 관계없이 구원을 확신하게 하여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
VII. 최근의 에큐메니컬 논의
최근 수십 년간 칭의 교리를 둘러싼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간의 대화는 주목할 만한 진전을 보였다.
A. 루터교-로마 가톨릭 대화
-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1999): 가장 중요한 성과물로,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대한 믿음 안에서, 우리의 어떠한 공로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며 성령을 받는다"고 함께 고백했다.
- 합의와 차이: 이 선언은 많은 부분에서 합의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으나, 다음과 같은 핵심 쟁점에서 여전히 신학적 차이가 존재함을 인정했다.
- 인간의 협력: 가톨릭은 여전히 칭의를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데 인간의 '협력'을 말하지만, 루터교는 이를 거부한다.
- 칭의의 본질: 루터교는 칭의(하나님의 호의)와 갱신을 명확히 구별하지만, 가톨릭은 칭의가 죄의 용서와 '의롭게 됨'을 모두 포함한다고 본다.
- '의인이자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루터교는 의롭게 된 자도 여전히 전적으로 죄인이라고 보지만, 가톨릭은 세례를 통해 원죄가 제거된다고 본다.
- 구원의 확신: 루터교는 확신을 강조하지만, 가톨릭은 자신의 연약함을 볼 때 구원에 대해 염려할 수 있다고 본다.
B. 복음주의-로마 가톨릭 대화
-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1994): "우리는 은혜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게 됨을 함께 확인한다"고 선언했으나,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와 같은 핵심적인 종교개혁 원리가 빠져 있어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 "The Gift of Salvation" (1997): 이전 선언의 모호함을 보완하기 위해 작성되었으며, "칭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리스도의 의만을 근거로 하나님은 우리를 더 이상 반역하는 원수가 아니라 용서받은 친구로 선언하신다"고 명시했다. 이는 종교개혁의 입장에 훨씬 가까웠지만, 세례, 성찬, 연옥, 공로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신학적 차이점들이 많음을 인정했다.
VIII. 결론: 칭의 논쟁에 대한 칼빈 신학의 기여
칼빈의 '하나님의 이중 은혜' 교리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간의 역사적 논쟁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 가톨릭의 우려에 대한 답변: 칼빈은 '분리 불가능성' 원칙을 통해 칭의가 반드시 성화라는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동반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는 개신교의 구원론이 명목상의 선언에 그친다는 가톨릭의 오랜 비판에 대한 효과적인 답변이다. 즉, 칼뱅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효력 있는(effective)' 은혜라는 점을 충분히 인정한다.
- 핵심 쟁점의 명료화: 칼빈의 신학은 논쟁의 핵심이 '신자의 삶이 변화해야 하는가'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양측 모두 변화의 필요성에는 동의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분리 없는 구별'을 통해 진짜 쟁점이 다음의 문제들임을 드러낸다.
- 하나님 앞에서의 인정 근거: 구원의 근거가 전적으로 우리 밖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인가, 아니면 우리 안에 주입되어 형성된 의에 부분적으로라도 근거하는가?
- 하나님과의 관계의 질: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가 자신의 공로에 따라 보상을 기대하는 '계약적, 용병적 관계'인가, 아니면 오직 자비로운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신뢰하는 '자녀의 관계'인가?
- 구원의 확신의 가능성: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호의를 확신하며 평화를 누릴 수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늘 불안 속에 머물러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칼빈의 '이중 은혜'론은 로마 가톨릭이 강조하는 '은혜의 실효성'과 개신교가 강조하는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원리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 안에서 조화롭게 설명한다. 이를 통해 양측의 오해를 줄이고,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인 신학적 차이점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어, 보다 생산적인 에큐메니컬 대화를 위한 견고한 신학적 발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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